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라면

솔직하지 못하다고 낙인 찍힌 사람을 위해

by 임경미


밤하늘에 떠올라 세상을 밝히는 달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고 했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어서 비밀이라고 하기엔 공개적이지만. 만천하에 드러난 달의 비밀은 바로 인간은 평생 달의 한 쪽면을 본다는 것.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생활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또 하나 명백한 진실은 달의 이면은 우리가 볼 수 있든 볼 수 없든 언제나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달의 이면처럼, 나에게도 너에게도 이면은 있다. 어떤 이면은 좀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거기 존재할 뿐 좀처럼 바라볼 수 없는 이면이 내게도 있다. 우주선을 타고 간 인간이 달의 이면을 살피듯, 어떤 노력이나 사건을 계기로 나의 이면은 드러난다.

그것은 송곳이었다. 때로는 바늘이었고, 때로는 창이었다. 정도에 따라 크기를 바꾸고 강도를 조절해 날카롭게 상대를 찔렀다. ‘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용납하지 않을 거야.’ 나는 참고 또 참고, 이해하고 또 이해하다가 용감하게 한계치를 넘어선 경우를 응징(?)했다. 예를 들면 다시는 보지 않는다거나 집요하게 따져 묻는 식으로.


이는 거꾸로 해석하면 한계치 안에서는 수용 모드라는 의미였다. 물론 100% 온전히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럴 수 있지’ 하는 이해였다.

나의 정면에는 ‘너는 너고, 나는 나야’라는 생각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나와 다름을 비슷하게 만들 의지도, 에너지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모습이 꽤 오해를 받는다. 중도의 태도는 줏대 없다는 평을 듣기도 하고, 솔직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계치 내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이 어느덧 솔직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원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제발 좀 솔직해져 봐. 네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건 솔직하지 못한 거야.”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구박을 받는다. 그것이 너에 대한 배려였거나 나를 위한 배려였어도 침묵의 이유는 묵살된 채 침묵하는 현상에 낙인이 찍힌다.


그러나 다른 솔직함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 솔직함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내 진짜 마음과 같게 행동하는 것이 솔직함이다. 후자는 적어도 자신에게는 진실하다. 착각하지 않는 이상, 내 마음속 진짜 목소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솔직함’이 대세인 시대가 또 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다들 속시원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가끔은 그런 모습이 무서울 때가 있다. 혹은 불쾌하거나 무례하거나.


자신을 솔직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어떤 사람은 “와, 그 센스없는 코디는 뭐야? 완전 아줌마 같아”, “요즘에 누가 그런 거 하고 다녀. 유행 다 지났는데. 완전 촌스러워” 같은 말을 서스럼없이 내뱉었다. 그는 꼭지가 고장 나 줄줄 새는, 필터 없는 정수기 같았다. 무더운 여름날, 냉수가 아닌 온수를 쏟아내는.


이런 솔직함이 진짜 솔직함일까? 이런 행동은 솔직함이 아니라 무례함이며,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게 아니라 눈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솔직을 가장한 그 배려 없음이 불쾌하다. 말 한마디로 쉽게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줬음에도 자신은 솔직하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이 황당하다.




솔직함의 가치를 이런 예를 들면서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류의 솔직함 역시 우리 주변에서 공존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씩 드러나는 어떤 이면, 그 날카로운 것이 두렵다. 나의 이면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드러냈을 때 그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 것이 걱정된다.


나의 이면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정면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게 익숙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상대가 상처를 받는다면 더더욱 싫다. 그래서 오늘도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나의 이면을 이면으로 둔 채 정면을 유지한다.

달의 이면을 볼 수 없다고 온전한 달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 달의 이면을 봤다고 예전과 다른 새로운 달이 된 것이 아니듯, 내가 어떤 면을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든 그 자체로 그것은 나이고, 내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내 모습대로 살 것이다. 누가 무슨 말로 솔직함에 대한 나의 기준을 흔들든 말이다.


솔직의 범위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이면 충분하고, 수용의 범위는 내가 괴롭지 않은 선이면 충분하다. 그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이기에,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자 하나의 온전한 개체이기에 서로의 방식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정면의 좋은 부분만 보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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