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 마라톤과 자신감
회사에 다닐 때, 부장님 앞에서 갈대처럼 픽픽 쓰러지는 충성 축구만큼이나 극혐했던 것은 매년 가을이면 열리는 10km 마라톤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타의 90%의 압박에 못 이겨 신청한 마라톤대회를 위해 하천가를 달리는 연습을 하는 날이면 조기 퇴근의 기쁨보다 원치 않는 운동을 해야 하는 고통이 더 컸다.
나는 마라톤이며, 마라톤 연습이며 모든 것이 싫었다. 땀에 젖은 옷을 입고 퇴근을 하기도, 옷만 갈아입고 퇴근하기도 찝찝한 그 상황도 싫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연습 시간이 되면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땀 배출을 자제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피하고 싶었던 마라톤 당일이 기어코 오고 말았다. 내가 연습을 하지 않았어도, 그때가 오길 바라지 않았어도.
새벽같이 출발해 도착한 행사장에서 어떻게 이 위기의 순간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동기 한 명이 찾아와서는 함께 달릴 것을 제안했다.
아뿔싸. 몇 번의 거절과 설득의 과정이 오가고, 결국 나는 동기와 함께 출발선에 대기하며 출발 총성이 울리길 기다렸다. 그땐 몰랐다. 그것이 1시간이 넘는 긴 레이스의 서막일 줄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고, 성공해보지도 못 했던 10km 마라톤. 과연 내가 결승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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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 때는 마르고 왜소했던 체격 덕분이었는지 달리기에 제법 소질이 있는 아이었다. 운동회 때마다 결승테이프를 끊는 순간이 주는 희열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내가 잘하는 것에 주변사람들이 환호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란.
그때 학교를 너머 더 큰 대회를 나갈 기회가 생겼다. 학교를 대표해 출전할 선수를 뽑는 최종 라운드에서 나는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래서 그 후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이없게도 출전 자격 미달, 다시 말해 실격이었다.
‘달리기는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을걸?’이라는 자신감, 혹은 이쯤이야 하는 자만심이 눈앞의 트랙을 지워버린 것이었을까. 어쩌면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이나 낯선 경험에 의한 미숙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정해진 코스보다 긴 거리를 달리고도 1등을 했지만, 경로를 이탈한 죄목(?)으로 실격되었다. 그 이후 달리기도 내 인생에서 경로를 이탈한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여하튼 그렇게 육상 꿈나무의 꿈은 바스라졌다. 아픔이라고 말하기 뭐한 이런 아픔이 있는 나에게 10km 마라톤이라니. 그것도 하고 싶어서가 아닌 타의 90%의 충성 마라톤이라니.
아, 그런데 하필 같이 달리자는 사람마저 나타나 버렸으니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달리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마음을 고쳐먹고 달리기로 했다.
‘잘 뛸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뛰어보자!’
그렇게 시작한 10km 달리기는 1시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 시간동안 괜히 했다는 후회와 한번 해보자 하는 결심을 반복하면서, 그 양가감정 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10km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드디어 결승선.
함께 달린 동기의 페이스 조절 덕분에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의 10km 마라톤을 완주했다. 싸구려 완주 메달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든 순간, 뿌듯한 마음이 들어 ‘어쩌면 내년 마라톤 대회도 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아주 잠깐하기도 하면서.
쉽게 시작할 수 없었던 마음의 벽은 한 번의 경험으로 간단히 무너져 버리고, 한편으로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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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신감’이란 무엇이었을까.
한자 그대로 뜻을 풀이해보면 ‘자기를 믿는 마음’인데, 그렇다면 나는 어떤 순간에 나를 믿었을까.
믿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럴만한 증거가 필요했고, 믿을 이유가 충분하지 않으면 생겼다가도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성공의 기억을 혹은 좋았던 결과를 혹은 그럴싸한 성적을 믿음의 근거로 삼아 나를 믿거나 나를 믿지 못하거나를 반복했더랬다.
그런 얄팍한 믿음 속에서 때론 나는 할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하고, 어떨 때는 의기양양하며 용기를 내곤 했었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해보지 않은 것, 혹은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것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하면서도 최고가 되고 싶었고,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남들보다 빠르게 결승선에 도달하기를 바랐기에 잘하는 것만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자신감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올림픽 경기던가. 아니, 그건 아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세상에 왔지, 경기를 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게 아니다. 그러니 1등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들은 45분 만에 뛰는 10km를 1시간 동안 달려서 도착해도 상관없는 것이 인생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지나간 길을 느리게 달렸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진짜 자신감이 뭔지 되돌아본다.
그저 내 페이스대로 삶을 살아가며 성취하는 인생의 진정한 묘미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자신감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어렵고 낯설고 두려워도 나아가길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자신감.
(사진 출처: 픽사베이의 wal_17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