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자유, 관계의 단절
히파티아는 서기 4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고대 세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기억된다. 그녀의 아버지 테온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로, 딸에게 수학과 천문학, 철학을 전수했다. 히파티아는 단순히 지식의 수용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교사로 성장했다. 그녀는 수학과 과학을 단순한 계산과 기술이 아닌 삶을 성찰하는 도구, 인간 정신의 자유를 여는 열쇠로 가르쳤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진리를 찾을 수 없다.” — 히파티아, 제자들에게 남긴 말로 전해짐
지혜의 등불, 관계의 그림자 그녀의 학문적 권위는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례적인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학생들과 철학자들은 히파티아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 지위와 권위는 정치적 긴장과 맞물려 결국 그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기독교 세력이 도시를 장악해 가던 시절, 히파티아의 독립적 지성은 의심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군중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지혜와 자유를 상징했던 그녀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타협하지 못한 고립과 단절 속에서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녀의 고립이 지적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면, 나는 오늘날 한 어르신의 삶에서 다른 종류의 고립을 본다.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한 어르신을 생각한다. 올해 아흔을 넘긴 이분은 집에 사람 오는 것을 몹시 꺼리신다. “혈압이 높다”는 의료적 조언을 드려도 고개를 저으며 “정상이다”라 고집을 피우신다. 정치적 이야기에서 의견이 다르면 곧바로 언성이 높아지고, 갈등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방문을 줄인다. 결국 관계는 현관 앞에서 몇 마디 필요한 말만 나누는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이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혼자가 좋네. 괜히 오해 만들고 싶지 않아.”
표면적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상처받을 두려움과 자존감 방어, 그리고 관계 피로의 그림자가 자리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자율성 유지'와 '상실 회피'의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건강과 관계의 문제를 차라리 차단함으로써,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히파티아의 삶처럼 지혜의 등불을 밝히면서도, 동시에 고립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나는 진리를 추구했을 뿐, 누구도 해치려 하지 않았다.” — 히파티아, 최후의 순간에 했다고 전해지는 말
관계 회복, 작은 관심의 힘 히파티아가 지적 자유를 지키려 했던 고립은, 오늘날 어르신의 삶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결국 홀로 남게 된다. 그러나 고립이 항상 부정적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아이작 뉴턴이 전염병으로 격리된 시절, 사과나무 아래에서 중력의 영감을 얻었던 것처럼, 고립은 때로 창조적 사유의 토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히파티아와 이 어르신의 경우, 고립은 더 이상 창조의 힘이 아닌, 관계 단절과 사회적 고립의 위험으로 작용했다. 방문간호 경험을 통해 나는 종종 깨닫는다. 고립된 어르신 곁에서 가볍게 활력증상을 확인하고, 따뜻한 대화를 건네는 작은 순간이야말로, 어르신을 다시 공동체와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관계를 차단했던 어르신이 내게 마음을 열고 지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순간, 나는 작은 관심이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배웠다. 고립으로부터의 해방은 결코 큰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반복적 관심과 접촉에서 시작된다. 학생 봉사단이 찾아와 신앙 간증을 듣고 눈시울을 적셨던 84세 어르신의 사례처럼, 타인의 방문과 소통은 때로 인생의 마지막 빛이 된다.
노년의 거울 결국 히파티아의 비극과 고립된 어르신의 삶은 우리에게 동일한 거울을 비춘다.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홀로 지혜의 등불을 지킨다 해도, 결국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완성된다.
이것이 바로 《노년의 방정식》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당신은 고립 속에서 어떤 자유를 지키고 있는가, 또 어떤 관계를 잃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