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진실
지옥은 '보내는' 곳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는' 곳입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가장 서늘하고도 명징한 진실은, 우리가 느끼는 삶의 고통이 결코 임의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이 세계의 '기본 설정값'이 애초에 결핍과 마찰로 설계되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원죄의 저주이고 불교의 일체개고입니다.
인류의 가장 깊은 지혜들은 압도적인 실존적 좌표를 제시합니다.
진짜 지옥은 누군가 우리를 처벌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대로 방치하는 상태 그 자체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비극이 완성되듯이, 거친 세상의 흐름 속에 존재가 유기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저주와도 같습니다.
먼저 기독교를 통해 보도록 합니다. 기독교 개혁주의가 말하는 '원죄(Original Sin)'와 '저주'는 신이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 고안한 형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과 연결이 끊어진 인간이 겪게 되는 지극히 '물리적인 결과'입니다.
기독교적 저주의 본질이란 신이 우리를 벌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호막(은총)이 거두어진 자리에 원래 존재하던 어둠과 허무가 밀려온 상태를 의미합니다.
거리에서 그토록 우리 귀에 거슬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다르게 접근해 보도록 합니다. 그것은 '이미 저주인 이곳에 그대로 남겨진다'는 실존적 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가장 잔인한 저주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음으로 불교의 일체개고를 살펴봅니다.
기독교가 '단절'을 말한다면, 불교는 존재의 '마찰음'에 주목합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감상적인 투덜거림이 아니라, 우주의 작동 원리에 대한 지극히 냉철한 물리학적 진단입니다.
구조적 불일치인 '고(Dukkha)'의 어원은 수레바퀴의 축이 구멍에 딱 맞지 않아 굴러갈 때마다 삐걱거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는데,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려 하기에 삶은 그 자체로 거대한 마찰음이 됩니다.
두 위대한 통찰이 만나는 지점은 명확합니다. 바로 "이곳이 지옥이다"라는 진단입니다.
내가 있는 곳이 지옥임을 아는 자만이 비로소 밖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내 힘으로 이 세상을 고칠 수 없다는 '항복'이 일어납니다, 그때서야 바로소 대전환이 가능해집니다. 이미 저주받은 세상, 일체개고의 바다 한복판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의 오만함을 내려놓고 근원적 법칙에 나를 맞추는 것뿐입니다.
이제 이 실존적 지옥인 세상에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최선을 살펴봅니다.
이 방치의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내놓은 수많은 답 중 하나인 기독교적 '대속'은 사상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복원 프로토콜입니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라는 과정에 집중하며 끝없는 노력을 요구할 때, 이 방식은 나의 모든 존재적 채무가 이미 상환되었다는 선언에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선택을 넘어, 자신의 신분이 방치된 미아에서 보호받는 존재로 즉각 전환되는 법정적 판결과도 같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확실한 내면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장치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합리적 지성은 이 가성비 최강의 복원 프로토콜을 그리 쉽게 호락호락 받아들일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스마트한 현대인을 위한 복원 프로토콜로서 최선을 살펴봅니다.
먼저 현실을 직시하는 힘입니다. 이 고통이 이 세계의 기본값임을 담담히 인정합니다.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 정상이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비정상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늠연히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이든 우주든 어떤 압도적인 존재에게 겸허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함 가운데 실존적 지옥을 살아가는 최선이란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그 압도적 존재 앞에 가장 의로운 방식으로 처리해 나가는 것뿐입니다. (Do the next right thing)
결국 영성적인 삶이란 대단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 실존적 지옥 속에서 개별적 복원 방식을 선택하고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로 견디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개별적 절대성과 연결된 지점을 찾습니다.
그것이 세상 가운데 늠연히 걸어 나갈 수 있는 각자의 등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