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가면을 쓴 전사들

뉴라이트 실체 해부

by 회안림

프롤로그

​그들은 전향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섬기는 신(God)을 바꿨을 뿐입니다.

​'독재 타도'를 외치던 80년대 투사들이 '건국 전쟁'의 전사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김일성을 버리고 이승만을 선택했지만, 그들의 뇌 구조는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전체주의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건국절 논란까지, 역사를 세탁하며 혐오와 갈등을 생산하는 '애국 비즈니스'의 실체를 해부해 보도록 합니다.

​일러두기

​본 분석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이 없으며, 한국 현대사의 주요 정치·사회적 현상인 '뉴라이트'에 대한 학술적, 사회학적 비평과 공익적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합니다. 서술된 심리 분석 및 해석은 공개된 자료에 기반한 문학사인 작가의 주관적 견해 및 비평의 영역임을 밝힙니다.

​제1장. 역사가 아니라 정치다

​1. 이익 집단으로서의 성격

​뉴라이트 현상은 순수한 학문적 연구를 넘어, 현실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치적 지향성을 띤 결사체'의 성격을 보입니다. 이들은 기존의 민족주의 사관을 '반일 종족주의'라고 규정하며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일제 강점기의 경제적 변동을 강조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제시합니다. 이는 학문적 영역을 넘어 보수 진영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로 기능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2. 핵심 맥락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핵심 개념을 파악해야 합니다.

첫 번째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수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철도, 공장, 행정 시스템 등 한국 경제 발전의 물적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학설입니다. 이는 "감성적 민족주의를 배제하고 통계적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비판 측에서는 마치 강도가 집에 들어와 가구를 부쉈지만 최신형 도어록을 달아줬으니 이득이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며 반발합니다.

두 번째 ​반일 종족주의입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에서 제기된 개념입니다. 한국인의 반일 감정을 이성적 판단이 아닌 '샤머니즘적 집단 감정(종족주의)'으로 해석하며,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 일본 우익 논리의 수입

​뉴라이트의 논리는 한국 내부에서만 생성된 것이 아닙니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들의 논리가 일본 최대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의 역사 수정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우익이 자국의 침략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 비판하듯, 한국 뉴라이트는 반일 감정을 '반일 종족주의'라 비판합니다. 가해자(일본 우익)의 자기변명 논리가 피해자 국가(한국)의 학자에 의해 수입되어, 자국의 역사 인식을 공격하는 도구로 쓰이는 기묘한 공명 현상입니다.

​제2장. 계보 추적

​1. 사상적 전향의 지도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한 핵심 그룹의 다수는 1980년대 운동권, 그중에서도 NL(민족해방) 계열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NL (National Liberation) 계열은 80년대 학생운동의 주류로, 북한의 주체사상을 수용하고 가장 극렬하게 반미를 외쳤던 그룹입니다. (반면 노동자 권리를 중시했던 PD 계열은 현재 진보 정당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전향의 배경은 1990년대 동구권 몰락과 북한의 실상을 목격한 뒤, 이들은 사상적 대전환을 겪습니다. "김일성 만세"를 외치던 입으로 "이승만 만세"를 외치게 된 것입니다.

​2. 인물 추적

김영환은 1980년대 운동권 필독서 《강철서신》의 저자로 '주사파의 대부'였습니다. 1991년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으나, 북한의 처참한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전향했습니다. 현재는 뉴라이트 진영의 사상적 리더입니다.

안병직은 본래 진보적 마르크스 경제학자였으나, 일본 유학 중 실증 데이터를 접하며 사상을 전향,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립한 뉴라이트 경제사학의 대부입니다.

​제3장. 통계의 함정과 레닌주의

​1. 통계의 함정

​식민지 근대화론이 제시하는 거시적 통계(GDP 성장 등)는 이중 경제 구조를 간과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비지배적 성장의 함정 측면에서 일제 강점기 총생산량은 늘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치 "강남 아파트값이 폭등해서 한국 평균 자산이 늘었으니, 쪽방촌 서민들도 부자가 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부의 대부분은 일본인과 소수 자본가들의 경제 블록 내에서만 순환했습니다. 다수 조선인의 쌀 소비량이 오히려 급감했다는 통계는 성장의 혜택이 분배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2. 우파 레닌주의

​그들은 사상의 내용은 자유주의로 바꿨지만, 사상을 다루는 뇌의 회로는 바꾸지 못했습니다. ​소수의 엘리트가 전위대가 되어 대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 반대파를 적으로 규정해 섬멸하려는 태도,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방식 등은 젊은 시절 학습한 공산주의 혁명론의 습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전투적이고 혁명적입니다.

​제4장. 혐오의 심리학

​1. 심리 기제

​종교를 바꾼 사람이 모태 신앙인보다 더 광신적인 법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친북 과거'가 보수 진영에서 약점으로 잡힐까 두려워합니다. 그 과오를 씻어내기 위해 누구보다 더 강력하게 좌파를 공격하고 친미/친일을 외쳐야 한다는 '과잉 적응' 강박에 시달립니다.

​2.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역전

​젊은 시절 그들은 아버지(독재 정권)를 죽이려 했던 반항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어 실패를 맛본 뒤, 이제는 그 아버지를 부국강병의 신으로 부활시키고 자신을 그 영웅의 후계자로 포장하려 합니다. 이는 젊은 날의 과오를 덮기 위한 심리적 타협입니다.

​3. 2030 청년 보수와의 결합

​최근 뉴라이트는 늙은 운동권 이미지를 벗고 2030 남성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는 감성적인 민족주의보다는 차가운 '팩트(통계)'와 '능력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뉴라이트는 이를 파고들어 "교과서의 감성 팔이에 속지 말고 통계를 보자"라고 설득합니다. ​과거의 반공 프레임에 공감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위해, 반중 정서를 자극하며 "중국에 맞서기 위해 일본과 손잡아야 한다"는 논리로 지지층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제5장. 역사 전쟁의 제도화

​뉴라이트는 단순히 유튜브에서 떠드는 것을 넘어, 국가의 공식 역사 기억을 담당하는 공공기관(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등)의 장으로 진입하여 역사 연구의 생태계(돈줄과 권력)를 장악하려는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의 정점은 '건국절 제정' 시도입니다. ​헌법이 명시한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일을 진짜 건국일로 규정하려 합니다. 이렇게 되면 독립운동의 역사는 건국 전의 일로 축소되고, 1948년 건국을 주도한 이승만과 건국 관료(친일파 포함)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격상됩니다. 이는 보수 진영 내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챙기기 위한 '역사 다시 쓰기'입니다.

​제6장. 공화를 위하여

상처와 영광이 교차하는 한국 현대사는 하나의 조명만 비추면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짙은 그림자가 생깁니다. 뉴라이트(New Right)가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빛'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역사의 특정 면(경제 성장)만 강하게 비춰 반대편(인권, 식민지 상처)을 암흑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뉴라이트 현상은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 변화와 역사 인식의 충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그림자는 없애야 할 악이 아니라, 통합해야 할 나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이념적 편향의 그림자 통합을 위해 뉴라이트를 넘어선 멀티라이트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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