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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하울 Aug 06. 2022

윤금자는 그렇게 태리가 되었다.

내 친구 윤금자는 유쾌하고 밝은 사람이다.

오래 알아 왔지만 크게 화를 내거나 토라지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특별히 애교가 있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경상도 사투리가 강한 윤금자의 말투는 부드럽고 매끌매끌한 것이 애교스러웠다. 

윤금자는 어떤 일을 청하면 사양하는 법이 없었고 마다하지 않았다.

몇 해 전 일이다. 윤금자가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3개월 코스로 계획하고 신학기 전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1월 구정을 며칠 앞둔 날,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다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매끌매끌한 사투리가 TV 밖으로 마구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마트보다 재래시장이 더 풍성하네예"

생글거리는 윤금자의 얼굴과 거주지와, 이름 석자가 화면에 꽉 차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급히 귀국했고 장 보러 간 시장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더란다.

"아무도 인터뷰한다카는 사람이 없데. 다 피하길래 걍 내가 했다."

내 친구 윤금자는 오지랖도 넓다.

 

윤금자라는 이름만 들으면 뭐 그저 그런 50 넘은 아줌마의 이미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친구 금자는 썩 괜찮은 외형의 아주 세련된 아줌마다. 그 외모와 이미지가 결코 매치되지 않는 사람 윤금자.

그런 윤금자에게 우리는 언젠가 이름이 너무 올드하지 않느냐고 물었었다.

"우리 언니는 현민데 나는 왜 금자겠노. 아들이 낳고 싶었는데 가시나가 툭 튀나오니 아부지가 홧김에 그랬다카더라. 그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언니는 보라고 동생은 노을인데 왜 나는 덕선이냐' 캄서 난리 치는 거 나는 그거 딱 이해한다. 그거 딱 내거든 !! 중간에 낑긴 둘째가 받는 서러움이지.  뭐, 인제 그러려니 한다."


그러려니 한다는 내 친구 윤금자가 요즘 들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금자가 머꼬 윤금자가!!"

50년을 그 이름으로 살아왔지만 그다지 불만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스스로 이름을  부를 일이  자주 없으니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런 윤금자에게 초대하지 않은 갱년기란 것이 찾아왔다. 사춘기를 이긴다는 갱년기. 인간의 의지도 꺾는다는 호르몬이 변한다는 갱년기. 그 약도 없는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이상하게 감정들이 오르락내리락 요동을 쳤다. 거울 속에서 낯선 얼굴이 자꾸 튀어나왔고 '늙어간다'는 말은 나의 역사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가 이 해 여름에 찰떡처럼  그 몸에 눌어붙었다. 무엇보다 눈물이 포인트 없이 쏟아지는 주접스런 감정이 화가 났다. 결말이 뻔한 드라마나 청승맞은 노랫말은 그렇다 쳐도, 휘날리는 태극기에 쏟아지는 지랄 맞은 뭉클함은 또 뭔지. 목 울대를 때리고 나오는 통증과 눈두덩이가 뜨거워지는 눈물을 흘리며 이런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에 또 울화가 치밀었다. 내 친구 윤금자는 이런 변화하는 인생의 고비에서 뭔가 새로운 나를 찾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따위 호르몬과 싸워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 밍밍하고 쪼글쪼글한 일상을 짭짤하고 팽팽하게 변화시킬 어떤 것을 찾아보자. 그래서 내 친구 윤금자는 개명을 하기로 했다. 50년 인생을 올드한 윤금자로 살았으니 나머지 50년은 hot한  이름으로 살아보자.(보험회사도 100년 만기 상품을 팔아먹고 있으니 100세까지 살겠지)

유명하다는 철학관에서 거금을 주고 이름 몇 개를 받아왔다.

"내한테 어울리는 거 골라봐라. 첫 번째, 태리 어떻노?"

태리? 감히 풋풋하고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연예인 김태리를 이제는 꺾어지기 시작한 인생의 내리막길에 선 윤금자에게 억지로 꿰매 보겠단 말인가? 유쾌하지 않다.

"이건 어떻노? 윤태임, 윤다경"

태리만 아니면 윤금자 보다 백배는 좋은 거 같은데 내 친구 윤금자는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고 싶다는 바람으로 굳이 태리를 고집했다. 제사상에 올려지고 묘비명에 쓰일 이름이니 좀 신중하자는 친구들의 조언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태리가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줄 것 같았다.

이름은 자꾸 불러줘야 한다며 대화중에 '너'를 꼭 '태리'로 바꿔 불러 달라고 했다.

가령 "너는 어떻게 생각해?"를  "태리는 어떻게 생각해?"  "이거 니가 한 거야?"를 "이거 태리가 한 거야?"처럼 마구마구 외쳐 달라고 했다. 이런 단어의 조합들이 억지로 끌어올려질 때마다 목구멍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꺽꺽거리고 세포가 발작하듯 근질거렸다. 차마 못 들어줄 이 오그라지는 상황을 오직 윤금자만 발랄한 꼬라지로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개명도 했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자아를 찾아야겠다며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부랴부랴 시간을 맞추고 목적지로 차를 몰았다. 여행은 그곳이 어디라도 가슴이   꼬물꼬물 해지며 풍선처럼 들뜨게 한다. 내 친구 윤금자와 나도 풍선 같은 들뜬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즐겼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사진에 있었다. 찍히는 사진마다 개명으로도 감출 수 없는 50의 내가, 진짜 한 치의 거짓 없이 너무도 솔직하게 카메라에 담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사진은 모두 뒷모습이거나 아주 멀리, 마치 자연을 찍다가  실수로 찍힌 사람들처럼 그렇게 카메라로 들어갔다. 두 손은 그저 모자를 만지거나 머리를 만져보는 척하며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척 노력해보았다.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온 그 날밤 윤금자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내가 우리 집 남자한테 괜찮은 사진 몇 장만 골라달라 캤잖아. 근데  이 인간이 쭉 보더니 여행은 윤태리가 갔는데 사진은 왜 죄다 윤금자 뒤통수만 찍혔노 카더라. 날도 더분데 털모자는 왜 썼냐며, 귀 아프나! 손은 왜 다 귀에 붙었냐며 사진 한 장 한 장 다 지적질을 해대더라. 저런 남자랑  진짜 25년을 어째 살았나 모르겠다. 내만 윤 태리 면 머하노. 울집에 윤금자 남편이 사는데!!"

그렇게 한참을 흥분해서 떠들던 윤금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저 양반도 개명을 해야겠다. 보검이나 현빈 어떻노?"


반갑지 않은 갱년기가 내 몸에 찾아왔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사춘기는 푸른 청춘의 계단을 오르는 출발점이지만, 중년의 갱년기는 이제 인생의 후반기로 치닫는 계단에 억지로 떠밀려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안에 깃들었던 푸른 청년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 몸에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끼지만 그래도 이 불편한 손님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갱년기라는 거친 산을 넘어가고 있는 세상의 모든 윤금자에게 애정을 담은 응원을 보낸다. 우리의 갱년기가 무탈하고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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