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틱 세미나
온라인 독서모임을 5개 운영하고 있는 나는 한 달에 6-7번은 줌미팅으로 독서토론을 한다.
그중 두 개는 무료모임인데 그 무료모임 중에서도 <클럽 그레이스 풀>은 나의 비전이 담긴 모임이다.
그레이스풀을 시작한 지는 일 년이 넘었는데, 그 사이 초기멤버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면 교체가 되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모임을 이어가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다시 멤버를 충원하는 데에는 나만의 조건을 걸어두고 인터뷰를 진행해 열명을 뽑았다.
그리고 완전체가 된 어제 첫 독서토론을 하게 되었다.
그간 우여곡절이 많은 모임이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은 건 초창기 멤버 때문이었다. 책에 대한 열정을 알기에 그냥 모임을 없앨 수가 없었다. 내 곁에 어떻게든 남아있으려는 그녀의 노력은 나에게 힘이 돼 주었고, 그래서 더욱더 롱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동안 우리의 토론형식은 하브루타를 토대로 진행해왔는데, 타 모임과는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였다.
하지만 내가 이 모임에 비전을 가지고 있는 건 일반적으로 하는 타 독서모임과의 차별화였다.
이 모임에서만큼은 다른 모임에서 실행해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었고, 일종의 베타버전을 거쳐 제대로 된 독서모임의 방향을 정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모임에선 빡독을 한다. 진짜 빡독....
그렇게 어제 첫 토론에서 내가 실행한 건 소크라틱 세미나였다. 책은 에릭 와이너의 <프랭클린 익스프레스>였다. 다들 처음 접해보는 소크라틱 세미나라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눈빛이다. 내 어깨가 더 무거웠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다. 멤버들에게 소크라틱 세미나 토론방식을 설명한 뒤 '우린 처음이니까 잘 못해도 된다'는 말로 부담을 줄이고 시작했다.
소크라틱 세미나는 리더인 내가 시작질문을 던지고 멤버들이 그 질문과 답을 하면서 질문을 더 심화시키며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 목표인 대화법이다. 열린질문이어야하고 답은 즉흥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미리 생각하고 내놓는 해답이 아니기에 멤버들은 잠시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그럴 땐 그 멤버에게 시간을 주고 먼저 발언할 수 있는 멤버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생애를 저자인 에릭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필라델피아, 런던, 파리여행을 하며 그의 철학과 성과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핵심은 벤저민은 쓸모 있는 삶을 추구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토론 주제도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멤버 9명의 쓸모를 들으니 하나같이 이타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답구나 싶었다.
누구는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쓸모 있기를, 누군가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자신의 쓸모를, 누군가는 자신의 글로 위로와 감동을 주는 쓸모를, 누군가는 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한 쓸모를.... 그들의 쓸모를 듣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면서 그들을 돕고 싶어 진다.
브랜딩이 필요한 멤버에게는 브랜딩을 알려주고 싶고, 테마나 콘셉트가 필요한 멤버에게는 같이 고민해주고 싶고, 갓난아이 엄마에게는 육아선배로서 공감해주고 싶고...
그렇게 모임을 마무리하려는데 멤버들이 물었다. "웬디님의 쓸모도 궁금해요"
나? 나의 쓸모는 당연히 책이다. 책을 통해 나의 쓸모를 발견했고, 책을 읽으면서 내 삶도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저의 쓸모는 작가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독모리더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쓴 글로 독자들이 웃고 울고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은 마음뿐이라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한 권은 쓰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독서모임 리더로서 책이 주는 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독서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것들을 좀 잡아주고도 싶고, 그래서 그들이 진짜 책의 힘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메이트가 되고 싶다.
내 쓰임은 그런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각자의 쓸모를 이야기하다 보니 우린 자연스럽게 따뜻함을 느꼈다.
서로의 공통점이 있으니 더 그랬으리라.
소크라틱 세미나를 열렬히 좋아하게 됐다는 멤버들의 이야기에 뿌듯했다.
5분 스피치를 하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덜 되니 자유롭게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고들 했다.
그래서인지 어제의 모임은 평소의 시간인 2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것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멤버들이라면 이 모임을 통해 내 비전을 확립할 수 있겠다 싶어 속으로 신났다.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어렵다. 더구나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2년 동안 온라인 독모를 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모임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운영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맞다고도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이 맞고,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을 품었기에 이어나가는 것도 같다. 그래서 몇몇은 만났고!
쓸모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다. 누구에게는 쓸모가 또 다른 누구에게는 하찮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쓸모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한 번도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멤버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웬디님 덕분에 저의 쓸모를 진지하게 찾아보았어요" , " 웬디님 덕분에 아직 찾지 못한 제 쓸모를 꼭 찾고야 말겠어요"
이런 말들이 나는 참 따뜻해서 좋다. 고맙다고 표현하는 일, 당연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표현할 줄 아는 우리 멤버들, 감사하고 이멤버 리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