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
제3부. 어쩔 수 없음의 이중적 의미
1. 서론: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합니다.
I do my thing and you do your thing.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I am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your expectations,
그리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또한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And you are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mine.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입니다.
You are you, and I am I,
만약 우연히 우리가 서로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and if by chance we find each other, it's beautiful.
만일 그렇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If not, it can't be helped.
게슈탈트 기도문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문장은 조금은 서늘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If not, it can't be helped)."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캘리포니아 에설런 연구소의 풍경을 잠시 들여다보도록 합니다.
무대 중앙에는 핫 시트(Hot Seat)라 불리는 빈 의자가 있고, 그곳엔 프리츠 펄스가 앉아 있습니다. 한 여성 내담자가 울먹이며 호소합니다.
"박사님, 저는 너무 외로워요. 제 남편은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요. 박사님이라도 저를 좀 위로해 주세요."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내 천천히 담배를 피워 뭅니다. 그리고 내담자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차갑게 내뱉습니다.
"그래서요? (So what?)"
내담자는 당황합니다.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나에게서 동정이라는 사탕을 얻어내려고 징징거리는 아이처럼 굴고 있군요. 나는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여기 앉아 있는 게 아닙니다."
게슈탈트 기도문의 마지막 문장, "만일 그렇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If not, it can't be helped)"는 바로 이 핫 시트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만남의 체념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신경증적인 의존심으로 나를 휘감으려 할 때, 그 끈적한 손길을 단호하게 쳐내는 실존적 검객의 일도류입니다.
제1층위: 궁수의 비유
이 문장의 첫 번째 의미는 결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최고선악론》에서 소개한 스토아 학파의 궁수의 비유(Stoic Archer)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봅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행위의 목적을 두 가지로 엄격히 구분합니다.
첫째, 스코포스(Skopos, 과녁)입니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과이며, 갑자기 부는 바람이나 과녁의 이동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즉, 이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텔로스(Telos, 본질적 목적)입니다. 활시위를 당기는 자세의 완벽함, 호흡, 집중력,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 그 자체입니다. 이것은 과정이며,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현명한 궁수는 스코포스(명중)를 지향하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는 텔로스(올바른 사격 행위)의 완성에 있습니다. 화살이 손을 떠난 순간, 결과는 궁수의 손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돌풍이 불어 화살이 빗나간다 해도, 궁수의 텔로스는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게슈탈트 기도문의 "It can't be helped"는 "나는 나의 일(I do my thing)을 다했다는 의미로서의 어쩔 수 없음입니다.
제2층위: 카렌 호나이의 '신경증적 요구'와 능동적 거절
하지만 심층적 층위로 내려가면, 이 문장은 방패가 아닌 창(Spear)이 됩니다. 이것은 병리적 관계에 대한 능동적 거절 선언입니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독일 출신의 신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Karen Horney)의 관점을 통해 보도록 합니다. 그녀는 현대인의 신경증을 분석하며 두 가지 핵심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당위의 횡포(The Tyranny of the Should)입니다.
신경증 환자는 현실의 나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자아상을 숭배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향해 명령합니다.
"너는 반드시 나를 사랑해야 해(Should)."
"우리는 무엇 무엇한 무앗이어야 해."
이 Should가 지배하는 관계에는 자유나 우연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강박적인 의무만 존재합니다.
두 번째는 신경증적 요구(Neurotic Claims)입니다.
호나이는 신경증 환자들이 세상에 대해 가지는 비합리적인 권리 의식을 지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괴로우니 너는 나를 도와줄 의무가 있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감히 나를 거절해?"
그들은 자신의 고통이나 헌신을 담보로 타인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요청(Request)이 아니라 빚 독촉(Claim)입니다.
게슈탈트 기도문의 "If not(만일 그렇지 못한다면)"은 바로 상대방이 이 당위의 횡포와 신경증적 요구를 무기로 나의 경계를 침범해 들어오는 미성숙을 의미합니다. 상대가 우연한 발견이라는 아름다운 전제를 깨고, 나를 자신의 기대에 부응시키기 위한 대체재로 쓰려 할 때입니다.
이때 펄스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It can't be helped."
이것은 "상황이 안 돼서 못 도와준다"는 핑계가 아닙니다. 호나이의 이론을 빌려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당신의 신경증적 요구(Claim)를 거절한다."
"나는 당신의 당위(Should)가 휘두르는 기대에 부응하지 않겠다."
펄스가 내담자들에게 던진 "당신의 똥은 당신이 닦아라(Wipe your own ass)"라는 일갈은, 바로 이 신경증적 요구에 대한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거절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상대방이 스스로 똥을 닦을 기회(자립의 기회)를 내가 뺏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사랑이자, 나를 지키는 냉정한 방어벽입니다.
'추함'을 거부하고 '고독'을 택하다
마지막으로 이 거절은 미학적(Aesthetic) 결단입니다.
게슈탈트 기도문은 우연한 만남을 "아름답다(Beautiful)"고 규정했습니다. 펄스에게 미(美)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Aliveness)과 진실한 것(Truth)입니다.
반대로, 당위(Should)에 의해 억지로 끼워 맞춘 관계, 의무감으로 유지되는 껍데기뿐인 만남, 서로의 목을 조르는 융합은 펄스의 관점에서 "추하다(Ugly)"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If not, it can't be helped"는 다음과 같은 심미적 선언이 됩니다.
"나는 추한 관계 속에서 거짓된 만남을 이어가기보다는, 차라리 고독한 본질을 택하겠다."
썩은 사과를 상자에 남겨두면 나머지 사과도 썩습니다. 썩은 관계를 어쩔 수 없다며 잘라내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부 처리입니다.
거절할 수 있는 힘이 만남을 완성한다
결국 게슈탈트 기도문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거절할 수 있는 힘(The power to refuse)을 부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우리의 수락은 가치를 가집니다. "아니오(No)"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의 "예(Yes)"는 관계의 굴종일 뿐입니다. 하지만 언제든 "어쩔 수 없다"며 떠날 수 있는 자유인이, 카렌 호나이가 말한 당위의 압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함께하겠다"고 말할 때, 그 고백은 스토아적 궁수가 쏘아 올린 화살처럼 정확하게 상대의 영혼에 명중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통하여
타인의 기대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고
나라는 존재의 기둥을 세우고
이제 병리적 관계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검(剑)을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 검을 쥔 나는 필연적으로 혼자가 될 것입니다. 이 고독은 현존의 왕좌에 앉은 자의 고요함입니다. 그 마지막 영웅의 여정을 향해 떠나보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