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제의 무녀 사야 #8 인간병사

페제의 최후

황산의 전장은 바람이 완전히 멎어 있었다.

사비무녀들의 기도는 멎었고, 신을 부르는 석적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케이린 대군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 줌도 안 되는 페제군과 이렇게 오래 대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케이린 대군장은 몇 번의 살겁을 겪은 후에야 보이지 않는 전장을 통찰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칼을 무력화시켰다.

보이지 않는 힘은 방패로 막을 수도, 칼로 벨 수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힘은 적들에게 강림하여 신병이 되게 하였다.

그 앞에서는 지략도, 전술도, 병법도 무용지물이었다.

이번에는 기마대로 우회 강습하여 사비 주술무녀들을 모조리 참살하였다.

단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것이 그의 유일한 명령이었다.

주술무녀들이란 칼 한 자루 없이도 병사들의 영혼을 베어내는 불길한 존재들이었다.


소정방은 시시 각각 사비성 집결을 종용하고 있었다.

케이린대군장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오로지 페제군에게 피와 살로만 전투를 치르도록 강요해야 했다.


케이린대군장의 진군 개시 명령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기마대를 후방 처형부대로 도열시킨 후 케이린군을 몰고 갔다.

케이린의 선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창이 일제히 앞으로 뻗었고, 진군의 북소리가 산을 울렸다.

철갑이 철갑을 밀며, 파도처럼 밀려갔다.


먼발치의 페제군은 진공처럼 고요한 전열이었다.

그 전열의 중심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케이린 대군장은 한탄했다.

'카이바기... 이처럼 오래 바라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카이바기의 검은 갑주는 피에 젖었고, 투구는 흙먼지에 덮여 있었다.

그는 진공 속에 뿌리 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전면 돌파하라!”

케이린 선봉의 함성이 대지를 흔들었다.
장창의 파도가 방진을 부수고 칼이 칼을 갈랐다.

창이 몸을 꿰었다.

페제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부서진 방패를 든 채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했다.


케이린 대군장은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전장을 누벼봤지만 이렇게 지독한 군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제 무녀도 없고, 신도 없고, 바람도 없었다.

오로지 뼈와 살 뿐인 인간으로 서있는 것이다.

카이바기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렸다.

"나랏사요! 끝까지 싸워라! 싸운 시간만큼 처자식이 더 살아남을 것이다!"

페제군은 찢기고, 베이고, 칼에, 창에, 숨에 저며갔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모두들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케이린 대군장은 혀를 찼다.

페제에 카이바기가 하나여서 다행이었다.

그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고 싶었다.


카이바기는 힘이 다했는지 대창을 황산의 땅에 박았다.

검을 쥔 팔이 땅을 향하여 내려졌다.

그러나 등을 대창에 기대어 꼿꼿하게 서 있었다.


“멈춰라.”

케이린대군장이 말 위에서 소리쳤다.
군장들이 놀라서 대군장을 돌아봤다.


헛된 바람인 듯 케이린 선봉에서 던진 창들이 세 갈래로 날아갔다.

카이바기의 어깨, 옆구리, 가슴을 꿰뚫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그러나 입속의 피가 그 말보다 먼저 넘쳐흘렀다.


"적사무원…”


검은 손에서 떨어졌고, 몸은 기울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


케이린 대군장은 숨을 멈췄다.

황산도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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