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글
“행복하세요.”
입버릇처럼 끝인사의 단골 멘트가 되어버린 저 다섯 글자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끝맺음을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을 것이다(과장 좀 보태자면).
한때 눈 내리는 하얀 배경과 그에 비해 부각되는 빨간 목도리에 깔맞춤 장갑을 낀 연예인이 “부자되세요”라고 한 뒤로 덕담의 자리를 살짝 내어주기는 했지만, ‘행복하라’는 말은 내게 아직도 일상 덕담, 새해 덕담, 스페셜 한 날 덕담 1위다.
흘러가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 어딘가에 당신의 행복을 기원하는 작은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바란다는 그 말을 듣는 1초라는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당신이 그렇게 되었음 좋겠다. 그렇게? 그러니까 행복했음 좋겠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이나 행복을 바랐을까. 한 단어만 아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거창하면서도 소소했던 내 바람은 어느덧 사라지고, 공허함만이 입가에 맴돌았다. 행복을 썼다 지우고, 하루를 붙여 봤다 지우길 몇 차례.
무엇이 마음에 걸려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지 내 마음을 되돌아봤다.
행복을 바라는 내 매음은 맹세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무엇이 행복하길 바라는 내 말문을 막아버린 것일까?
‘행복’. 이 짧고 간결한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내가 말하는 행복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이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행복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 이 순간의 네가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나만 신나서 행복하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아닐까.
정의와 정의의 간극, 내 감정과 네 감정의 간극, 현실과 비현실적 공간의 간극이 상념을 만들어냈다. 나는 어느덧 그 속에 갇혀 행복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내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기분 좋게 만들고, 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주는 그런 일을 하면서 일상에 만족감을 키우는 것, 기쁘고 즐거운 것, 불안하더라도 금방 흔들림을 멈출 수 있는 것, 목표하는 것을 향해 걸어가는 실천이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행복을 너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너와 나의 행복이 달라서, ‘행복하세요’라는 짧은 문장에 저 긴 의미를 담아낼 수 없어서, 그냥 마음속으로 빌었다.
‘당신만의 행복을 꼭 찾으시길.’
나와 다른 행복이어도 좋으니 부디 당신의 행복을 꼭 찾길 바란다. 평소처럼 무심코 넘겨버리다가 어느날 문득 행복하라는 내 말에 꽂혀, ‘행복이 뭘까?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일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왜 행복이어야 했을까.
오늘도 사랑하세요, 즐겁게, 기쁘게, 행운이 가득하게, 건강하게, 배부르게, 열심히 보내세요 등등. 행복을 대체할 말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나는 왜 하필 ‘행복’이어야만 했을까?
세상 어떤 것들이 차고 넘치게 있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가 확연히 반감되니까.
돈이 많으면 좋고, 이쁘면 좋고, 건강하면 좋고, 그럴싸한 명함이 있으면 또 좋겠지만 그래놓고 불행하다면 내 인생의 의미가 뭐리 대단히 느껴지고 인생에 미련이 얼마나 남을까.
하지만 뭐가 좀 적어도 행복하다면 모든 게 다 플러스가 되기에 나는 행복하길 선택했다.
다른 건 좀 어려워도 이 정도면, 행복 정도면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단어 같아서 그래서 매일 행복을 빌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나와 너의 행복을 빈다.
“그러니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