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로 시작해서 그릇으로 끝나버린

본질이 점점 깨지고 있었다.

by 그레이스웬디
요리똥손이었던 내가 처음 요리를 하기 시작한 건 아이의 이유식이었다.


첫 아이인 데다가 오래 기다려온 아이였는 데다가 안 생기길래 포기했던 아이였기에, 그 누구의 아이보다 내겐 귀하고 또 귀했다. 아무거나 먹일 엄마는 세상천지에 없지만, 나는 유별나게 먹는 것에 신경을 썼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진 쌀 씻어 밥 안치는 것도 안 했다. 언제나 배달음식이었고 외식을 했고,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와서 냉장고에 반찬이 쌓여있을 때나 남편이 밥만 하는 정도로, 하다못해 라면도 남편이 끓여줬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나 공주였눼~)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기이한 현상이라 여기는 것은 엄마가 되는 순간 180도 변하는 여자들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지? 신기할 정도로 초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요리도 물론 그 초능력의 하나이다.


나는 정말 무슨 논문 쓰듯이 아이 이유식 식단을 짰다.

세상에~~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초보 엄마들이 나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 나는 이마저도 안 하면 내 아이에게만 안 해준 것 같아서 미안해질까 봐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세상 별난 거였다.

그렇게 나는 이유식 만들기의 달인이 되었고, 나의 정성과 나의 놀라운 영양학적 재료의 조합과 딱 들어도 꼭 먹여야 할 것만 같은 재료에 '내 아이 이유식도 만들어달라'는 초보맘들이 생겨서 내 아이 것을 넉넉히 만들어 나눠주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유식 만들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어릴 때 하던 소꿉놀이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요리라는 것이 마냥 귀찮거나 어려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언제나 바빠서 집에서 밥 먹을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나와 내 아이 밥상만 차리면 된다.

남편보다 아이를 분명 더 사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그 꼬맹이 밥상에 매우 진심으로 정성스럽고 예쁘게 차려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네 살 때부터..

남편에겐 단 한 번도 그렇게 밥상을 차려줘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꼬맹이 밥 먹일 때마다 반찬 통째로 꺼내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예쁘게 차려서 먹이는 게 내 기분이 좋았다. 네 살 다섯 살 때는 그냥 가끔 우와~ 하는 게 전부였지만 유치원을 다니면서 점점 클수록, 대화가 될수록 상차림은 더 즐거워졌다.

"엄마 오늘은 여기에다 밥 줘" 하면서 그릇을 정하기도 하고 자기가 나름의 플레이팅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시간이 넘쳐나서, 심심해서 이렇게 정성스레 밥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엄마는 네가 음식의 귀함과 소중함도 알았으면 좋겠고, 나중에 커서 혼자 살게 되면 엄마가 해준 것처럼 예쁘게까지는 아니어도 정갈하고 단정하게 널 위한 밥상을 차릴 줄 아는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반찬은 덜어먹어야 신선하게 먹을 수 있고, 먹을 만큼만 꺼내 먹어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습관도 중요하단다. 그리고 예쁘게 차려먹으면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잖아, 그렇지 않니?"

이랬더니 "난 엄마가 아무렇게 줘도 다 맛있는데" 이런다. 이런 센스 없는 놈 같으니라고.


지인들이 그랬다. "언니 이러면 나중에 며느리가 싫어해~" ㅎㅎㅎ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난 내 며느리에게 나처럼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뭐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므로 괜찮다.

나는 상당히 깨어있는 시어머니가 될 요량이므로ㅎㅎㅎ, 그저 우리 꼬맹이가 이런 밥상에 적응이 되길 바랄 뿐이다. 어디 가서 이런 밥상을 받고는 세상 처음 보는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와와~~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며느리가 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하면 되니까. 둘 중 누구라도 이런 상차림을 알고 있으면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꼬맹이가 지금보다 어릴 때 꿈은 요리사였다.

다섯 살부터 멸치 똥 따는 것을 시켰고, 설거지도 한 적 있다. 물론 모두 자기가 하고 싶어 해서 시킨 일이다. (오해 마시라 ㅎㅎ)

반찬을 할 때마다 사다리에 올라서서 보고 있으면 나는 조리법을 설명해주곤 했다.

다섯 살이 절대 못 알아들을 이야기지만 흥미 있어했다.

계란 깨는 것도 요리 재료를 손질하는 것도 곧잘 도와줬다.

꼬맹이 밥상을 차리면서 단무지로 꽃을 만드는 엄마의 손길을, 그 정성과 마음을 어리더라도 헤아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상차림이 익숙하다 보니 나의 혼밥과 혼술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절대로 반찬 통째로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 어느덧 이것은 우리 둘만의 식사문화가 되었다.

