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룡대의 여무사들
조룡대의 능선 아래, 북소리와 함께 대지가 울렸다.
그 울림은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노출된 주술 본진을 향해, 당제국의 법사단과 정예병력이 밀려오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흐르는 사야의 주술진은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연무는 봉황의 숨결처럼 기류를 타고 흐르며,
조룡대 언덕을 짙은 안개처럼 뒤덮었다.
흑치월혜는 여무사들을 종심에 두텁게 배치해서 언덕 위에 반월진을 펼쳤다.
반월진은 점 점 연무 속에 감추어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고요해 보이는 풍경 속에,
무녀들은 각 방위에 주술진을 전개하고 있었다.
자욱한 연무 속에서 음류 주술을 담은 석적음이 공기를 가르자
짙은 농도의 연무가 당군 정예의 전방 전열 앞으로 스멀스멀 흘러 왔다.
"썬머? 쩌스 썬머?"(이거 뭐야?)
전방 전열의 병사들은 두려움을 내뱉으며
감히 연무 속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오히려 연무에 가까워진 우측 전열은 뒷걸음질 쳤다.
"전진하라! 전진! 전진!"
분기탱천한 군장들이 쉬익- 쉬익- 채찍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전방으로 내몰았다.
으아악!
채찍에 휘갈겨진 병사들의 등짝에서 피가 튀겼다.
살이 갈라지며 외마디 비명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병사들은 마지못해 한 두 발짝 움직이고는 긴 창만 짙은 연무 속에 휘둘렀다.
마치 괴물이라도 숨어있다가 그들을 덮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와아아-
연무 속에서 얼굴에 신의 글자를 그려 넣은 페제의 여무사들이 뛰쳐나왔다.
유령 같은 여무사들의 쇄도에 당군 전열은 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여무사들은 검으로 장창을 쳐내고 순식간에 당군 전열 속에 뒤섞였다.
갑작스러운 근접 전에 장창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도검에 쓸려 나갔다.
후위 전열에 가로막혀 속절없이 도륙당하는 자,
공포에 휩싸여 후위 전열까지 무너뜨리며 도주하는 자,
장창을 버리고 단검을 빼들어 저항해 보는 자,
전방 전열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눈앞에서 피칠갑한 페제의 여무사들이 날뛰자
후위 전열까지 혼비백산하여 등을 보였다.
당군 수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휘봉을 높이 들어 올렸다.
당 창병들이 일제히 혼전 중인 전방 전열을 겨냥했다.
순간, 지휘봉을 들어 올린 팔이 가차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휙- 휙-
수백 개의 창들이 일제히 전방 전열의 난장판을 향하여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피아의 구분조차 없었다.
으아악- 먼저 절명하기 시작한 것은 당군 병사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방패가 전방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무사 수십 명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절명했다.
육중한 창들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혼전 중인 모두를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후퇴하라!
흑치월혜의 명령에 여무사들은 피에 젖은 시신을 방패 삼아 연무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은 마치 저승의 나찰에게 끌려가는 혼령 같았다.
당군의 눈앞에 펼쳐진 페제의 무자비한 살육은 공포를 넘어 경외였다.
당 수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진공을 명령했다.
이번에는 당군장들 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당 수장은 군장 하나를 패대기치고는 백보 뒤로 병사들을 물렸다.
당병사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전방을 향해 창끝을 겨누었다.
온몸의 근육이 창끝에 집중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깨우친 것이다.
페제 여무사들과 뒤엉킨다면 똑같은 운명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
비웃음을 흘리며 당술사들이 전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 사이에 페제의 무녀 하나가 나란히 섰다.
적사원안이었다.
당술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각 방위를 맡아서 법력을 투사했다.
사야는 즉시 주력을 분산시켜 무녀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법력과 주술들이 부딪히자 공기가 터져나갈 듯 응축되면서
도검들이 윙 윙 거리며 공명했다.
이때였다.
적사원안이 냉혹한 표정으로 연무 속 한 곳을 응시했다.
사야의 결계 주축이 숨겨진 곳이었다.
그녀는 주술 설계를 역행하여 주력을 쏟아부었다.
고막을 울리는 파공음과 함께 해당 방위의 결계가 터져나갔다.
그 틈을 기다리던 당술사들은 일제히 법력을 집중시켰다.
패도적인 기류가 사방을 덮었고,
오방의 결계는 찰나의 연쇄폭발처럼 무너졌다.
무녀들은 피를 토했고,
기맥이 터진 어린 무녀들은 눈을 뜬 채 절명했다.
그리고 사야는 제단 위에서 붉은 피를 내뿜었다.
서서히 연무가 걷혀가기 시작했다.
옅어진 연무 속에서 배신한 페제의 무녀 적사원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적사원안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서있었다.
사야는 원망 어린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사야의 주술강기가 칼처럼 날아갔다.
적사원안을 향해 날아든 그 기운은
당술사들의 법력조차 짓이기는 살기였다.
“헉!”
생각지도 못한 살기에 적사원안은 뒷걸음쳤고 당술사들도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사야의 눈이 그녀와 마주친 그 순간, 강기가 흩어졌다.
그 틈을, 당술사들이 놓치지 않았다.
그들의 법력이 파상처럼 밀려들었다.
조룡대의 하늘이 짓눌리고,
봉황의 연기가 찢겨 나갔다.
결계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모이라.”
공기를 읽은 흑치월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피투성이 여무사들은 무기를 끌며 모여들었다.
장창을 움켜쥔 이, 화살을 다시 꿰는 이, 찢긴 옷자락을 동여맨 이…
모두 최후임을 아는 얼굴이었다.
조령대 위 다시 반월형 전열이 펼쳐졌다.
흑치월혜도 여무사들도 모두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무릎 아래로 붉은 진흙이 들러붙고, 온몸은 멍과 피로 얼룩져 있었으며,
이마에서 흘러내린 핏줄기가 턱 아래로 흘렀다.
바람이 멎은 정적 속에서
흑치월혜는 사야를 향하여 목례를 했다.
“시간을 벌 테니 신기를 모시고 빠져 나가요.”
사야는 안타까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월혜….”
“마음 편히 죽게 빨리 가! ”
흑치월혜는 피 묻은 입꼬리를 움직여 웃어 보였다.
흑치월혜가 무녀들에게 눈짓을 하자
살아남은 무녀 서너 명이 사야와 신기를 수습하고 급히 움직였다.
결계가 해체되자 당 수장은 일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당 정예는 괴성을 지르며 언덕 위로 내달렸다.
사야는 무녀들에게 등 떠밀려 가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흑치월혜가 외쳤다.
“바람의 딸이여, 페제의 딸이여!”
그 소리에 여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들었다.
석양빛이 칼끝에 얼어붙은 듯 반사되었다.
“바람의 딸! 페제의 딸!”
그것은 장송이었다.
그녀들의 마지막 군호였다.
흑치월혜와 여무사들은 검을 들고 적진으로 돌진했다.
피의 칼날, 붉은 꽃잎처럼 하나둘 쓰러져가는 그녀들.
마침내, 흑치월혜의 귀에 낯선 바람소리가 스쳤다.
그리고—
조룡대 위, 마지막 바람도 조용히 숨을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