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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스마망 Jun 08. 2023

Intro: 엄마는 왜 글을 쓰게 됐을까?

더 이상 이렇게 나를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사실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밤마다 목청이 터져라 읽어주지만 정작 나는 읽지 않는다. 나도 초등학생 시절에는 매달 반에서 다독왕을 거머쥐고, 독후감 상장을 종종 받긴 했지만 이젠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나도 책이 주는 감명, 생각과 가치관의 확장을 확연히 알면서도 읽지 않는다. 엄마가 된 나는 왜 책을 안 읽게 됐을까? 그런데, 책을 읽지 않지만 책을 읽고 싶긴 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 밤마다 자리에 누우면 내가 하루종일 아이에게, 남편에게, 사람들에게,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머리에 맴돌아 잠이 오질 않는다. 근데 말하기는 싫다. 말이라는 건 한번 꺼내면 돌이키기 어렵고, 나중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각나 아쉽기 마련이다. 글은 이런 나를 기다려준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자 다짐했다.


사실 책을 더 이상 읽지 않는 건 자의 반 타의 반일 가능성이 크다. 이 말은 이제부터 변명과 핑계가 나온다는 소리다.

일단은 누구나 알겠지만 엄마는 시간이 없다(핑계 1).

고등학교 시절 무렵 문득 우리 엄마의 삶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세끼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치우고, 우리가 학교 간 시간 동안에는 엄마의 취미생활을 몇 가지 하고, 혼자 집에 둬도 무탈할 만큼 커진 자식들을 두고 때때로 친구분들과 여행도 가는 그런 일상. 내 친구들과 "우리 엄마들은 편하고 좋은 삶을 살고 있어. 좋겠다."라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고등학생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임에 틀림없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고등학생이나 될 즈음에나,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나고 최소 18년 정도는 엄마의 이름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엄마로 너무나도 열심히 사신 후에나 드디어 취미생활을 가지고 한숨 돌리게 된 것이다. 하물며 그때도 완전한 해방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대학 입시라는 막대한 관문이 남아있지 않은가.. 요즘은 취직과 결혼 까지도. 혹은 맞벌이 시 친정엄마의 도움까지도. (엄마 미아내!)


이제 막 엄마라는 타이틀이 익숙해진 나는 올해로 4살과 2살이 된 아이들이 있다. 나에게 아줌마라는 말을 하면 아직도 움찔거리게 되는 걸로 보아 아줌마라는 호칭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듯하다. 내가 생각했던, 그다지 힘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삼시세끼 준비와 치워도 티 나지 않는 집안일 등의 실상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엄마야. 이렇게 힘든 것을 우리 엄마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니. 그야말로 노동집약적 하루를 보내야 하는 엄마의 삶은 그다지 고부가가치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게 된다. 참으로 힘 빠지는 날들이 아닐 수 없다.


아침에 첫째 둘째 등원 준비와 라이딩으로 정신없이 보내고 살려고 시작한 운동 하나 다녀오면 점심이 훌쩍 지나 다시 둘째는 내 차지다. 둘째 낮잠을 재우고 나면 첫째 하원을 시키러 간다. 둘을 데리고 영겁의 시간과도 같은 오후 시간을 보내면 저녁이 온다. 다음날 또 등원해야 하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마음이 제일 바빠진다. 밥 먹고, 목욕하고 자야 하는데 도저히 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화가 올라온다...! 이런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육퇴를 하고 나면, 나의 보상심리가 절로 발동한다. 하지만 그게 생산적으로 될 리가 없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하루였으니 이제라도..! 넷플릭스를 틀고, sns를 훑고, 잠이 오는데도 꾸역꾸역 의미 없는 그다지 남는 게 없는 시간을 보내며 잠에 든다. 그러니 이 틈에서 내가 책을 붙잡고 읽을 시간은 절대 없지 않은가! (자기 합리화 매우 잘하는 편)

 

초중고 학생시절, 대학생활 내내 배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니 이제는 지쳐 책을 읽을 힘이 없다(핑계 2)

사실은 대학교 시절 까지도 배움에 대한 큰 뜻은 없었던 것 같다. 아침수업은 빠지기 일쑤였고 남들이 다 하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니까 배움에 대한 기쁨은 잊어버린 채 수동적으로 지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왜 어른들이 학생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는지 온 뼈가 저릿저릿하게 느끼고 있다. (실제로 저릴 때가 있어서 아직 산후통은 아닌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마 나는 똑같이 하겠지만 그래도 좀 더 열심히 해볼걸.. 하는 마음과 살짝의 후회도 든다. 12년 학생 시절 내내,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도 졸업을 위해, 또 취직을 하기 위해 우리가 했던 무수히 많은 공부들, 그만큼 했으면 많이 했다 싶어 나는 이제 학문에 매진하거나 여유롭기 책을 읽을 에너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내가 책을 읽지 않게 된 이유가 있겠지만, 이만 접어두고 왜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내 시간이 없어지니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것만큼 간절한 것이 없다. 에너지가 없을 뿐, 의지는 있다. 원래 사람은 청개구리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라고 하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은 심리. 지금 내가 그렇다. 배울 수 없는 시간이니 뭔가 더 배움에 대한 갈증이 난다. 그렇다고 앞서 말한 나의 하루 일과 틈에 무언가를 배울 시간을 만들긴 어려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이 자고 나면 나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그다음 날도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이 된 나에게도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학생 시절 받아들인 정보들과 감정들은 어른이 된 내가 받아들이는 것과는 그 크기와 깊이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이런저런 생각들과 현실이 충돌하면서 나는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실제로 고민을 하고 내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니 당장 몸부터 망가졌다. 육아는 체력전인데 몸이 망가지니 잘 될 리가 없다. 몸이 피곤하니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횟수와 빈도가 확연히 많아졌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샤워실에서 아이들에게 샤우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친 거울을 봤다. 여유가 없어도 너무 없고, 어둡고 칙칙해진 내 얼굴은 쳐다보기도 싫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기분. 내 영혼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텅 빈 나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또 나의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린 행태에 아이들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무언가는 바뀌어야 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 한 가지는 하면서 살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건 다른 어려운 일도 아닌 글 쓰는 것이었음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왕 쓰는 김에 그저 일기장과도 같은 기록을 남기기보다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의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직접 시간을 들여 배우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요즘같이 효율성 증대에 가치를 두는 우리는 그러한 시간이 없으니, 필자가 대신 책을 읽어보고 이 글을 잠깐씩 읽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의 갈증이 해소가 되길 바란다. 나는 이것을 위해 아이들이 자고 나면 허송세월하는 시간을 반드시 줄일 것이라.. 다짐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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