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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왜 받는 걸 못해?

주는 것에만 익숙한 건

by 그레이스웬디

오래된 이야기지만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는 건 잘하는데 받지 못하는 사람" 그게 나다.


이상하게도... 주는 건 참 쉬웠고 지금도 내 속 편하고 여전히 젤 쉽다.

기브 앤 테이크가 나는 어쩐지 불편하고, 더치페이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꼭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한 번도 이런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이 살았다.


친한 동생들에게 늘 그랬든 주고 또 주고, 걔들이 필요한 건 내게 늘 남았고, 때론 일부러 사서 주기도 했지만

그냥 내가 주는 이유는 내 마음이 좋아서였다. 필요한 걸 내가 줘서 그들이 좋아하고 또 편해진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뿌듯하고 좋았다. 그래서 주었다. 늘... 주었다.

주면서도 '나는 이걸 해줬으니 걔도 뭔가를 줄 거야'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주는 것을 좋아했던 건 20대 때부터 그랬다. 뭔가를 주면서 환심을 사기 위함도 아니었다. 나는 늘 친구가 많았고, 친구들 사이에도 인기가 많았고, 인간 때문에 겪는 외로움 같은 건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몇 십 년째 주기를 하며 살다 보니 가끔 이 주는 습관 때문에 되려 멀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그냥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오래 내 곁에 남아있는 놀라운 상황을 어느 순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주는 것에 대한 생색을 낸 적도 없는데 사람들은 멀어져 갔다. 왜 그런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면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적도 없었다. 그랬다면 그들도 안 받으면 됐을 터였다.

나는 그 어떤 뉘앙스도 풍기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른 채 그저 인연이 아닌가 보지... 내가 인복이 없는가 보지... 생각하고 넘어갔더랬다.



언젠가... 5년 전쯤인가 보다.

친하게 지내는 동생에게 또 주고 싶을 때마다 줄 것이 생기면 주곤 했다. 그런데 걔는 내가 2개를 주면 하나는 꼭 내게 주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걔로 인해 피부로 와닿았다. 그러니 점점 주고 싶어도 못주게 되었다. 내가 이걸 주면 걔는 또 의도치 않게 내게 뭘 주려고 할 테니. 걔마음과 내 마음이 같으리란 법이 없으니 말이다.

걔는 쌍둥이 엄마였다. 아기들 돌잔치에 돌 반지를 1돈씩 각각 두 개를 해서 갔다. 그리고 내 아이 돌잔치에 걔는 3돈짜리 목걸이를 들고 왔다. 나랑 성향이 같은 사람이구나 내심 반가웠다.

내가 먼저 주지 않았을 때도 걔는 나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했다. 한 번은 내게 쿠션을 선물했다. 유행하는 쿠션은 여자들에겐 옷 갈아입듯 사는 물건이다. 없어서 사는 경우는 드물다. 있어도 더 좋은 게 나오면 갈아타기도 하는 게 여자들의 1호 화장품 쿠션이다. 가격대도 저렴한 것이 아니었다.

"난 안 줘도 되는데. 나 쓰는 거 있는데 뭐 하러..." 대개 인사치레로 하는 말들을 나도 했는데 걔가 그랬다.

"언니는 참 받는 걸 못해. 맨날 주기나 해대고, 사람이 좀 받을 줄도 알아야지." 정색하고 한 말이 아니라 웃어넘겼지만 나는 이런 말을 처음으로 들어봤다. 그래서인지 계속 떠오르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떠올리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다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정말 받는 걸 못할까?' '아닌데... 나도 받는 거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거절을 하는 말센스가 부족한 건가?' '아니면 내 인사치레멘트가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걸까?' '그래서 그동안 다들 나에게 그렇게 받고도 떠난 걸까?'

나에게 받는 걸 참 못한다고 말해준 사람은 그 애가 처음이었다.

다들 그냥 받을 건 받고 주려고 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렇게들 소원해졌었다.


나는 생색을 안 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받을 건 받는데 그건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 당연히.

하지만 나를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계산적으로 만났을리는 없지않은가.

가만 생각해 보면 생색은 안 냈을지 몰라도 그들에게 원하는 건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이기를 강요한 적도 있었다. 내 의견에 동참하기를 바랐던 적도 많았다.

그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언니 참 잘 줘서 득은 되는데 대장노릇을 하려는 건 재수 없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참 내가 웃기다. 한 번도 나를 돌아볼 생각도 안 하고, 나는 주는 사람인데 그들은 다 받기만 하고 가버린다고. 그럼 누가 잘못된 거냐고 하소연을 하다니.

그들은 거지가 아니다. 비록 내가 그들보다 조금 더 가졌을지는 모르나 어쩌면 그들은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분명 순수한 마음은 맞다. 내가 주고 안 주고를 떠나 내가 그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 했던 마음들을 인정한다. 주면서 군림하려 했던 것은 생색을 내는 것보다 사실 더 재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걸 그때는 몰랐다.


지금도 여전히 주고 있으나 군림하려 드는지 나를 스스로 점검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고 싶은 마음이 진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파악해 본다.

그렇게 셀프점검을 끝내면서 안전한 경우에만 준다. 함부로 주지 않는다. 막 퍼 주지 않는다.


점을 본 적이 있다. 내 사주에는 펑펑 주고 살아야 하는 팔자가 있다고 했었다. 그렇게 주는 게 전혀 계산적이지도 않고, 아깝지도 않다고. 나는 그렇게 주면서 살아야 하는 사주라고 그랬다.

그 말을 듣고 무한 끄덕임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 나는 본디 주면서 살아야 하는 체질이다. 그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나를 즐겁게 만드니까.

내 삶의 쓸모는 그렇듯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받는 것도 할 줄 안다. 매우 감사하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면서 받을 줄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때 주는 것에만 익숙했던 건, 타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 잣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안 받았는데, 내가 주는 것도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왜 생각을 못했는지.... 적당히 주고받는 건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무엇이든 일방적인 건 가해와 피해로 나뉘기 마련이니까.

지금도 그 동생의 말이 생각난다. "언니는 참 받는 걸 못해..."

"아니야~ 이젠 제법 받는 것도 잘해."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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