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제의 무녀 사야 #5 고대의 제례

사야의 눈물

그 무렵, 화랑 관창과 반굴은 황산에서 이미 제례를 올리고 있었다.

묘련은 페제의 무녀를 속박할 포석을 케이린군에 안배해 놓은 것이었다.


페제군이 신의 바람을 타고 폭풍처럼 돌진하던 패도적인 전투의 공간,

그것은 또한 묘련법사가 안배해 놓은 제례의 희생제물이 완성되는 제단이기도 하였다.


케이린군이 뒤흔들리고, 전열이 무너지던 그 전투에서 두 화랑은 스스로 제례의 제물이 되었다.

먼저 단신 출격한 반굴이 페제군 창끝에 찔려 피를 토하며 말에서 떨어졌다.

들판에 쓰러진 반굴은 하늘에 우러러 기도했다.

"황룡이시어, 케이린을 도와주소서."


관창도 그 뒤를 따랐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곧장 페제군 전열 속으로 뛰어들었고, 창날과 칼 사이를 가르며 질주했다.


그 피가, 그 고통이, 그 혼신의 돌격이—

황룡의 가슴에 닿았다.


관창이 최후에 순간 울부짖었다.

"황룡이시여, 케이린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페제 군의 창이 가슴을 관통하자 관창은 말 위에서 하늘을 우러른 채 숨을 거두었다.

황룡의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본래 황룡은 케이린의 수호자로 봉안된 신이었다.

신조차도 소명에서는 편치 않았다.


"너희의 피와 제례를 받겠노라.

무례한 자들이나, 그 제례가 진실하도다.

나는, 삼한의 신을 이어주는 진한의 신,

아홉 나라의 신들을 이어주는 케이린의 신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케이린의 법사들이 고대의 진언을 외웠다.

케이린법사들은 더 이상 이방의 진언으로 신을 능멸하지 않았다.

그것은 진한의 오래된 노래였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고대의 언어인가... 참으로 듣기 좋구나."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묘련이 간절하게 청하였다.

"케이린을 보우하소서."


황룡의 몸체가 구층탑을 한 바퀴 감싸 안았다.

그리고 구층탑에서 쏟아진 황금의 기운이 황산으로 뻗어 갔다.

그 빛은 사야가 펼친 황산의 바람을 무력화시키고

마침내는 주술 본진인 조룡대 제단까지 닿았다.


조룡대 바람의 제단 위,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형상은

천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야는 자신의 결계 속으로 거대한 신의 회오리가 소용돌이쳐 옴을 느꼈다.

그것은 패도적인 바람이었으나, 그녀의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용의 숨결이었다.


마침내 황룡의 숨결로 사야의 머리카락조차 흩날렸다.

사야는 부복하며 아뢰었다.

"진한의 신이시여, 저의 노래를 즐기소서."


"너의 노래는 아름답도다.

너의 향은 맑도다.

너의 기도는 참으로 간절하도다."


"그리하오니 저의 노래와 향과 기도를 들으소서"


" 너의 제례는 아름다우나 나는 케이린의 호국룡으로 봉안된 몸..."


사야는 간절하게 말했다.

"진한의 신께서 어찌 이국의 술사에게 매어 있나이까?"


황룡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진한의 호국룡이니라.

내가 케이린을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야는 결심한 듯 선언했다.

“그렇다면 힘으로 마한에 봉인하겠습니다.

황룡이시어, 무례를 용서하소서."


사야는 제단 위에서 봉황의 힘을 빌어 바람의 주술을 펼쳤다.

사야의 주술은 전장조차 뒤엎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

사야의 주술은 파공음을 내며 황룡을 향했다.


황룡은 붉은 눈을 부릅뜨고 파공음 사이로 쇄도해 와서 순식간에 사야를 휘감았다.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윽-“

비명을 지른 사야가 강력한 황룡의 신력으로 숨조차 쉴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잠시 정신을 잃은 사야는 겨우 제단 위에서 눈을 떴다.


하늘 위, 저 멀리— 황룡의 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룡은 연민의 눈으로 그녀를 내려보았다.

"무녀여, 하찮도다. 연약하도다.

얼마나 힘을 주어야 너를 부셔 뜨리지 않을 수 있는지...

부셔 뜨리지 않게 너를 멈추느라 내 마음이 쓰이는구나."


그것은 나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고, 경외였다.

사야는 무릎을 꿇고 황룡에게 절을 했다.


황룡이 타이르듯 사야에게 말했다.

"무녀여, 이제 인간들끼리 결정하도록 삼한의 신들을 그만 놓아두도록 하라."


사야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짙은 눈썹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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