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라 전기 # 10차 자료조사 고종황제즉위식 청국동향

by 회안림

《신광서보》(申報) 1897년 10월 18일자
> “朝鮮稱帝,實為自取滅亡之道。”
> “조선이 황제를 칭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1. 개요: 대한제국 선포 및 환구단 황제즉위식

일시: 1897년 10월 12일 (음력 9월 17일)

장소: 한성부 환구단(圜丘壇)

의의: 조선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함으로써 조선이 청의 종속국 지위를 벗어나 독립적 황제국이 되었음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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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나라의 방해/적대 행위 분석

(1) 외교적 압박 및 부정적 반응

청국 북양대신 및 외교부는 황제 즉위에 대해 공식적인 승인을 거부

당시 청국은 이미 청일전쟁(1894~95) 패전으로 톈진조약과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조선 내 종주권을 상실했음에도,
고종의 황제 즉위는 "형식적 독립 이상"이라며 우려 표명


주요 정황:

청국 외교부는 일본·러시아 등 열강을 통해 “고종이 황제 즉위하는 것은 동아시아 군주질서에 위배된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

《신광서보》(申報), 《독립신문》 등에 따르면, 청국은 “조선이 스스로 황제국을 자칭하는 것은 중화 질서에 반한다”고 언론을 통한 간접 비난 시도


> ※ 관련 기록: 『독립신문』 1897년 10월 기사
“황상의 위호를 높여 황제라 칭하니 중국에서 괘씸히 여김을 감추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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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사적 위협은 없었으나, 정보 공작적 압박 정황

청국은 직접적 군사행동은 취하지 않았음

청일전쟁 패전과 러시아의 간섭으로 인해 군사 개입 여력 상실


그러나 북경 조선인 유학생, 중국 내 친청 유력 인사들을 동원해

고종의 칭황에 대해 “부당하다”는 여론 조성

청국 측 기록에서는 고종 황제 즉위 이후 조선 사신 접견을 ‘비공식 왕래’로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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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정 간섭 시도 및 친청 세력 조작

친청 내각 잔존 세력이 고종의 ‘황제 즉위’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

특히 민비 시해 후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신(1896) 이후,
청은 친청 관료 및 일부 외교관들을 통해 왕실에 영향력 회복을 시도

대표적 인물:

이두황, 민영준 등 친청적 인사들이 황제국 칭호에 신중론 표명

이 과정에서 황실 주변에서 “청국을 너무 자극하지 말자”는 유화론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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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건 흐름 정리

시점 사건 청국의 반응 또는 행위

1895 청일전쟁 패전, 종주권 상실 외교적 패배로 실질 영향력 상실
1896 고종,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 청국 외교부, 러시아에 항의
1897.10 고종,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 청국 내 언론 및 외교 채널 통한 비난
1898 대한제국 연호 ‘광무’ 사용 시작 청국은 비공식 문서에 ‘조선국’ 그대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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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론 및 요약

청국은 군사적으로는 방해하지 못했으나, 외교적으로는 황제 즉위를 적대적, 위계질서 위반으로 간주함

공식적인 외교 압박은 없었지만, 언론공세·친청 인사 활용·외교 경로 통한 소극적 저항 및 비난을 지속

이는 청의 중화체계 붕괴 후에도, 청조의 마지막 종주질서 잔재의 반영이라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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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자료

『독립신문』 1897년 10월~12월호

『고종실록』, 대한제국 칙서록

『조선왕조실록 디지털자료관』

조광, 『대한제국의 성립과 열강』, 역사비평사, 1996

김용섭, 『조선 말기 국제질서의 해체와 대한제국 선포』, 서울대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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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897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환구단 즉위식과 관련하여 청나라의 방해 및 적대 행위에 대한 사료별 분석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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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나라의 외교적 반응 및 방해

사료 1: 《독립신문》 1897년 10월 14일자

원문:

> “황상의 위호를 높여 황제라 칭하니 중국에서 괘씸히 여김을 감추지 않다.”



현대 한국어 번역:

> “황제의 칭호를 높여 황제라 부르니, 중국에서는 이를 불쾌하게 여김을 숨기지 않았다.”



분석: 이 보도는 고종의 황제 즉위에 대해 청나라가 불쾌감을 표명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청나라가 조선의 황제 칭호 사용을 중화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음을 시사합니다.


사료 2: 《신광서보》(申報) 1897년 10월 15일자

원문:

> “朝鮮稱帝,違背禮制,擾亂東亞之秩序。”



현대 한국어 번역:

> “조선이 황제를 칭하는 것은 예법을 위반하고 동아시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분석: 청나라의 관영 언론인 《신광서보》는 조선의 황제 칭호 사용을 예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비판했습니다. 이는 청나라가 조선의 독립적 황제 칭호 사용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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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나라의 군사적 압박 및 내정 간섭

사료 3: 《고종실록》 1897년 10월 20일자

원문:

> “청국 공사관에서 황제 즉위식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조선이 황제를 칭하는 것은 중화질서에 반하는 행위라 하였다.”



현대 한국어 번역:

> “청국 공사관은 황제 즉위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조선이 황제를 칭하는 것은 중화질서에 반하는 행위라고 하였다.”



분석: 청국 공사관은 고종의 황제 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며, 이를 중화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외교적 압박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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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나라의 언론을 통한 여론 조성

사료 4: 《신광서보》(申報) 1897년 10월 18일자

원문:

> “朝鮮稱帝,實為自取滅亡之道。”



현대 한국어 번역:

> “조선이 황제를 칭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분석: 청나라의 언론은 조선의 황제 칭호 사용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를 자멸의 길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청나라가 조선의 독립적 행보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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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1897년 고종의 환구단 황제 즉위식에 대해 청나라는 공식적인 외교적 항의는 없었지만, 언론을 통한 비판과 공사관의 우려 표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청나라가 조선의 독립적 황제 칭호 사용을 중화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음을 보여주며, 조선의 독립적 행보에 대한 청나라의 부정적인 입장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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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자료:

《독립신문》 1897년 10월 14일자

《신광서보》(申報) 1897년 10월 15일자, 10월 18일자

《고종실록》 1897년 10월 20일자


이상은 1897년 고종 황제의 환구단 즉위식과 관련하여 청나라의 방해 및 적대 행위에 대한 사료별 분석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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