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제의 무녀 사야 #7 사비 대무녀

기억되는 것들은 죽지 않는다.

바람의 기맥이 끊긴 황산은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돌았다.

케이린의 대공세 징후는 뚜렷해졌다.

카이바기는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전방에 집중시켰다.


미동도 없이 전방을 주시 하는그에게 사비 대무녀가 다가왔다.


"조령대 본진이 무너졌습니다."

"그렇소. 이제 여기가 본진이오."


"조룡대에 군사를 보내주세요."

“황산엔 단 한 명도 아쉬운 상황이오.”


그는 사막처럼 황량해 보였다.
사비대무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곳에서 지키고 있는 것은 한 줌 시간일 뿐입니다."

"그거라도 지키려 하오."


"사야 님이 지키는 것은 천년의 시간입니다."

"오늘 죽을 우리에게 천년은 너무 버겁구려. "


대무녀가 망설이다 말했다.

"사비무녀들이라도 가겠습니다."


대군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룡대는 이미 늦었을 것이오."


카이바기 대군장은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입술을 꾹 다문 사비 대무녀는 뜻을 꺽지 않았다.


"그러면 능산 사원으로 가겠습니다."

"능산?"


"사야 님은 분명 그리 갈 것입니다."

"마음대로 하시구려."

서로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면 서로를 놓아주게 된다.


그가 문득 물었다.

"천년은 어떻게 지키는 것이오?"

"바람을 잇는 것입니다."


카이바기는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 죽을진대 천년이라......"


"무녀들은 천년 전의 존재도 불러냅니다.

기억이 이어지면 천년도 삽니다."


"황산의 고혼들도 기억해주시오."

"제가 아니라 바람이 기억합니다."


둘의 대화는평행선이었다.

사비 대무녀는 신의 언어였고

카이바기대군장은 군인의 언어였다.


해의 기울기가 신시 초(오후 3시)에 이르렀다.

사비무녀들은 숲길을 따라 은밀하게 이동했다.

그러나 사비무녀들의 기도비닉은 오래가지 못했다.


숲길을 타고 우회한 케이린의 기마 300기가 무녀 대열을 급습했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달아나면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한 명도 어김없이 반드시 창으로 심장을 꿰뚫었다.

단 하나도 살아있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에 대한 철저한 살육이었다.

사비 대무녀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풀 잎을 움켜쥔 채

죽는 순간까지도 두 눈을 감지 못했다.


비로사율의 정찰보고는 참혹했다.

카이바기 대군장의 심장엔 돌보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칼보다 차가운 자책이 심장을 후볐다.

그제야, 카이바기는 한 줌 시간보다 지켜야 할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가 지금 지켜야 할 이름은 단 하나였다.


'사야'


카이바기 대군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은 기획된 최상위 공격 작전이었다.

무녀 사야의 목숨도 경각에 달려있을 것이었다.


“비로사율!”

피 먼지 투성이 비로사율이 무릎을 꿇었다.

"하명하소서!"


"남은 기마대는?"

"12기입니다!"

“능산 사원으로 즉시 가라.”

사야 님을 지키라!”


"존명!"
비로사율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듯 기마에 올랐다.


이럇!

말발굽이 숲길을 가르며 기마대가 질주했다.
먼지를 둘러쓴 그들은 마치 철풍이 휘몰아치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