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죄책감 갖다버리기

쓸데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을 때

by 임경미


남편이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기 일주일 전부터 마음이 소란스럽게 일렁거렸다. 어쩌다 한 명이라지만, 그 한 명이 남편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생긴 것이다. 주사를 일찍 맞으라고 남편이 접종을 신청하는 날 옆에 꼭 붙어서는 가이드 역할을 한 나였기에, 만에 하나 남편이 부작용을 겪는다면 거기에 나도 한몫한 것이니. ‘내가 일찍 맞으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맞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않았어도’라는 생각으로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낄 게 뻔했다.



나에게는 싱거운 징크스가 있다.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를 집중해서 보고 열성적으로 응원하면 꼭 우리나라가 지는 징크스. 그래서 중요한 경기일수록 귀는 중계에 집중하지만, 눈은 딴 곳으로 돌리는 츤데레 관객 모드를 시전하고는 했다.


말도 안 된다는 물론 나도 안다. 내가 무슨 승리의 여신 니케도 아니고. 어떤 능력이 있다고 나의 집중도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지겠는가. 합리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무엇인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 생각은 꼭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그런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누가 이런 말도 안 되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꼴을 볼라치면 그렇게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나 역시 그런 습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서, 그런 습관에 아직도 얽매여 있는 사람을 보면 또 오지랖과 합리적인 이성이 발동해 참견했다.

“그게 왜 네 잘못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마! 누가 했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일이야” 혹은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 불과해”라고 말하면서.


나는 이런 마음을 착한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세상엔 아직도 착한 사람이 많다. 세상의 모든 안 좋은 일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면서 기꺼이 고행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 그들에겐 태풍이 오는 것도 내 탓이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진 것도 내 탓이고,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은 것도 내 탓이다.

그래서 그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빨리 취업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가계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혼자 살고 있는 가족을 돌보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낀다. 이렇게 가다가는 공룡이 멸종한 것도, 지구가 기울어 있는 것도 다 내 탓이라고 할 판이다.


그러나 조금 냉정히 말하면 이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느끼는 착각, 그럴 수 없는 상황이면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착각, 그것을 할 수 없으니 마음의 무게라도 묵직하게 짊어지고 있으면 스스로 벌하고 있으니 괜찮고, 그런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어설픈 자기 위안으로 인한 착각.




정말 내 잘못 같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할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상대를 위해, 내게 죄책감을 주는 일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말이든, 행동이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죄책감에 몰입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진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혹은 저 마음 깊은 구석에서 반성하고 죄책감 느끼는 자신에 대한 의문이 밀려온다면(내가 왜 미안해하는 거지 하는 생각 같은) 자신이 지금 가짜 죄책감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내가 응원하는 팀이 경기를 진 것도, 내가 맡았던 일이 어그러진 것도,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집에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도 모두 내 잘못이 아니다. 단지 상황이 그렇게 됐을 뿐이다. 내가 죄를 지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 쓸데없는 죄책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가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과 진짜 죄책감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 것. 그것이 용기를 내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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