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 마리는 내 거여"
깨밭에 엎드려 호미질을 하는 이 노인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장마도 끝난 7월의 하늘은 제대로 익어가는 중이었다. 오늘은 그나마 한 모라기 바람이 불어 웅크리고 앉은 노인의 등속을 깨알만큼 식혀준다. 둑 밑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깨를 심고 밭 가 쪽으로 옥수수를 심고 그래도 남는 여유라 한 귀퉁이에 고추도 심어 제 새끼 보듯 살뜰히 보살폈다. 지열이 찜기처럼 오르고 접힌 오금이며 엉덩이에 땀이 축축이 배어 나와도 모다 돈으로 바꿀 작물들이라 귀하게 여기며 이것들이 크는 낙에 그래도 재미가 났다. 그런데 요사이 쑤셔대는 무릎을 달래느라 한 눈 좀 팔았더니 그새 풀밭 천지가 되었다. 이 노인의 갈퀴 같은 손이 지 멋데로 뻗대 있는 잡초를 머리채 잡듯이 움켜쥐었다.
"지깟것들도 목숨이라고 처먹도 못할 것들이 어지간히 질기기는......" 여기저기 엉켜있고 늘어진 잡초를 뽑아대다 문득 이것들이 어쩌면 내 인생과 닮았구나 싶어 맥이 풀린다. 두 손으로 움켜쥐어도 두 발을 땅 밑에 깊이 묻고 버티는 저 억센 풀 때기나, 송 씨 집안에 뿌리를 내리기로 한 날부터 설움이 쏟아져도 뽑혀나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어 문득 기가 막혔다.
"육시럴!!" 호미를 땅에 꽂고 주저앉아 속 고쟁이에 손을 넣어 청자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후~ 담배 연기가 폐 속을 돌아 오장육부 구석구석을 달래 놓고 토해진다. 담배 한입 연기에 막연한 원망이 뱉어지고 또 한입 연기에 눌러온 서러움이 쓴 물처럼 뱉어졌다. 뾰족이 찔러대는 햇빛을 마주해 눈을 사 무리고 올려보니 굽이굽이 솟은 먼 산이 굽이치며 살아온 제 인생 마냥 아파 보였다. 어디 저 산뿐이랴. 이 노인은 세상에 널린 굽은 것들을 볼 땐 그게 제 인생인 것 같아 괜스레 맘이 처연해졌다.
이 노인의 인생은 넘어가는 길목마다 참을 인이었다. 곱지 않은 나이에 자식이 다섯이나 딸린 남자와 백년해로를 맺고 이 집에 들어온 날 힘겨워도 버티고 견뎌 저것들을 보란 듯 길러내야지 두 손을 꽉 쥐어도 봤다. 남편 송 씨는 가진 재산은 없었지만 그래도 소 학교를 나오고 성품도 어질어 동네에서 평판이 좋은 남자였다. 송 씨 처가 세상을 떠나고 이 노인과 혼사를 했던 이유는 딸년들보다 느지막이 얻은 아들놈에게 어미의 정을 주고 싶어서였다. 가깝게 지내는 먼 친척 윤 씨의 중매로 한 마을 너머 사는 이 노인과 혼인하고 그저 불쌍한 자식들 어미 품속이나 느끼며, 없는 살림 알뜰이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부부의 삶은 한 번도 말랑말랑한 적이 없었다. 참으로 구차한 살림이라 어떡하든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과일을 떼다 남의 점포 앞에 나무박스를 엎어놓고 팔아도 보았고 온종일 산을 헤매며 꺾어온 나물을 내다 팔아 내 새끼, 내 손주 먹일 양식도 마련했다. 처음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길러 새끼를 얻고, 또 한 마리 사서 외양간 넓혀가는 기쁨도 누리며 그저 남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 세월이다. 그러나 삶의 기쁨이란 것이 쉽게 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네 명의 딸들은 새로 들어온 낯선 여인에게 평생 곁을 주지 않았고, 하나밖에 없는 매양 오냐오냐했던 아들은 제 눈에 벗어나는 일이 있으면 들짐승처럼 날뛰었다. 그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 넷을 둔 아비가 되었어도 오직 일신의 즐거움만 생각할 뿐 그 자식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이 노인 부부가 끼고 돌봐야 했다.
