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 기하의 예술가, 방치된 도구

불완전 속에서 머문 삶

by 진주

뒤러의 삶

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이자, 예술과 수학을 잇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그림과 판화 속에 기하학과 비례, 원근법을 담아내며, 예술을 수학적 질서로 정당화하려 했다. 《멜랑콜리아 I》은 그 집착과 불안을 동시에 담은 걸작이다.

작품 속에는 컴퍼스, 망치, 톱, 숫돌, 마방진과 다면체가 가득하다. 그러나 인물은 그것들을 잡지 않은 채 무력하게 앉아 있다. “도구는 곁에 있지만, 쓰이지 않는다.” 완벽을 꿈꾸었지만, 쇠약과 우울 속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 것이다.

우울 성향과 가족환경

뒤러의 내면에는 늘 불안과 우울이 자리했다. 엄격한 금세공사 아버지 밑에서 정밀함과 규율을 배웠고, 병약했던 어머니의 쇠약과 죽음을 지켜보며 삶의 덧없음을 일찍 체험했다. 결혼했으나 후계자를 얻지 못했고, 말년에는 질환과 쇠약이 겹쳐 고독이 깊어졌다. 이러한 환경은 그를 더욱 완벽을 갈망하는 예술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는 우울의 성향을 강화했다.

뒤러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늘 불안 속에서 살았다. 언제 죽음이 나를 덮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초상화와 기록들은 단순한 예술의 산물이 아니라, 내면을 응시하며 불안과 싸운 흔적이었다.

멜랑콜리아와 마방진

〈멜랑콜리아 I〉의 한가운데 자리한 4×4 마방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모든 줄의 합이 34가 되는 정교한 배열 속에, 뒤러는 자신이 판화를 완성한 해 1514를 마지막 줄 두 칸(15와 14)에 새겨 넣었다. 영원한 수학적 구조 안에 자신의 시대와 존재를 각인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술가는 숫자와 비례 안에서 영원을 본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 안에서 불안을 느낀다.”
영원과 질서를 좇으면서도,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흔적을 동시에 담고자 했던 것이다.

매칭된 어르신의 삶

한 어르신이 떠오른다. 코로나 예방 접종 이후 심장질환을 앓았고, 투석 치료를 받으며 요양보호사와 함께 병원 진료를 이어갔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방문간호, 활력징후 측정은 거부했다.

“괜찮다, 안 해도 된다.”
쇠약으로 빠진 체중과 초라해진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 교회, 경로당, 봉사활동을 끊었다. 불면은 깊어졌고, 수면제조차 효과가 없었다. 식사량은 줄고 몸은 더 쇠약해졌다. 결국 장 천공과 복막염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한 채 두 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곁에는 투석, 약물, 병원이라는 도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관리, 방문간호의 활력징후라는 도구는 방치되었다. 그것만 있었다면 위기의 징후를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은 이들의 마음에 무거운 아쉬움이 남았다.

독자의 몫

〈멜랑콜리아〉 속 인물처럼, 우리 곁에도 많은 도구가 있다. 혈압계를 통한 작은 점검, 곁에서 건네는 권유, 내 몸을 지켜내려는 사소한 선택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것을 외면하고, 스스로 불안 속에 앉아 있기도 하다.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내 곁의 도구들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들을 곁에 두고도 쓰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는가?

노년의 방정식은 완벽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작은 도구 하나라도 손에 쥘 때, 불완전한 삶이 조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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