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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Nov 15. 2022

지켜보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



얼마 전 공기정화에 좋다는 광고에 마음이 동해서 또 다시 식물 3개를 샀다. 집안 곳곳에 배치해두고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귀여움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마치 갓 태어나 꼬물거리는 아가들을 통해 얻는 그런 행복감 말이다.


그런데 식물들이 내게 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였다. 한 식물에서는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었고, 한 화분에는 작은 잎들이 계속 자라 설레는 연둣빛 잎사귀를 늘려나간 것이다.(이 속도로 가다가는 올 겨울에는 집이 정글처럼 될 것 같다.)


문득 이렇게 자라있는 식물을 보고 있자니 ‘성장’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요즘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메말랐던 나의 생각을 유연하게 하고자 부지런히(?) 책을 읽고 있다.

그동안 읽지 않았던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고, 그것들을 마음속에 새기며 변화하자고 다짐하며 살고 있다. 거기에 꾸준히 명사의 강연을 듣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때때로 내가 결심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노라는 감정에 휩쓸리지 말자고 하면서도 넋두리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해져서 평온함이 깨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한 일을 달성하자고 다짐하면서도 때로는 흔들의자에 앉아 게임에 열중하기도 한다. 한 걸음 후퇴해도, 두 세 발자국 앞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다간 더디 도착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가끔은 이런 나의 노력들이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물론 한 술 밥에 배부르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은근슬쩍 조바심이라는 녀석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던 중 일주일 동안 꾸준히 자란 식물의 성장이 내 눈에 띤 것이다.


“어머~ 어느새 이렇게 자랐지? 기특해라.”

혼잣말을 내뱉는 순간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차, 성장이란 것의 본질을 잊고 있었구나.’


우리 집에 새로 들려온 화분은 마치 그런 조바심 따위는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양 제 능력껏,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잎을 내밀었나 보다.


 ‘조바심 낼 필요 없어. 너도 이렇게 성장할거야.’

이렇게 생각하게 되니, 어느덧 불안의 감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확신이 생겼다.


오늘 내가 충실하게 보낸 하루가 쌓이고 또 쌓여서, 그리고 나의 노력이 계속되면, 식물이 꽃을 피우고, 잎의 개수를 늘려가는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성장해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조금씩 이뤄지기 때문에 내 눈에 띄지 않을 뿐.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조바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A watched pot never boils.


책 《왓칭》에서 소개된 ‘지켜보는 냄비를 끓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이 끓어오르기를 바라는 조바심은 오히려 물이 끓어오르는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것이다. 


물은 99도에서는 끓지 않는다. 그러나 단 1도를 올리면 물은 끓어오르고, 거기에 제 성질까지 바꾼다. 차곡차곡 1도, 2도씩 온도를 올리며 성장하다보면 나의 변화도 목격되고, 느껴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성장을 바라는 나의 욕망이 욕심이 되고, 조바심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살아가야지.


오직 나를 믿고, 계획한 대로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덧 꽃이 피고, 물이 끓어오를 거니까!



(이미지 제공: 브루노 / 독일Pixaba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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