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통찰과 인간적 시련의 연대기
존 내쉬의 삶은 수학적 사고의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발견과 통찰의 빛, 그리고 광기와 고통이 교차하는 굴곡진 여정.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 삶은 수학의 미로 같았다. 마지막까지 빛을 찾으려 했다.”
192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블루필드에서 태어난 내쉬는 어린 시절부터 고독한 성향을 지녔다. 또래와 어울리기보다 혼자 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퍼즐을 즐기던 습관은 그의 독창적 사고를 키웠지만, 동시에 사회적 고립을 낳았다. 이 고립의 씨앗은 노년까지 그림자처럼 이어졌다.
프린스턴과 MIT에서 그는 게임이론을 정립하며 경제학의 판도를 바꿨다. 그러나 30대 후반부터 정신분열증이 본격화되었다. 강의실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동료들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연구는 중단되었고, 병원과 약물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는 고백했다.
“약물은 내 머리를 명확하게 해 주었지만, 동시에 감정을 둔하게 만들었다. 균형을 찾는 것이 평생의 과제였다.”
노년기의 내쉬는 치매 초기 증상까지 겹쳐 더욱 취약해졌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늘 아내 알리샤가 있었다. 한때 지쳐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끝내 평생을 함께했다. 주치의 토마스 버틀러는 내쉬의 특이한 생활 방식을 존중하며 치료 계획을 세웠다. 혼란이 심한 날이면 종이에 “3-1-4-1-5-9-2”와 같은 숫자 배열을 적어 건넸다. 내쉬는 그 속에서 규칙을 찾아내며 잠시 집중했고, 흐려진 기억의 회로가 다시 살아났다. 작은 퍼즐이 그의 정신을 붙잡는 다리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몇몇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한 고려인 어르신은 러시아에서 대학까지 졸업해 수학과 과학에 능통했고, 무엇보다 도미노 퍼즐과 체스 같은 사고력 게임을 즐겼다. 늘 눈빛이 반짝이며 문제를 풀던 그분은 당뇨 합병증으로 점차 쇠약해졌다. 배우자는 “명석했던 사람이 점점 바보처럼 되어 간다”며 애달픔을 감추지 못했다. 퍼즐은 여전히 곁에 있었지만, 그 빛은 예전처럼 오래 머물지 못했다. 천재였지만 병과 싸워야 했던 내쉬의 노년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또 한 어르신은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병의 그늘을 뚫고자 매주 전철을 타고 서울 집회에 나아가 공부를 이어갔다. 외모도 단정히 가꾸며 스스로를 지키려 애썼다. 그러나 수면제를 마음대로 복용하다 아침 외출길에 낙상하는 경우가 잦았다. 약물 교육에도 불구하고 처방을 임의로 조절했고, 심지어 뇌전증을 앓는 자녀의 약을 중단시켜 응급실을 찾는 일도 있었다. 고집스러운 자기 방식은 회복의 길을 열기보다 또 다른 위험을 불러왔다. 약물과 창의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내쉬의 고백이 이 어르신의 모습과 겹쳐졌다.
2015년, 내쉬는 아벨상 수상을 마치고 아내 알리샤와 귀가하던 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86세의 내쉬와 82세의 알리샤는 함께 생을 마감했다. 화려한 업적과 고통스러운 질병, 그리고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사랑. 그의 노년은 완벽하지 않았으나, 끝내 혼돈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는 발걸음이었다.
존 내쉬의 노년은 우리에게 세 가지 메시지를 남긴다.
첫째, 어린 시절의 성향은 노년의 그림자가 될 수 있다. 고립된 성격과 사고 습관은 평생을 따라왔다. 둘째, 정신질환 속에서도 인간관계는 회복의 열쇠였다. 아내, 아들, 주치의의 지지가 그를 지탱했다. 셋째, 노년은 완결이 아니라 또 다른 선택의 시간이다. 그는 혼돈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 했다. 그 노력 자체가 삶의 해답이었다.
나는 묻게 된다.
내 삶의 혼돈 속에서 내가 붙들어야 할 빛은 무엇인가? 노년의 방정식 속에서 나는 어떤 해답을 써 내려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