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페어링에 설레는 사람 손

저요 저요

by 그레이스웬디
푸드 페어링 (Food Pairing)이란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짝을 맞춘다는 뜻을 가진 페어링 (pairing)이 합쳐진 말로, 주로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선정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하지만 요즘은 와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술과 음료에도 이 용어가 쓰인다.


참 설레는 것도 없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나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설레는 것이 별로 없다. 한 번 하면 원 없이 하는 스타일이라 질릴 때까지 셀레는 그 일을 한다. 그러니 당연히 질리고 더 이상 같은 일에 설레는 일이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쇼핑이나 클럽에 가는 것 같이 노는 일. 사랑에 설렐 일은 더욱 없고, 하고 싶었던 일이나 취미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설렘은 멈춘다.


그릇을 사는 일도 이젠 예전만큼 설레지가 않고, 라탄 공방을 가는 것도 처음에만 설레었을 뿐 자격증을 따고 나니 시들해졌다. 골프도 2-3년 설레더니 점점 재미가 없어졌고, 새로운 책을 만날 때 가벼운 설렘은 있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설레지는 않았다.


설렌다는 것은 학창 시절 소풍 전날 밤에 "제발 내일 날씨가 좋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할 만큼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것인데,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설렘보단 그저 무덤덤이 되어간다.

그것 자체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젊은 날에 해볼 것을 넘치도록 해보았으니 뭐 딱히 설렐 일이 뭐가 있겠나 생각하면 또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니다. 양은냄비보다 뚝배기가 더 좋은 점이 많듯이 설렘 없이 무덤덤한 중년의 삶이 장점이 더 많은 것일 수도..


그런 내가 여전히,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설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푸드 페어링이다.

예전엔 술맛도 모르고 먹었고, 특히나 페어링은 고급진 말이고, 밥과 함께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자처럼 보였다. 당연하다. 그 맛을 모르니까 ㅋㅋㅋ

술은 안주가 따로 있을때만 먹어야한다는 이상한 편견이 젊은 날에 있었다면(도대체 그 안주는 정해진 것이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술을 품위 있게 먹다 보니(젊을땐 술보다 지화자 좋구나 하는 분위기가 먼저였으니 ) 반주가 곧 푸드 페어링이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항상 미국이나 유럽문화를 보면 점심시간에도 햄버거에 맥주를 마시고, 저녁엔 말할 것도 없고, 맥주나 와인을 물 마시듯이(우리나라 밥상엔 언제나 물이 있듯이 ) 하는 외국인들은 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술은 꼭 밤에만 마셔야 하는 건 줄 알았고, 낮술은 애미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옛 속담이 절대 진리였다.

낮술을 즐기게 된 건 40대가 되어서이다. 나는 차라리 밤에 마시는 술보다 낮의 푸드 페어링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자는 음식 필요 없이 술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음식이 없으면 술을 절대 안 마신다.

혹자는 밥 먹을 때마다 술을 꺼내 들면 그게 알코올 중독 아니야?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내 생각에 그런 사람들은 중독자가 아니라 미식가이다.

왜냐하면 음식의 맛을 더 보완하여 균형을 이루며 상호작용에 의한 어울림을 찾게 해주기도 하고, 술과 음식이 합쳐져서 좀 더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음식 따로 술 따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과 음식의 궁합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그래서 와인을 고를 때 음식에 따라 달리하는 방법으로 페어링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다른 술보다 와인은 음식과의 궁합이 중요한 술이니까.


내가 언제부터 푸드 페어링을 즐기게 되었나를 보면 역시 와인을 마시며 와인을 공부할 때부터인 것 같다.

그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아 한잔 곁들이면 그 음식의 맛이 배가된다. 예를 들면 파전에 막걸리, 치킨에 맥주 이런 식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밥상은 때로 술상이 되고, 술상에 아이 수저만 놓으면 밥상이 되기도 한다. 모든 반찬은 모든 술의 짝이 된다. 그렇다고 매일 밥상머리에서 술을 따르는 건 아니다. 나는 주로 아이가 학교에 간 점심시간에 혼자 즐긴다. 이쯤 되면 다시 나올법한 중독자 아니야? ㅋㅋㅋㅋㅋ 절대 아니다.


먹는 즐거움을 잘 모르고 살았다. 그냥 있으면 먹고 없음 말고..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던 젊은 날이었지만, 내가 요리를 하면서부터, 플레이팅에 관심이 생기면서부터 먹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식구들에게 해주려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음식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그와 어울리는 술을 찾기 시작했다. 증류주 빼고 술은 다 좋다.

술이 좋다라기보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는 술이 너무너무 맛있고 좋다.

그럴 때 나는 언제나 설렌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파티상을 어떻게 차릴까를 며칠 전부터 고민한다. 메뉴를 정한다. 재료를 준비한다. 그와 어울릴 와인을 찾는다. 여기까지 하면 며칠 전부터 그날을 기다린다. '아~~ 얼마나 맛있을까' 하면서. 이것이 설렘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식당엘 가면 남편은 자연스럽게 내 페어링 술을 주문한다. 자기는 운전해야 하니까 당연히 잔도 내 것 하나만 부탁한다. 그리곤 어김없이 내 잔을 채워준다. 그런 남편이 고마워서 가끔 삼겹살 같은 고기를 먹을 때 남편이 권하는 소주 한 잔 정도는 같이 마셔준다.

나는 모든 테이블에 술이 있는 것이 좋다. 술 없는 테이블은 요즘 허경환 님 유행어처럼 언발란스~~ 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그렇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동요하진 마시라.


미식가와 애주가 그 사이 어디쯤 내가 있다.

나는 술과 음식에 대한 페어링만 얘기했지만, 푸드 페어링이란 서두에도 말했듯이 음료와 어울리는 음식을 찾는것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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