이 노인은 송 씨 사이에 딸 하나를 두었다. 그녀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새끼였지만 가족들은 이 노인만큼이나 그 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미가 받는 푸대접을 딸인들 몰랐을까. 어느 날 그 딸은 작정을 하고 아버지 송 씨에게 대들었다. 왜 나는 언니들처럼 돌림자를 쓰지 않았느냐고, 왜 우리 엄마를 무시하느냐고, 그럴 거면 왜 나를 낳았느냐고 고개를 바짝 들고 대들던 순간 오른쪽 귀에 번쩍 오빠의 주먹이 날아와 꽂혔다. 말리던 이 노인의 얼굴에도 번쩍 번개가 내리쳤다. 네 명의 딸들이 기겁을 하며 달려들었다. 이 노인의 얼굴에 며칠간 퍼런 멍이 올라앉았고 망나니 같은 그 아들이 두고두고 무서웠다. 성품이 보드랍고 학자 같은 남편 송 씨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혀 뒤 돌아앉아 속 울음을 삼켰고 이 노인은 그 날밤 제주로 쓰고 남은 이 홉짜리 정종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통곡을 해댔다.
읍내에 장이 서거나 주머니에 돈이 꽂히는 날이면 이 노인의 발걸음은 틀림없이 장터 들머리에 국밥집으로 향했다. 신 김치 몇 점을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는 어찌 그리 입에 짝짝 붙는지 시큼하고도 달착지근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맛에 온갖 시름을 잊는듯했다. 막걸리 몇 잔에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돌아오는 그 길 위에 서산의 노을도 따라서 붉다. 이 노인의 고무신 코가 갈지자로 춤을 추었다. 또 술 잡쉈냐는 며느리의 잔소리가 쇠 긁는 소리처럼 자지러져도 몇 잔 술의 힘을 빌어 그 순간만큼은 참을 만하다. 찬 물 한 바가지를 시원하게 들이켜니 아쉽게 술기운이 조금 가시는듯했다. 며느리의 타박이 계속 이어지며 들으라는 듯 부엌의 세간들이 나뒹구는 소리가 났다.
"오사랄년! 남의 새끼 키우는지 팔자나 내 팔자나 똑같은 보자기에 묶일년이......"
가족 누구 하나 이 노인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 걸 아는 며느리도 언제부터 송씨집 사람이 되어갔다.
나가야겠다.
새파랗게 젊은 며느리는 마저 나를 무시하는 이 집에서 그만 나가야겠다. 어디 가서 품을 팔고 살아도 이 집구석보다 못할까. 그날부터 남편 송 씨를 볶아댔다. 날마다 방바닥을 치며 울부짖은 이 노인의 목소리가 술에 젖어있었다. 한 달뒤 송 씨는 소 한 마리를 팔아 이 노인에게 두 칸짜리 방을 마련해주었고 이불 보따리 하나와 밥그릇 하나를 챙겨 자전거에 실었다. 어쩌자고 사는 형편이 이리되었을까. 울퉁불퉁한 흙 길을 자전거를 끌며 걷는 송 씨의 마음도 까맣게 타버린 지 오래고 그 뒤를 따라 걷는 이 노인의 마음도 까맣게 타버린 지 오래다. 먹장구름이 널린 오후에 하얗게 시린 인생이 흙길 위에 먼지를 내며 구르고 있었다.
집을 나갔던 이 노인이 다시 돌아온 건 어느 날 찾아온 중풍 때문이다.
