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의 일기
아침이 되면 아빠랑 형아랑 엄마는 다 나간다.
어떨 때는 형아랑 엄마가 아빠보다 먼저 나가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나를 가방에 넣는다.
우리는 형아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매일 커피를 산다.
나는 집 밖의 세상이 너무 신기하다. 비록 가방 안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꼭 매달려 다니는 꼴이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며 꼭 한 마디씩 한다.
"어머나, 귀여워라. 인형인 줄 알았네~" 나는 인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형아가 자기의 토끼랑 기린을 나에게 양보한 그것들인가 보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는 나는 금방 집으로 들어와야 하는 게 싫다.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구월이 접종 한 번만 더 하면 구월이도 엄마랑 산책하러 가자~~"라고 말했다.
나는 산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분명 내가 좋아하게 될 거라고 했다.
기대가 된다.
엄마랑 나는 하루 종일 둘이 집에 있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빨이 너무 간지럽다. 그래서 형아가 토끼랑 기린을 주었는데 그것들은 아무리 앙앙해도 이빨의 가려움이 가시질 않아 감질맛이 난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중에도 제일 내 맘에 드는 건 형아 머리카락이다.
이빨에서 스르륵 풀려나가는 머리카락이 나를 약 올린다. 그럴 땐 한번 휘감아서 물으면 풀려나가지도 않고 짱짱해서 아주 신이 난다. 형아는 아프다고 하면서도 자주 머리카락을 내어준다.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터그 놀이를 하라면서 여러 개의 물어뜯기 좋은 장난감들을 사 왔다.
처음엔 아주 신세계였고, 간질간질하던 이빨이 개운해졌지만, 난 그런 장난감들 보다는 엄마가 하지 말라던 진상 노릇이 더 재미있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촤르륵 풀어가며 물어뜯는 것이나, 형아 베개의 모서리를 물어뜯는 것, 또는 엄마의 거실 슬리퍼를 물어뜯는 게 훨씬 재미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엄마한테 죽빵을 얻어맞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매일 엄마랑 많은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엄마는 신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치원을 안 보내는 대신 엄마가 가르쳐 주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구월이 앉아!"라고 하는 거였다.
앉는 게 뭐지? 내가 어리둥절 엄마를 쳐다보고 있으니 엄마가 살포시 내 엉덩이를 눌러준다.
자연스럽게 앉아버린 나에게 "그렇지 그게 앉는 거야." 하신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앉아!"라고 말하면서 엄마는 손바닥을 펼쳐서 아래로 내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바로 알겠다. 손바닥이 아래로 내려가는 동시에 나도 엉덩이를 내리고 앉았다.
엄마는 "어머 어머, 구월아 앉아 한 거야? 알아들은 거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더니 나에게 다시 한번 앉아를 했다. 그래서 나는 또 앉았다. 엄마는 대박 대박을 외치면서 냉장고로 포르르 달려가서는 맛있는 껌을 들고 오셨다. 아~~~ 향긋한 냄새. 이건 뭐지? 내 개인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고, 나는 빨리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엄마는 또 "앉아!"를 외친다.
'에이이, 이게 뭐라고. 나 이거 완전 알겠는데 껌이나 빨리 주지 ㅜㅜ'
그리곤 당당하게 앉아주었고 나는 천상의 맛을 보았다. 이 맛이 딸기맛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 만에 단 몇 번의 시도 끝에 "앉아!"라는 명령어를 기꺼이 입력했고, 천재 강아지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아빠에게 보여줄 게 있다면서 나를 불러 "앉아!"를 보여주었고, 아빠는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엄마는 "손"을 교육시켰다.
엄마가 손바닥을 내 오른 앞발 쪽에 가져다 대면서 "손"을 하면 나는 내 앞발을 엄마 손바닥 위에 올려주면 끝이었다. 이것도 너무 쉬웠다. 이딴 걸 유치원까지 가서 배워야 하는 댕댕이들이 있단 말이야?
그렇게 오른발, 왼발을 원데이 클래스로 다 떼 버렸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음 날 엄마는 또 다른 기술이라며... '엄마 쫌!!'
"빵"을 해댔다. 나에게 손가락을 쭉 펼치더니 "빵"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어쩌라고요.. 엄마.. 난 무얼 해야 하는 거지요?"
내가 멀뚱멀뚱 서 있으니 엄마는 나를 눕힌다. 빵 하면 이렇게 배를 뒤집어 까고 누워야 하는 거라고.
몇 번이나 나에게 빵빵 거렸지만. 난 그 자세가 맘에 안 들어서 안 했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배를 뒤집어 까야한다니. 안 하련다.
엄마는 그 후로 2-3일 동안 생각난 듯 할때면 빵을 쏘아댔지만, 난 지조 있게 하지 않았고. 엄마는 포기했다.
"얘 천재는 아닌가 보네."라고 하면서.
천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듣기 좋았는데 "빵" 이따위 것 때문에 천재 자리를 박탈당했다.
그냥 한번 배를 뒤집어 까줘? 생각했지만, 천재를 포기하고 나는 자존심을 지키기로 했다.
"엎드려"와 "구월이 코" 등등 몇 가지의 기술을 더 전수하려 했던 엄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쉬나 잘 가리라고 했다.
한 줄 요약 : 우리 엄마는 참 재미있는 사람 같다. 그리고 나는 천재가 맞다.!!
댕집사의 일기
구월이는 천재 댕댕인가? 세상에 "앉아"와 "손"을 이틀 만에 해낸다.
아니 앉으라는 말이 그렇게 알아듣기 쉬운 말이었나?
울 엄마 집 콩쥐는 6살이 되도록 못하던데?
세상에 털 뭉치 쪼꼬미가 앉아한다고 앉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이젠 '앉아'와 '기다려',' 손' 을 모두 잘한다.
하지만 "빵"하고 총을 쏘면 죽는시늉을 해야 하는 건 어려운가 보다.
몇 가지를 더 가르치려다가 아직 4개월 된 애한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그저 배변만 잘 훈련돼도 그것으로 충분한 것을.
하지만 구월이는 천재 댕댕이가 맞는 것 같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