나의 멘토, 나의 스승 예찬
책은 청년에게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면 위안이 된다
-키케로
데카르트는 말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사르트르는 책을 통해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괴테는 독서를 하는데 80년을 바쳤어도 아직 다 알지 못했다고 했다. 체스터 필드는 책이 가장 좋은 친구라고 했다.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과 책이 최고의 양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 독서다. 그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처럼 느껴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책을 재미있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책을 읽는 것이 그리 지루하거나 어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어릴 때부터 줄곧 책을 읽어왔다. 세계 명작을 특히 좋아했다. 만화책도 좋아했다. 순정만화만 봤지만.
빨강머리 앤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나도 앤처럼 살고 싶었다. 작은 아씨들은 또 어떤가. 어릴 적 책 속의 다른 나라 배경은 미지의 세계였고 그저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나는 그래서 책을 계속 읽었던 것 같다.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가득 찬 호기심을 해결하려 했나 보다.
그렇게 책의 범위를 확장시켜갔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기보다는 그저 신기함이었다. 스토리였다.
대학 때부터는 소설을 두루 섭렵했다. 신간은 언제나 읽었고, 베스트셀러는 나오는 족족 다 읽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의 독서능력은 점차 깊고 넓어졌다.
나는 책을 빌려보는 것을 지양한다. 책은 무조건 사서 내가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의 꿈은 (꿈이라기보다는 어떤 로망일까? ) 책장에 책을 가득가득 꽂아놓은 높은 천고의 서재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꼭대기의 책을 꺼내려면 아주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런 서재.
책에 욕심이 많아 빌려보고 돌려주면 그 휑한 자리가 싫어서 책을 항상 사서 보았다.
여전히 높은 천고 가득 책으로 둘러싼 서재는 갖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룰 수 있는 로망이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나는 주로 읽는 데에만 집중했다. 한 번 읽은 책은 더 이상 읽지 않았으며,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읽은 것을 또 읽나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번 읽은 많은 책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써 두었다는 것이다. 독후감을 써놓은 노트를 보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 생기기도 했다. 내 책장의 책들은 언제나 새것 같았으므로 언제든 다시 읽기에도 새책을 산 기분을 가질 수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라고 했다. 처음엔 이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으나 점점 알게 되었다. 다독보다는 정독을 하고 정독과 함께 사색을 해야 비로소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이 된다. 다독만 하던 나는 적이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읽은 그 수많은 책들은 정말 다 사라진 것일까?
정독한 것에 비하면 사라진 것은 맞겠으나 스토리를 기억 못 하고 그 책에서 얻은 것이 없다 싶겠으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독을 하면서 가벼운 책 읽기를 했을지언정 안 읽는 것보다는 나았으며, 그것이 인풋이 되어 아웃풋으로 나오는 말하기, 글쓰기를 분명 얻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역시 세계이다. 사르트르만큼은 아니어도 나 또한 세게를 알기에 책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도 세계이며, 인류 사회 전체가 세계이기도 하다. 가보지 못한 나라도 책을 통해 가 볼 수 있고, 그 책은 여행잡지일 수도 있고, 소설의 배경일 수도 있다. 그 나라 작가가 쓴 에세이를 통해서도 나는 그곳을 여행한다. 또 무한한 듯 보이는 내면의 세계, 어떤 분야에 대한 깊고 넓은 세계, 내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신세계들.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의 세계.
그런 세계들을 알게 되면서 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들을 알 수 있고, 그리하여 나의 우주가 부끄러울 만큼 작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꿈을 크게 가질 수 있었고, 용기와 도전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 얻은 것이다.
책에 감사하는 이유
책은 이미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내가 놓지 않는 한 더 많은 것을 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무엇보다 책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책은 나에게 친구도 되어주고 스승도 되어준다는 점이다.
지식도 쌓을 수 있고, 문장력과 언어구사에 탁월함도 얻을 수 있지만, 책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내 마음을 챙기고 들여다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잡는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면서 책은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를 달래주고 위로하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할 수 있다고 다독여 주었다.
그저 다독으로 금방 사라지는 책들을 읽던 내가 정독을 하게 되니 조금 더 깊이 있는 책들을 보게 되고, 그런 책들은 소설과는 또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양서를 읽어갈수록 모르던 세계를 하나씩 하나씩 파악한다고나 할까. 마치 블록 쌓듯이 하나씩. 그렇게 나에게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감사함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모든 일을 함께 해줄 든든한 친구로 계속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나의 친구이자 스승은 과거에 살았거나 혹은 현존하지만 그곳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니 이 얼마나 든든한가. 나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책"이라서 나는 내 인생 최대의 감사할 것이라면 책이라고 하고 싶다. 책은 말 그대로 친구이자 스승이다.
책 읽는 엄마, 책 읽어주는 엄마
어릴 때 나의 엄마는 나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았지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나는 지금 내 아들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주지만, 내 아이는 나만큼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와 내 아들의 경우가 달라서 꽤 많은 실망을 했었지만, 가만 들여다보니 그저 나의 욕심인 것 같았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은 재밌게 보지만, 제 스스로는 책을 잘 안 펼치는 아들이 야속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겨우 8살이 스스로 책을 본다면 얼마나 보겠는가. 물론 8살임에도 책벌레 아이들은 많이 있지만, 내 아들이 책벌레가 아닌 것에는 더 이상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계속 책을 읽고, 읽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운명처럼 짜잔~ 하고 책의 맛을 볼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은 채 오늘도 나는 열심히 책을 읽고 읽어준다.
내 아들도 책 그 자체와 책을 읽는다는 것과,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과, 무엇보다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엄마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나의 친구와 스승을 고스란히 내 아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