남편은 가끔 나의 인스타에서 이런 상차림을 보았을 뿐이다 ㅋㅋㅋㅋㅋㅋ

남편은 툴툴댔다. 왜 나한테는 이렇게 안 차려줘? 언제 차려줄 시간이나 있었대? 당체 집에서 밥을 드셔야지!!

나의 예쁜 상차림이 남편도 싫지 않았나 보다. 가끔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밥이든 술이든 먹기를 원했다.

그렇게 차려내면 여지없이 "와~~ 제수씨 대박~" 그 소리를 남편과 나는 즐겼다.



점점 그릇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의 자존감과 나의 자존감을 위한 예쁜 상차림이 sns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하니 더 예쁜 그릇이 필요했고, 더 화려한 기교를 부려야만 했다.

비싼 그릇들을 주저 없이 사 재꼈고, 어느 순간 집에는 그릇과 주방용품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맛간장부터 모든 소스며, 어떤 요리든 날 것의 재료로 시작해서 하나하나 모든 과정을 거쳐 음식을 하던 내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배달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내면 끝이었다.

세상에~~ 그릇이 바뀌니 담겨있는 것이 건강에 좋고 정성 들어간 엄마의 손맛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나는 요리의 메인 재료보다 데코용 재료들을 더 많이 신경 썼고, 배달과 밀키트 가공식품에 의지하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메주를 쑤어 된장을 만들다가 마트에서 만들어진 된장을 사서 쓰는 격이 되었다.


몸에 좋은 엄마의 음식이 나의 요리 모토였는데 갈수록 예쁘게 보이는 상차림으로 변질되어갔다.

물론 예쁜 그릇 너무 좋다. 예쁜 그릇이 생겼으면 그 안에는 더 더욱 그 그릇에 맞게 격식을 갖추어 건강에 좋고 정성을 담아 요리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 텐데, 그릇은 죄다 왕실에서 쓰던 것들을 사놓고 재료와 음식은 아무것이나 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품위가 떨어졌다. 그 그릇의 품위마저도..


내가 먹는 건데 왜 남의 눈에 먼저 들어야 수저를 들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요리 그램을 끊은 이유다. 더 다양한 그릇을 보여주고 싶어서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되고, 더 많은 좋아요를 얻기 위해 한 번 쓰고 버릴 허브들을 샀고, 귀한 재료를 선택했으므로 장보는 데 쓰이는 아까운 돈들이 터무니없이 흩어졌다. 레 몬 지랄을 어찌나 해댔는지 ㅎㅎㅎ (데코로 레몬은 필수다 ㅎㅎ)

문제는, 더 많은 그릇을 사고 더 많은 식비를 지출하더라도 내가 요리를 하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안된다는 것이다.

사진 한 번 찍을 용으로 매일 마트를 가고, 둘이 먹는데 두 배의 양으로 요리를 하고, 많은 메뉴를 만들고, 그렇게 낭비와 음식물쓰레기들이 어느 순간 허무해졌다.

난 대체 뭐 하고 있니?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각종 밀키트들과 먹거리 협찬이었지만, 사실은 배보다 배꼽이 항상 더 컸다.


그래서 그 요리와 플레이팅에 바치는 시간들을 좀 더 가치 있는 곳에 쓰려고 요즘은 요란스럽게 요리 그램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습관이 된지라 여전히 밥상은 정성껏 예쁘게 차린다. 다만 사진을 찍기 위한 상차림은 하지 않는다.

sns에서 요리를 끊었더니 내 마음에 여유가 많이 생겼다. 나는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적잖은 스트레스가 되었음을 이제야 안다. 친한 인친님이 그릇을 사면 나도 사야만 할 것 같았거든. 그게 굳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릇도 사고싶다고 살 수 있는것도 아니다. 엔틱제품들은 나올때까지 기다려하고 어느 판매자에게 사야 눈탱이를 안맞는지를 찾아다니는 에너지 소모도 만만치 않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이 메인인지 그릇이 메인인지 그 우선순위가 더 중요하다.

그릇을 씹어먹을 순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그릇보다는 음식이 주가 되어야 하는 게 맞다.

다만 그 음식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적당한 그릇이 적당하게만 있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


내 그릇의 일부다. 사진 3장 그리드가 깔끔하므로 더 이상의 사진은 무리데쓰.

이것이야말로 사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하지만 내다 팔기엔 내가 그릇을 너무 좋아한다는 모순. 언젠가 비움을 제대로 실천하고 싶어 질 때가 오면 그때는 과감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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