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은 걷기 좋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한낮의 더위는 밤이 내리면 한 김 식는듯해 걷기에 좋다. 시간을 잘 맞추기만 하면 낮과 밤이 바뀌는 찰나의 오묘한 순간을 목도할 수 있다. 한지에 먹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어둠은 천천히 번져 산은 더 검어지고 신기하게 하늘은 더 환해진다. 카페에 불빛이 보석처럼 빛난다고 생각할 때 점점이 늘어선 가로등에 탁 불이 켜진다. 그림자가 갑자기 앞서 간다.
강둑에 풀이 무릎만큼 자랐는데 어제는 제초 작업을 했었나. 삼색의 사인볼이 돌아가는 이발소에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가 어깨를 툭툭 털며 나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흰 와이셔츠 깃 가까이에 면도질이 잘된 그의 뒤통수를 보는 것 같다. 스쳐가면 티브이 광고에서 '쾌남'을 강조하며 얼굴을 찹찹 때리던 강한 스킨 냄새가 풍겼지. 하루새 멀끔해진 강둑은 짧은 머리가 아직 어색하고 쾌남의 스킨향 대신 달큼한 풀냄새를 안고 있다.
여름밤은 생의 활력이 느껴진다. 생각에 빠져 걷기에 집중하는 사람들, 자전거 페달에 무게를 싣고 밤공기를 가르는 사람들, 무리 지어 달리는 이들의 호흡이 훅훅 지나갈 때 나는 그들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강렬하게 받는다. 갑자기 삶의 애착이 불끈 솟아오른다. 아!! 좋은 밤이다.
가을 저녁의 걷기 또한 좋다.
습기가 사라진 바람이 온몸을 스치면 들숨은 절로 커지고 걷기에 속도가 붙는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강물이 불었다. '흐른다'라는 동사를 오랜만에 사전에서 찾은듯하다. 아주 오래전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에 큰 홍수가 났었다. 다리 밑으로 냉장고와 자전거가 둥둥 떠내려가고 내 짝꿍네 외사촌 오빠는 키우던 소가 떠내려갔다고 그랬었지. 물이 좀 빠지고 친구들과 괜히 다리 위에 서 봤다. 콸콸 소리치는 물을 내려다보면 아래로 빨려 들 것 같은 현기증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그때 다리 아래를 흘렀던 물은 바쁘고 , 화가 나있고, 사나웠다.
지금 저 강물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연어가 유영하듯 부드럽고 순하게 제 갈길로 흐른다. 괜히 마음이 순해진다.
에그 하르트 톨레는 그의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현존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다면. 깨어있는 고요 속에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모든 창조물. 모든 생명 형태 안에서 신성한 생명의 본질을 느낄 수 있다. 만물 속에 내재해 있는 순수의식 또는 영을. 그럼으로써 그것을 자신으로 사랑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걷기에 집중하며 내 안에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느껴본다. 땅에 내딛는 순간에 발바닥의 감촉과 힘을 쓰는 다리의 근육들, 흔들리는 팔의 움직임을 느낀다. 그렇게 나의 몸에 집중하며 걷다 보면 나를 따라오는 미세한 바람도 알아챌 수 있다. 목덜미를 스치고 손등을 지나 손가락 하나하나를 쓰다듬는 바람. 바람은 나를 스치고 앞서가는 이를 스치고 풀을 세우고 강물을 깨운다. 바람은 우리를 둥글게 매듭지어 준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감각에 날을 세워본다. 운동화 바닥을 찌르는 돌조각이 꿈틀거린다고 느껴지는 지금 나는 걷는다.
현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고 세상에 죽은 건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