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사진은 없다.
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폰 사진첩에는 사랑스러운 울 아들 사진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온통 책 사진이다.
독서모임에서 읽을 책을 캡처해 멤버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책 사진, 블로그 서평을 쓸 때 사용할 섬네일을 만들기 위한 책 사진, 필사한 노트 인증하기 위해 찍은 노트 사진, sns에 업로드할 독서노트, 책 사진 찍는 나만의 포토존, 자주 쓰는 문구류, 필기구..... 죄다 이런 것들로 도배된 지 벌써 3년 차다.
이제는 1인 기업,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다. 누구나 1인 기업이 될 수 있고 브랜딩을 하기 위한 SNS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자신의 브랜딩을 위해 주제가 정해졌다면 요즘 대부분의 사진첩에는 그 주제와 관련된 사진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누군가에게는 음식사진이, 누군가에게는 여행지 사진이, 또 누군가에게는 아이의 사진이, 그리고 나 같은 누군가에게는 책 사진이.
문제는 삭제를 잘하지 않아 더 이상 쓰지 않는 사진들도 그대로 앨범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내가 찍은 사진이라도 업로드를 하고 나면 두 번은 못 쓰는 사진인데 왜 지우지도 않고 가지고 있는지.. 지우는 데에도 이젠 시간이란 걸 투자해야 할 정도라 나는 그 시간이 아까워 지우지 못한다.
날을 잡아 책 사진들을 몽땅 지우는 날에도 자꾸 미련이 남아 지우지 않는 사진들이 있다. 바로 내 독서노트와 저널이다. 다이어리라고 해도 좋은 나의 기록일지들은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본체가 남아있으니 미련 둘 것도 없는데, 그 사진조차도 못 지우는 건 다 쓴 노트들을 깊숙이 보관했기에 꺼내보기는 귀찮고, 찍어둔 사진을 보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한 번 기록했던 걸 또 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냥 뿌듯함이다 ㅎㅎㅎ 예쁘게 꾸며놓은 기록들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다. 뭔가를 채운 느낌이 들어 좋고, 그만큼 나와 대화를 많이 한 것 같아 좋고, 그걸 보면서 잊었던 아이디어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속하려는 마음을 재충전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셀카도 안 찍게 되고, 아들도 이제 컸다고 사진 찍는 걸 싫어하기에 내 사진첩에는 온통 이런 사진들 뿐이다.
물론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할 땐 예쁜 카페 사진도 찍고, 풍경도 찍고, 아들도 나도 다 찍는데 이런 사진을 수십 장 찍어놓아도 이내 책과 노트사진으로 덮여버린다.
나처럼 사진첩에 볼거리가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진첩은 곧 나의 생활, 나의 취미, 내가 좋아하는 것 등등 나를 기록하고 나를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간이다. 온통 책이랑 노트밖에 없네 하는 내 사진첩이 지금의 나다.
사진첩을 보면 그 사람의 현재가 보인다. 무엇에 집중하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쁜 사진보다 정보를 캡처한 사진, 데이터를 모은 사진, 책과 노트뿐인 사진첩이지만 나는 이 사진첩을 정리하기 위해 한 번씩 들여다볼 때마다 내 갈길의 방향을 다시 잡곤 한다.
가끔은 흔들릴 때, 이 방향이 맞나 의구심이 들 때 이렇게 잔뜩 쌓인 사진들을 보면서 "이게 맞네." "온통 이것뿐인데 이래도 이게 아니야?" 하며 내 마음에 확인하곤 한다.
내가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좋아하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고,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데 어찌 다른 사진에 비해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있겠나.
이게 난데. 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포토존을 세팅하고 서평을 써달라고 기다리는 책 사진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