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는 임신이 아니라 똥배입니다
사실 나는 서른 즈음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 정말 몰랐다. 그렇게 계획적이지도 않았고 10년 후 나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와 같은 면접 질문에도 그리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 시대상을 반영하자면: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하며 여행도 다니고 아직 엄마아빠 집에 얹혀살고 있겠다는 정도. 그러나 지금의 나는 여유로운 여행은커녕 일도 그만두고 아이 둘과 지내며 하루하루를 육아전투 모드로 살고 있다. 일을 그만둔 것은 나의 의지가 충분히 반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결혼은 나의 선택이었고, 아이를 갖는 것 또한 나의 선택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그게 요즘 시대에 남들보다 일찍 하는 스물다섯 무렵의 결혼인 동시에 엄마가 되기로 한 결정이었지만 그 결정은 차곡차곡 쌓인 나의 치열한 고민 끝에 정말이지 어느 날 정했다. 계획 한대로 흘러가는 삶은 드물겠지만 이렇게 예상했던 삶이 180도 달라져 있기도 드물지 싶다.
친구가 그리 많지도 않지만 친구들 중 대부분은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고 했다 하더라고 아이는 없다. 남들 다 취업하고 막 사회생활에 발들여 놓았을 무렵 1년 만에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을 선택 한 나.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던져오는 다양한 질문과 의심들. 그 당시에는 많은 고민으로 덮여있었지만 인생 계획과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우선 어렵게 취업한 회사를 다닌 지 1년 만에 그만두고 결혼설이 제기되었으니 자연스레 혼전임신설이 돌았다. 증권가 찌라시가 괜히 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돈 뜬소문에 순간 상처였지만 사실이 아니었으니 반박할 것도 없었다. 또 무료하고 각박한 회사생활에서 이런 가십거리가 얼마나 단비 같은지 나 또한 그 입장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얄팍한 아량과 이해해 보려는 마음도 생겼다. 그러나 설사 사실이었다 할지라도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 건 퇴사날 인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나의 배에 사람들의 시선 끝이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뱃살도 오해할까 똥배를 집어넣고 돌아다녔다. 진실을 말해도 어차피 믿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인들이 정해놓은 결론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내 피해의식 일수도 있겠다.
문득 떠올랐다. 왜 그때 이 기억이 떠올랐을까.
중학교 시절, 친구가 쉬는 시간에 준 편지를 교복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다. 수업시간이 되었고 과학실험 시간 도중 주머니 안에서 편지가 툭 떨어졌다. 하필 그때 선생님께서는 내 옆을 지나가셨고 그걸 주워다가 압수하겠다고 하셨다. 수업시간에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반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그다지 친하지 않은 같은 반 친구 한 명(마치 태풍의 눈 같은 친구라 태풍이라고 칭하겠다)이 그 편지를 도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억울하게 뺏긴 거 같아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본인이 책상 위에 있는 걸 가져왔단다. 근데 태풍이 네가 왜?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그 친구는 상당히 뿌듯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께서는 어제 내게서 압수한 쪽지가 없어졌다며 화를 내시며 누가 가져갔냐고 반 전체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가 가져갔는지 보았는지 종이에 써서 내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상황에서 나는 태풍이의 이름을 써낼 수 없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반 친구들이 낸 종이를 모아 펼쳐 읽으시는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늘 보람차게 사는 친구였으니까 보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