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제의 무녀 사야 # 외전 1. 세이의 길 1993

이어지는 바람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문화재 발굴현장.

수개월 째 발굴에도 불구하고 성과 없이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세이는 문화재학과 동기인 이선빈과 현장보조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학예사들은 손가락 뼛속 하나하나까지 얼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꽁꽁 언 손끝으로 차가운 물웅덩이의 진흙을 걷어내다 소리쳤다.

“여기… 뭔가 있어요!”

밤까지 계속된 추가발굴 끝에 그 온전한 형상이 드러났다.

완전한 형태의 백제 향로였다.
세이와 이선빈은 진흙 범벅인 고무장갑을 마주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날 현장의 짜릿한 감동은 세이와 이선빈의 고생스러운 진로를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백제금동대향로가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었다는 속보가 전국을 뒤덮었다.

언론은 '백제 예술의 극치’'라며 열광했고,

문화재청은 국보 지정 절차에 착수했다.

흥분에 들떴던 날, 세이는 꿈을 꾸었다.

불타는 건물, 무너지는 석벽, 단검을 든 여인들,

그리고 제단에서 기도하는 여인.

그 여인이 마지막에 돌아보았을 때—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미소지으며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사야-'

세이는 아침에 일어나 배시시 웃었다.

“사극을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세이는 이를 닦다 문득 생각났다.

“이선빈, 이 바보자식은 왜 꿈속에 껴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