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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Nov 10. 2022

이런 글, 저런 글

가을의 단상

글 쓰는 일에도 체증이 있다면, 한동안 그 체증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무슨 글을 써야할까. 이 생각을 어떻게 문장으로, 문단으로, 한 편의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고민하는 내게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냥 아무 글이나 써봐.”


나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와 맞먹는 고민에 빠져있는데, 저렇게 가볍게 조언할 수 있다니. 내심 진지하지 못한 그가 미웠지만, 어느새 나는 책상에 앉아 아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글을.




#

요즘은 좀처럼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쉽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밤엔 내가 잠을 잡아당기고, 아침엔 잠이 나를 잡아당기고. 우리의 밀당은 전혀 맞지 않은 타이밍으로,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건설적임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덕분에 매일 밤낮이 괴롭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찌뿌듯한 몸을 인형뽑기 하듯 이불밖으로 겨우 끄집어냈고, 힘겹게 책상에 앉았다. 환절기는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체력은 바닥을 치는 느낌이다. 자꾸만 기운내라고 다그치다가.

‘널 어쩌면 좋니. 아직 젊으니 괜찮을 거라는 것은 나의 자만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야지. 점점 예전같지 않은 나를 받아들여야지. 내 생각대로 나를 조정하지 말아야지. 나는 소중하니까. 내가 더 아껴주고, 돌봐줘야지.’ 

하며 마음을 바꾼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는 망가져버릴지도 몰라.



#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린 하늘은 언제나처럼 기분을 흐리게 만든다. 왜 그토록 하늘에 연연하는지. 나는 하늘을 사랑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오늘도 흐리고. 좀처럼 말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이 외면받는 느낌.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외면받는 느낌이라...

더는 이렇게 있을 수 없어 시커먼 액체를 제조하고. 외면받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제는 내게 피가 되어버린 커피를 들이붓는다. 꿀떡꿀떡 커피를 삼키는 목젖의 움직임은 '자, 마셨으니 정신 차려야지!' 하는 독촉이다.

하지만 난 협조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또 드는 생각은, 나는 커피 없이 못 사는데 커피는 나없이도 잘 살겠구나 하는. 당겨도 오지 않고 매번 밀어내기만 하는 일방적인 밀당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계속되고 있다.

‘언제쯤 커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대체재를 찾을 수 있을까. 삶의 대체재를 찾지 못해 살고, 커피의 대체재를 찾지 못해 커피를 마신다. 대체 불가능 한 둘은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구나.’ 

  

   

#

기분 전환을 위해 나무조각에 향수 몇 방울을 떨어트렸다. 작약꽃의 향이 순식간에 콧속으로 들어오자 이내 밀당 실패의 아픔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고 보니 작약향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때문이었다. 

언젠가 정원에 핀 꽃의 향기를 맡고 향이 마음에 들어 그 꽃을 찾아 꽃가게를 전전했더랬다. 그리고 드디어 비슷한 모양새의 꽃을 구하게 되었는데, 모양은 비슷한데 향은 다른 느낌. 응? 이게 모란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찾아 다닌 꽃은 모란이었고, 때마침 찾은 비슷한 모양의 꽃은 작약이었다는 이야기. 

모란의 향에 빠져 모란을 찾아 헤매다가 그 생김새가 비슷한 작약을 발견하고, 어쩌다 보니 정작 모란의 향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서 이젠 작약꽃의 향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이건 새드엔딩 아니면 해피엔딩?

뭐,  상관없다. 김영랑 시인은 다시 모란을 보기 위해 삼백 예순 날을 기다리겠지만, 나는 나만의 모란을, 아니 나만의 작약을 마음에 품게 되었으니까. 때론 착각과 오해 속에서도 싹트는 마음도 있다. 

‘이렇게 보니 너도 참 예쁘구나. 너는 모란이 아니라 작약이라서 예쁘구나. 나도,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라서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미지 제공: 니콜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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