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으로 관계맺기

너와 나의 경계

제1장. 타인의 욕망을 걷어내는 작업


1. 서론: 1969년 에설런, 혁명의 진원지에서


이 텍스트를 제대로 해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계를 1969년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왜 하필 1969년일까요?"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도록 합니다. 1969년은 인류 문명사, 특히 서구 지성사에 있어 이성(Reason)이라는 태양이 지고 감각(Sensation)이라는 달이 떠오르던 거대한 분기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해 여름, 뉴욕의 베델 평원에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이 열려 40만 명의 젊은이가 진흙탕 속에서 사랑과 평화를 외쳤고, 동시에 캘리포니아의 한 가정집에서는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히피 문화의 종말을 예고했습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딘 것도, 인터넷의 전신인 아파넷(ARPANET)이 연결된 것도 바로 이 해입니다. 즉, 1969년은 낡은 것과 새것, 기술과 영성, 질서와 혼돈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던 해였습니다. 이 텍스트는 바로 그 충돌의 파편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소는 캘리포니아의 빅서(Big Sur) 해안가 절벽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에설런 연구소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말 그대로 거대한 혼돈의 도가니였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베트남 전쟁의 참상이 생중계되었습니다. 하버드와 예일 출신의 똑똑한 엘리트들이 설계한 전쟁이 왜 비이성적인 살육과 광기로 귀결되는지, 젊은 세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거리에서는 흑인 민권 운동가들이 곤봉에 맞으며 쓰러졌고,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이후 분노한 군중은 도시를 불태웠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히피(Hippie)들은 꽃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만드는 차가운 지성 대신, 사랑을 나누는 뜨거운 몸을 선택했습니다.


기존의 권위와 청교도적 도덕관은 이 시기에 처참하게 붕괴하고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기성세대에게 도덕은 국가에 대한 충성, 가장으로서의 책임, 성적인 절제였습니다. 그러나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게 그것은 위선일 뿐이었습니다. 낮에는 근엄한 척하지만 밤에는 탐욕스러운 아버지들, 정의를 외치며 약소국을 폭격하는 국가. 이러한 아버지의 법이 무너진 자리에는 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젊은이들은 동양의 신비주의와 사이키델릭(psychedelic) 약물, 그리고 집단 심리 치료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갈증 속에서 에설런 연구소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인간 잠재력 운동의 메카이자 새로운 정신 혁명의 진원지였습니다. 올더스 헉슬리, 에이브러햄 매슬로, 아놀드 토인비 같은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이곳은 서구의 합리주의가 더 이상 답을 주지 못할 때, 인간의 내면과 우주적 의식을 탐구하기 위해 세워진 현대판 수도원이자 실험실이었습니다.


그곳에 헝클어진 흰 수염과 멜빵 바지,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70대의 노인, 프리츠 펄스(Fritz Perls)가 서 있었습니다.


에설런에서의 펄스는 점잖은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더러운 늙은이(Dirty Old Man)'라고 칭하며, 체면과 위선을 경멸했습니다. 그는 줄담배를 피우며 내담자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잘난 체하는 지식인들을 무대 위로 불러내 망신을 주기도 했습니다. 워크숍에서 그는 핫 시트(hot seat)라 불리는 빈 의자를 두고, 환자가 자신의 내면과 싸우며 소리 지르고 울부짖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그는 괴팍한 노인네였지만, 영혼의 질식을 호소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주는 구루(Guru)였습니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통 정신분석학이 가진 권위주의와 환원주의에 평생을 바쳐 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36년, 젊은 펄스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마리엔바트에서 열린 국제 정신분석학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우상이었던 프로이트를 찾아갔습니다. 펄스는 흥분된 마음으로 자신이 연구한 이론을 설명하려 했으나, 프로이트는 문칸에 서서 차갑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떠날 건가?" 이 단 한마디의 문전박대와 모멸감은 펄스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는 과거를 캐묻고 해석하는 권위적인 분석가(아버지)를 죽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과거의 트라우마 덩어리가 아닌 지금-여기(here and now)에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적 전환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고고학적 시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근대적 주체의 죽음을 예고했듯, 펄스는 '분석되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즉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의 심리학적 실천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본질/과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실존/현재)에 의해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가 낭독한 게슈탈트 기도문(Gestalt Prayer)은 단순한 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68혁명의 정신을 심리학적으로 압축한 시대의 선언문였습니다. 당시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구조 기능주의와 행동주의 심리학에 대항하여, 인간을 부품이 아닌 유기체로 복원하려는 제3세력 심리학(인본주의 심리학)의 깃발이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영혼을 억압해 온 수천 년의 집단주의와 도덕주의에 대한 실존적 독립 선언문이자 심리적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였습니다.


여기서 집단주의와 도덕주의란 "너는 장남이니까 참아야 해",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해"와 같은 슈디즘(shouldism), 즉 당위의 폭력입니다. 사회는 개인의 욕구(Want)보다 집단의 규칙(Rule)을 우위에 두었습니다. 펄스는 이것이 개인을 신경증 환자로 만든다고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이 기도문은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의무라는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라는 영토의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피 끓는 독립 선언입니다.


이제 그 선언문의 첫 번째 문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합니다(I do my thing and you do your thing)."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 증대하려는 본원적 힘), 노자의 무위자연,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이 융합된 거대한 사유의 체계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지식의 큐레이터가 되어 이 압축 파일을 해제하여, 그 안에 담긴 존재론적 의미를 낱낱이 파헤쳐 보도록 합니다.


왜 이 세 가지 사상이 융합되었을까요? 첫째,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펄스가 말한 씽(Thing)의 생물학적 기초입니다. 유기체가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살아가려는 힘은 도덕 이전의 본능입니다. 둘째, 노자의 무위자연은 펄스의 방법론입니다. 억지로 변화하려 노력하지 말고, 자신의 흐름을 따를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는 '변화의 역설'은 도가 사상의 현대적 적용입니다. 셋째, 실존주의는 이 모든 것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신도, 국가도, 아버지도 없는 세상에서 홀로 선 단독자로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태도. 펄스는 이 이질적인 동서양의 지혜를 용광로에 녹여, 병든 현대인에게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이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처방전을 내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