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사막이 이렇게나 아름답다고?

경험으로 배운 것들

by 임경미


엄마의 좁은 뱃속에서 열 달을 견딘 아기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의 상태. 어쩌면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며 아기는 점점 삶에 필요한 능력들을 하나둘 배웠다.


내가 울면 저 사람이 나에게 오는구나.

엉덩이가 축축한데, 저 사람을 불러볼까?

이런, 그런데 왜 나를 안고 흔들지? 축축해서 짜증이 나는데. 울어볼까?

응? 이번엔 왜 우유를 주지? 나는 배가 고픈 게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더 울자.

30분을 울었다. 그제야 이 사람이 축축해진 기저귀를 갈아줬다. 어휴. 힘들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가는 생존에 필요한 것들뿐만 아니라 유용한 것들을 또 하나둘씩 배웠다. 나를 낳아 키운 사람이라도 나에 대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내 장난감을 빼앗는 또래의 사람도 있다는 것들을.


어른이 된 나의 ‘앎’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어디 경험에서 비롯된 것뿐이겠는가.

말에 익숙해지면서(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뽀미 언니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경험하지 않았어도 ‘아침에 늦잠 자는 어린이는 나쁜 어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브라운관을 통해 뽀미 언니와 눈이 마주친 나는 이불 안에서 뒹굴뒹굴하는 내 모습을 뽀미 언니에게 들켜 나쁜 어린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얼굴이 빨개져 이불을 뒤집어썼었다.

그러다 언젠가 뽀미 언니와 내가 눈이 마주친 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 만든 카메라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지만, 글자를 알게 되면서 접한 책 속에서 내가 몰랐던 카메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이렇게 간접 경험으로 나는 하나둘씩 알게 된 것들이 늘어났다.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과학학습 만화에서였을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은 어떤 매체를 통해 나는 사막이라는 것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에는 엄청 덥고, 밤에는 엄청 춥다는 그곳, 비가 내리지 않아 동식물이 잘 살아갈 수 없는 곳,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모래와 바람, 선인장, 낙타, 오아시스가 전부인 그곳. 그때까지 사막은 내게 삭막하기 짝이 없는 죽음과 같은 곳이었다. 나의 경험이 그렇게 인식하게 한 것이다.

그러다 초등학생 때 어린왕자를 읽고 난 후에는 사막이 조금은 낭만적인 곳이 되었다. 또 다른 경험이 사막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게 만든 것이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있는 곳이니 낭만적이지 않고서야 배길 수 있겠는가. 그 무렵 나는 어린왕자를 찾아 헤매는 감성소녀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성인이 되었다. 이제 책이나 TV를 통해서만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을 때 나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일으킨 사막으로 떠났다. 그렇게 떠난 사막에서 그 실체를 마주했을 때, 그동안 내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아 온 것들이 얼마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


왜 내가 읽은 책은, 내가 보았던 TV 프로그램은 해 질 녘 사막의 노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을까.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수놓는다는 것을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곳에는 선인장과 낙타보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더 많다는 것을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지금 알게 된 것들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알고 있다고 인식한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나는 그동안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통수가 얼얼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얼얼한 충격에 취해,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언덕에 앉아, 이제는 스카프를 휘날리게 하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저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태양의 흔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노을과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을 보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입자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나는 사막을 직접 경험했다. 사막은 따뜻했고, 시원했고, 아름다웠고, 생명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나의 간접적인 경험은 사막을 죽음의 땅, 삭막한 곳으로 인식하게 했지만, 직접적인 경험은 정반대로 인식하게 한 것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이만큼을 살아온 나는 이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러하다고 정의 내리는 것에 다시 물음표를 던져본다.

어쩌면 나의 앎은 내 경험이 아닌 타인의 경험으로 인한 앎이었음을, 그래서 그것이 내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직접적인 경험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책과 다른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고 알게 되겠지만 –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지. 그러니 오늘도 경험의 길을 선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