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와 나

small dish의 매력

by 그레이스웬디

그릇을 모으다 보니 알게 된 나의 취향이 있다.

나는 큰 그릇보다 작고 귀여운 종지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처음 그릇을 사기 시작할 때는 가장 쓰임이 좋은 것 위주로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식을 생각하면 밥그릇과 국그릇을 가장 먼저 고르고, 양식을 생각하면 디너접시와 샐러드볼, 파스타 접시 정도가 되겠다.

종지는 말 그대로 간장이나 고추장을 담는 용도이므로 한 두 개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테이블 세팅을 하다 보니 종지가 너무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캐스팅으로 치자면 '지나가는 행인 3' 정도 되겠다.

테이블 세팅을 하다 보면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찬기 몇 개, 메인 요리를 담을 접시나 볼 정도는 항상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엔 그런 것들 위주로 샀었다. 밥그릇과 국그릇은 어차피 정해진 식구의 수대로 준비하면 끝이지만 찬기나 메인디쉬 같은 것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사곤 했다.

골라 쓰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메인 접시들은 사이즈가 크다. 그래서 테이블을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그 주변으로 찬기들을 몇 개 놔주면 상차림은 완성이 된다.



처음 그릇을 접할 때는 정해진 룰 마냥 반찬은 찬기에, 간장은 종지에 담는 것 밖엔 할 줄 몰랐다. 창의력이라곤 1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데 찬기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제일 작은 사이즈의 찬기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찬기는 찬기의 사이즈가 있다. 종지보단 크단 소리다.

종지는 사이즈 7-8cm, 제일 작은 소찬기는 11-12cm 정도를 나는 제일 선호한다.

반찬의 가짓수가 조금 많기라도 한 날에는 일반 찬기에 담기 부담스러움이 있었다. 테이블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그릇의 사이즈가 크면 테이블 위에서 그릇 간의 공간이 제법 커지기 때문에 뭔가 모아지는 느낌이라기 보단 넓게 펼쳐놓은 느낌이 나는 싫었다. 그럴 때마다 아~~ 종지가 많아야겠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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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브랜드에는 종지라 불릴 만한 사이즈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믹스할 종지를 따로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릇 브랜드에는 종지가 있다. 양식기에는 당연히 종지가 없으므로 핀 접시나 버터 접시 등을 많이 사두어 종지의 용도로 쓴다.


워낙 큼직큼직한 것보다는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어느 순간 너무 잡다하다고 느껴서 미니어처 모으기나 이런 것들은 집어치웠다. 그래도 취향이 변하는 건 아닌가 보다. 그릇을 모으다 보니 다시 아기자기 작은 것들을 더 모으는 나를 보면서, 역시 넌 그냥 아기자기 를 좋아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종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을 때 종지는 그릇장에서 나올 일이 별로 없다

가끔 전을 먹을 때 필요한 간장을 담을 때나, 쌈을 먹을 때 쌈장을 담거나, 숙회를 먹을 때 초장을 담을 때가 아니면 매일 식탁에서 보기는 힘든 아이다.

하지만 나의 식탁에서 종지는 밥그릇만큼이나 매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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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지에 반찬을 담는다. 장 종류도 담고, 김치도 담는다.

어휴~~ 저거 설거지만 많고 감질나서 원~~ 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다. 그런 분들은 아이들 밥상을 차릴 때 종지를 사용해보기 바란다. 얼마나 안성맞춤인지!!!

아들 밥상엔 더할 나위 없고 찬기로도 너무 딱인 종지.

찬기보다 종지가 더 많은 나는 종지를 쓸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이해 못 할 사람들은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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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정관념을 깨고 양식기에 한식을 먹기도 하고 한식기에 양식을 먹기도 한다.

양식기는 종지가 따로 없다. 종지 사이즈의 그릇도 찾기 힘들다. 피클 접시도 사실은 크다.

그래서 버터 접시나 핀 접시들을 써봤더니 역시나 딱이더라. 사이즈가 7-11cm 정도들이니 종지와 같다.

종지가 있으면 테이블을 풍성하게 하는 느낌도 든다. 조잡하다 하면 할 말은 없겠으나, 조잡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배치를 잘하면 되겠다. 그건 테이블 세팅도 자꾸 하다 보면 감각이 생기므로 커버할 수 있다.



종지를 쓰면서 생각한다.

진짜 나처럼 종지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잘 써주는 사람이 있어서 종지는 좋겠다고.

언젠가 시어머니가 그릇을 새로 장만하셨다.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 상을 차리는데 쌈장을 담으려고 봤더니 종지가 하나도 없다.

"어머니, 종지 어딨어요?"

"종지? 뭐 담으려고?"

"쌈장 담게요"

"아~~ 여기 있을 텐데~~ 어머어머, 어쩜 종지를 하나도 안 샀다니~~~"

새로 산 그릇에는 종지가 없었다. 종지는 그렇게 그릇을 살 때도 꼭 챙겨서 사야 하는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지는 사실 없어도 불편을 못 느낀다. 쌈장이나 고추장은 작은 찬기에 담아도 되고, 작은 찬기가 없음 대충 작은 접시에 담아도 아무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나름 종지도 자신의 본분을 갖고 세상에 나왔으니 그 쓰임대로 잘 써줘야 하는 게 아닐까.


어떤 테이블에선 끄트머리 구석 어딘가에 덩그러니 있을 종지가 나의 테이블에선 메인이나 마찬가지다.

작지만 알찬 용도로, 그 쓰임은 만들기 나름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종지 같은 사람. 그릇이 커야 했던가. 큰 그릇도 좋지만 작은 종지를 매일 쓰는 게 더 좋지 않나 싶다. 나의 그릇장에 제일 큰 그릇들은 크리스마스 때만 나오고 있으니까.

나는 종지처럼 매일 쓰이는 사람이고 싶다.

매일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낌없이 담아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를 케어한다. 더 많이 쓰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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