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던 영혼의 귀향
“따르릉, 따르릉.”
그 전화는 며칠 전 횡단보도를 건너던 그 남자의 사망을 알리는 통보였다.
“조금 전 11시 5분 숨을 거뒀어요.”
1990년 7월 17일 피아노를 전공한 여자, 입담도 좋고 희극배우 기질로 여자가 있는 곳엔 피아노 소리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자는 자기만의 옷을 디자인했고, 죽어가는 꽃도 여자의 손길이 닿으면 살아났다. 온몸을 뒤틀며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공옥진의 병신춤도 능숙하게 소화했다. 꽃망울처럼 두툼한 입술과 구릿빛의 갸름한 얼굴, 군살 없는 아담한 몸매를 가진 여자에게는 짝사랑하던 남자도 몇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부산의 선박 회사 기관사로 근무하던 남자는 짙은 쌍꺼풀과 큰 눈, 양 볼이 통통한 하얀 피부를 가졌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말투에 다정한 인상이었다. 그해 10월, 그들은 결혼했다.
2021년, 남자는 항해 도중 갑자기 귀국했다. 반복된 의식장애로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섬망과 의식불명, 그리고 낙상은 남자를 난폭하게 만들었다. 주 3회 혈액투석과 응급실, 요양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축구로 열광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장례 준비를 하세요.” 3일 만에 남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또 쓰러지면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사는 입원을 권했다. “죽음은 두렵지 않아!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할 거야!” 남자는 단호했다.
2023년 7월 18일, 남자의 영혼은 육체를 떠났다. 여느 때처럼 투석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채비하고 집을 나섰다. 출렁이는 배, 망망대해에 떠 있지 않은 것만으로 남자의 하루하루는 꿈같다고 했다. 최근 6개월, 남자는 연극도 보고 음악회, 미술관 등을 관광하듯 다녔다. 9월에 있을 뮤지컬 티켓도 예매했다. 좋아하던 책은 집중이 되지 않는다며 집에 오면 책 대신 유튜브 영상을 즐겼다.
투석하고 오는 길, 남자는 고급 보디샴푸와 타월을 샀다. 며칠 전 염색을 해 주던 여자의 말이 생각났다. “옷이며 이불이며 자주 빨고 소독해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저녁 식사 후, 남자는 휴대전화를 들고 여자가 있는 싱크대를 휙 지나 안방 목욕탕으로 향했다. 투석으로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풀고자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을 즐겼다. 유튜브 영상도 욕조 앞에 세웠다. 따뜻한 물이 허리를 지나 욕조를 넘치고 있었다. 보디샴푸의 향이 가득한 뜨거운 열기가 욕실을 채웠다. 나른함과 함께 어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빠, 욕실에서 반신욕 절대 하지 마세요. 지난번에도 쓰러졌잖아요.”
아들과 함께 장모 집을 방문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성경을 읽으며,
남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너, 죽음 후 세계를 믿니?”
아들은 잠시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빠는 믿는다.”
남자가 욕조에 들어간 지 10분쯤 지나자, 여자는 문득 불안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욕탕으로 향하려던 찰나, 예전에 남자가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또 나 죽었나 확인하러 왔나?” 그 말이 귓가를 맴돌자 여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괜히 혼자 걱정하는 건 아닐까 싶어, 다시 조용히 주저앉았다. 그러나 마음속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20분쯤 더 지나서야, 여자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남자는 욕조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향과 열기로 자욱한 욕실, 유튜브 소리, 김에 서린 거울, 그리고 연거푸 흐르는 수도꼭지 물이 욕조 밖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여자는 119에 전화했다.
하얀 국화 사이로 웃고 있던 남자. 시드니 호수에서 찰칵 셔터를 누른 순간이었다. 바람에 날린 듯 약간 벗겨진 왼쪽 가르마를 스치는 머리카락, 넓은 이마와 어울리는 널찍한 눈썹, 부드럽고 젖은 눈동자를 감싸며 눈꼬리까지 웃고 있는 짙고 넓은 쌍꺼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낸 미소가 양 볼의 보조개와 만나 따스함이 온 얼굴을 감쌌다.
“긴 악연이 이제야 끝이 났어요.” 여자의 첫마디였다.
한참 침묵하던 여자는 영정 속 남자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남자는 아니었죠.”
그 말에 모든 기억이 스며 있었다.
맞선을 보기 전, 남자에겐 이미 결혼을 약속한 첫사랑이 있었다. 남자는 첫사랑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타인의 선택으로 결혼했고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이들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안고 태어났다. 잃어버린 것들과 쌓여가는 상실 속에서, 남자는 삶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고통을 해소하려 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과 경제, 직장 생활도 흔들렸다.
여자는 영정을 한참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늘 나쁜 남자였어요.” 그 말에 담긴 무게가 깊었다.
여자의 말을 듣고 있는 영정 속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정착하지 못한 삶을 살다 간 남자의 영원한 휴식을 안위하는 찬송가가 빈소에 울려 퍼졌다.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 무표정한 얼굴로 2층 식당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커피를 뽑아 들고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손과 눈동자. 화구 앞 유가족 대기실의 의자들은 반쯤 비어 있었고, 슬픔과 피로가 뒤엉킨 공기가 묵직하게 깔려 있었다.
“띵동.” 번호가 방송을 타고 흘러나오고, 이름 대신 불리는 화구 번호를 따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머릿속에 문득 스쳤다. 이름 없는 죄수들이 차례를 기다리듯, 전쟁터의 군번이 불리듯, 인간은 죽어서조차 번호로 소환되는 존재일까.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친구였던 사람도 마지막엔 단지 하나의 숫자로 불리고 있었다. 슬펐다. 너무 조용하고 단정해서, 더 슬펐다.
2시간쯤 지났을까. 방송으로 번호를 호출했다. 남자의 이름 대신 남자의 화구 번호였다. 남자의 가족은 수골 관 앞에 멈춰 섰다. 형체는 사라지고, 하얀 재 한 줌이 작은 봉안함 안에 내려앉았다. 직원이 무표정하게 봉안함을 건네고, 남자의 아들이 두 손으로 그것을 끌어안았다. 그제야 발걸음이 움직였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포트 잭슨(Port Jackson) 항구에서 찍은 사진 속, 웃고 있던 남자가 이제는 딸과 함께 아들 뒤를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가 묵묵히 뒤따랐다.
“죽은 뒤 부검은 하지 마라.”
“죽으면 화장을 해 주라.”
“바다는 싫으니 산에 뿌려주라.”
화장로의 열기가 식어가고, 죽음의 연기가 사라진 자리, 남자의 시간이 아주 조용한 먼지처럼 봉안함 안에 내려앉았다.
별빛이 깃든 밤하늘 아래, 그는 이제, 자유로운 영혼으로 바람처럼 떠난다.
고단한 나그네였다. 자식, 아버지, 남편, 오빠라는 굴레 속에서, 마음 둘 곳 없는 집시처럼 세상을 떠돌았다.
죽음이 그림자를 드리운 끝자락에서도 질병과 욕망의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마지막만큼은 스스로 선택해 살고 싶어 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토록 외치던 그 남자.
이제야 비로소,
속박을 벗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긴 방랑을 마치고,
조용히,
그리고 눈부시게,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