평생을 옹이 진 마음에 화를 누르며 술병을 끼고 살았으니 큰 병이 들지 않을 리 없다. 한 번 자리에 누운 늙은 몸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도회지로 떠난 아들 내외는 어쩌다 한 번 찾아와 주었고 씻기고 먹이는 병 수발은 같이 늙어가는 송 씨 몫이었다. 수 십 년을 함께 살아오는 동안 좋은 것 하나 못해주고 좋은 소리 한번 못 듣게 해 줘 미안한 맘이 골수에 맺혔다. 가련한 인생아, 내가 눈감고 떠나는 날 너도 내 손잡고 같이 가자꾸나. 송 씨는 북어처럼 마른 이 노인의 손에 수저를 쥐어주었다.
먼저 세상을 뜬 건 송 씨였다. 가족들은 생전에 송 씨가 마련해둔 선산에 송 씨를 묻고 공동묘지에 묻힌 전 부인을 이장하여 그 옆에 모셨다. 홀로 남은 이 노인은 아들 내외와 도시로 떠났다. 아들은 나이가 들면서 그래도 철이 나는지 퇴근길에 입 다실 거리도 사다 넣어주고 한 번씩 방문을 열고 안부도 물어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다리가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똥오줌을 받아낸 건 며느리였다. 이 노인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이 도시에 와서 본 풍경이라곤 창문 너머 이웃의 지붕이 겹쳐지며 만들어진 삼각형 하늘뿐이었다. 삼각형의 하늘 위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꽃잎이 날렸다. 삼각형 하늘에 비가 내리면 고향의 파란 보리밭에도 눈이 내렸고 꽃잎이 날리면 고향집 샘터에도 꽃잎이 날렸다. 어느 날 이 노인이 아들을 불렀다.
"창석 애비야, 내가 주 그믄 땅에다 묻지 말고 화악 태워서 그냥 산에다 뿌려버려라. 축축한 땅속에 둔눠있을꺼 생각하면 발레 가심이 답답햐. 솔직한 말루다 첨은 욕 심도 낸겨. 앞 짝에 냇물 흘르고 뒤짝에 산새 좋은 드리우다 잘 묻 어달라구 바래도 봤지. 평생 내 성명으로 땅 한 뙈기 못 가져봤는데...... 죽어서 묻히면 그게 내 집이고 내 땅일까. 주책읎이 욕심이 난겨. 흐흐 그런데 죽면 썩을 몸 내 집은 가져서 머 할 거야. 나는 그냥 주 그믄 바람처럼 펄펄 날러서 낭구 우에도 막 올라가 보고 풀숲 새로 날러서 내 맘데루 댕기면서 살랴. 그라다 영감한테도 한 번씩 놀러 감지. 느 엄니가 싫어할까. 어이구 바람 이로 태어나 등가, 새로 태어나 등가 펄펄 날러 댕겼으면 좋겠네."
아들은 말없이 문을 닫고 나왔다.
며칠 뒤, 월요일 아침에 이 노인은 며느리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막내 고모 불러줄까요? 며느리 물음에 고개만 끄덕거린 이 노인은 기다리던 딸이 오기 전에 세상을 떴다. 이 노인이 떠나고 아들은 그녀의 바람데로 화장을 했고 화장터 근처에 그녀의 유해가 아무렇게나 뿌려졌다. "엄니 잘 가셔요. 훨훨 날아가셔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셔요. 바람으로 다시 태어나시면 가끔 찾아 오셔요." 며느리가 축축이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노인의 방을 정리하자 이불 밑에 깔린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나왔다. 피우다 만 담배 몇 가치가 흩어졌고 마디진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때 묻은 은가락지가 굴렀다. 이 노인이 남긴 전부였다. 창석 아비가 이 노인이 남긴 담배를 피워 물고 삼각형 하늘을 올려 보았다. 하늘이 시리게 푸르다.
"복 없는 노인네......" 그의 눈가가 뜨거워지면서 목구멍이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