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위로가 되고 섬김이 될 때
고모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내가 전화를 했을 때 당장 고모 입에서 나온 건 밥을 먹었냐는 말이었다.
"어째, 밥은 먹은겨?"
밥을 먹었는지 묻는 일이 고모의 첫인사였다.
상대가 누구라도 똑같았다. 밥을 먹었는지 묻고, 용건을 이야기하고, 또 밥을 꼭 챙겨 먹으라는 당부로 전화를 끊는다. 어쩌다 때를 놓쳐 버리기라도 하면 잔소리가 한없이 이어졌다.
"시간이 몇 신데 아직 밥도 못 먹고 그러구 다닌댜? 뜨신게 든든하게 들어가야 뭐시든 일이 잘되는 거여. 어여 뭘 좀 찾아 먹어"
못 먹고사는 세상도 아니건만 고모는 매 끼니를 제때 챙겨 먹는걸 으뜸으로 생각한다. 평생 논밭에서 땅만 바라보다 허리가 굽어버린 고모에게 밥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노동의 대가를 넘어서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이고 마땅히 받들어 챙겨야 할 거룩한 소명 같은 것이었다.
어쩌다 커피 한 잔이나 빵 나부랭이(고모의 말을 빌리자면) 같은 것으로 한 끼를 가볍게 대신하는 일은 고모에겐 '못쓰는 일'이었다.
"못써! 그런 거 자꾸 먹으믄 병나. 뜨신 된장국 같은거를 먹어야햐."
고모가 늘 강조하는 그 '뜨신거' 를 고모는 키우는 개에게도 잘 걷어 먹였다.
어쩌다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아서. 개 밥 줄 사람이 없어서. 그 놈들에게 뜨신 걸 먹여야 해서.
고모에게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자식 없이 평생을 살아온 고모에게 개는 소중한 존재였다.
도대체 개밥이 뭐 중요하다고. 고모의 한결같은 이유가 가끔은 못마땅하고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에 치이고 시간에 깎여서 삭정이처럼 늙어 가고 있는 고모의 낮은 어깨 위에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외로움이 얹혀있다고 생각했을 때 뜨신 것으로 개밥을 주는 고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는 고모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자식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그 값진 존재들에게 정성으로 잘 걷어 먹이는 일은 어쩌면 고모 자신을 위한 위로였는지 모르겠다. 고모는 자꾸 시려오는 가슴을 녹여줄 온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개는 그 온기가 되어갔겠지. 그리고 그 온기를 더 따뜻하게 만들면서 시린 가슴을 위로받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고모 마음을 알았을까. 그 집 개들은 털을 반짝거리며 늘 건강했고, 그 집 개들을 걷어 먹이는 고모는 누런 지푸라기처럼 푸석거리며 늙어갔다. 그래도 고모는 쪼그라드는 몸으로 항상 바빴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계절을 따라 익어가는 것들을 캐고, 뜯고, 주워 담아서 보관했다. 밭 언저리에서 캐낸 냉이는 살짝 데쳐 냉동실 까만 봉지에 보관했고 냇가에서 며칠을 훑어 모은 올갱이도 냉동실에 들어갔다. 나물, 버섯, 생선, 고기 따위가 꽁꽁 얼어붙은 채로 쌓여있었고, 민들레, 고추, 씀바귀, 오이 같은 것들은 김치로 변신해서 또 냉장고 한 귀통이로 들어갔다.
밭에서 모아 온 가지와 무 같은 것들은 얇게 썰어 채반에 널어놓았고 고사리, 취나물 같은 산에서 뜯은 것들도 마당의 들마루에서 나른하게 흩어져있다가 쨍쨍한 햇빛에 꼬들꼬들 말라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골방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제삿날이 오면 가방에 그득히 넣어 짊어지고 와서 우리에게 나눠 주셨다.
"이건 나물 말린 거고 이건 콩이여. 이번엔 된장이 좀 짠거 같어"
까만 봉지, 봉지마다 고모에게 위로가 되는 뜨신 것들의 재료들이 줄줄이 꺼내졌다.
홈쇼핑에도 인터넷에도 팔지 않는 고모의 귀한 그것들이 좋아서 우리는 늘 고모의 묵직한 가방을 기다렸다.
고모에게 한 끼 밥은 대충 때워 넘길 수 없는 '섬김'에 가까웠다. 아플 때. 힘들 때. 슬플 때, 그리고 기분이 좋을 때도 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새로운 힘이 생겼으므로 고모는 늘 먼저 밥을 먹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섬김은 고모 혼자만의 어떤 가치가 아니라 고모 세대가 공통으로 여기는 가치였을 것이다. 그것은 할아버지, 그러니까 고모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 어느 때부터라고 헤아릴 수 없는 먼 아버지 때부터 밥을 귀이 섬기는 DNA가 전해져 왔는지 모른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낸 역사 속에서 문제는 늘 먹고사는 일이었다. 한 끼 밥을 먹는다는 건 당연히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원초적 문제였고 그것을 위해 악착같이 근면 성실한 삶을 살아냈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끼니를 확인하는 말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 아닐까. "식사하셨어요?" 그 속엔 당신의 안부와 따뜻한 밥을 잘 챙겨 먹었는지를 가볍게 묻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뜨끈한 정서가 들어있다. 때문에 우리는 유달리 군부대나, 학교의 부실한 급식에 분노하는지도 모르겠다. 누려야 할 권리보다 해내야 할 의무가 강한 집단에선 한 끼 밥이 유난히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곳에서 위로가 되지 못하는 밥상은 의미가 없다.
이 나이쯤 되니 어쩔 수 없이 구 세대로 물러나 버린 나 역시 어쩌다 부실한 밥상에 왠지 죄책감 (표현이 다소 거창하지만 솔직한 마음인 것을) 마저 들어버리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내게도 한 끼의 밥은 하루를 무탈히 보낸것에 대한 위로가 된다. 그래서 따뜻한 국과 갓 지은 밥에 노릇하게 구운 생선이 올려진 정갈한 밥상을 차려내는 일이 내게도 고모가 그랬던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소명이 되어가는 것 같다. 가족들에게 뜨신 것을 걷어 먹이며 나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오늘처럼 더위에 녹진하게 지쳐버린 날은 빵 나부랭이나 가벼운 것들로 대충 때우고 싶다.
전화기를 들고 배달 앱을 만지작 거리다가 환청처럼 들리는 고모의 목소리에 그만 화들짝 놀라버렸다.
"못써! 그런 거 자꾸 먹으면!!"
고모는 아픈 몸으로도 된장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