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마음에 연고를 발라야지

자존감 유지하기

by 임경미


누구에게나 자존감이 있다. 사람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를 뿐 ‘나’라는 존재를 지키는 방법으로 자존감과 자존심을 갖길 선택한다.

신이 내가 원하는 능력을 정할 기회를 주겠다는 아량을 베푸신다면 나는 그중 하나로 자존감을 높이고 돌보는 능력을 고를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으니까.


강하고, 자신만만하고, 두려움 없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닐까. 이런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부럽다. 자신에 대해 느끼는 당당함과 여유로움이 세상 어떤 시련이 와도 나를 지켜줄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인 누군가는 자존감이 매번 높은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의 그에게도 자존감 침체기가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나의 자존감은 우상향하는 그래프였다가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서부터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내가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는 추락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중력에 의해 강하게 끌어당겨지듯 그렇게 나의 자존감은 무너져내렸다.

왜 그랬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살았다. 일기를 쓰며 감정과 생각을 쏟아냈던 시간도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지지 못했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좋아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책을 읽는 여유도,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닌가.

말을 하는 시간보다 말을 듣는 시간이 더 많은 것,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말을 해야 하는 것, 일은 잘하는 것, 관계는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 무엇을 하든 잘하는 것, 그래서 실패하지 않는 것.

우리의 세상이 원하는 그림은 두꺼운 사슬에 꽁꽁 묶인 어린 아이의 그림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자유롭게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삶의 팍팍함 속에서 흔히 이런 실수를 한다

첫 번째 실수는 내가 가진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자존감의 근원으로 하는 것. 그래서 자기 만족이 떨어지고, 이런 상황으로 인한 실망이 계속되면 자존감이 낮아진다.

두 번째 실수는 잘못된 생각과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그것이 틀린 것인지 모르고,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 또한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관하는 것이다. 알아볼 눈이 없으니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까지 돌보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실수가 반복될수록 자존감은 자꾸 바닥으로 떨어진다.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발레리나 강수진 씨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들려준 일화가 있다. 다리를 다쳐 오랫동안 누워 생활하는 동안, 연습을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근육들이 무너져 다시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이야기.

오랜 시간 몸에 밴 동작들과 그로 인해 자리 잡은 근육까지 잃어버렸고, 발레의 기본 동작조차 하기 힘들었던 정도에서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오기 위해 재활을 하며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고 한다.


돌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런 일을 겪는다. 헬스장에 다니며 멋진 근육을 만들었는데 운동을 한 며칠 멈추면 단단하게 자리 잡았던 근육이 사라지고,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면 군살이 붙어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는 경험 같은 것들 말이다.

웬만한 실력까지 올려놓은 외국어 역시 꾸준히 쓰지 않으면 점점 그 실력이 나빠진다.


자존감도 그렇다. 오랫동안 내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닦지 않으면 뿌예지는 거울처럼, 단련하지 않으면 무너져 내리는 근육처럼 변하고 약해진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이런 나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높이는 일도,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게 꾸준히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 상처 입은 마음에 연고를 발라 새살이 돋아날 때 신에게 부여받은 삶을 살아가는 능력도 잘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