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의 진심

by 임경미


2달만 더 질질 끌었다가는 1년이 될 시점이었다. 참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나 이번에 집에 가”라는 연락에 그래도 1년에 2번은 만났는데, 서로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이놈의 코로나19가 뭔지, 그 보이지 않는 어마무시한 존재로 인해 근 1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나를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곁에 함께 있었던 시간이, 모르며 지낸 시간보다 더 길어진 친구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의 가방에 들어있는 책 한 권이 소재가 되어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어떤 장르의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문체에 대해, 주제에 대해.

그러다 자연스럽게 요즘 근황을 주제로 대화가 오갔고, 사실 요즘 글을 쓰고 있노라고, 몇 달 전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고 운이 좋게 계약이 되었다고, 그 책이 아마도 9월엔 나올 거라고 말했다.

친구는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도, 입은 눈보다 더 초승달 모양으로 웃고 있었을 것이 훤했다.

“잘됐다.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드디어 하게 되었네. 완전 축하해. 그러고 보면 네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네.”


친구가 말한 변화는 내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다는 것, 아니면 꿈에 도전하는 모습이었을 테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고, 이번이 기회이겠다 싶어 책을 내게 된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했다.

처음으로 드러낸 내 속마음이었다. 가족에게도, 어떤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왜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묵은 이야기들.

이제는, 썩은 이야기가 아니라 잘 발효가 돼서 나에게는 아픔이 아닌 그랬던 과거 정도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털어놨다.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앵무새처럼 반복하듯 내 이야기를 글로, 말로 풀어낸 효과 덕분이었는지 말을 하면서도 담담한 내 모습에 새삼 놀랄 것도 없을 정도로 많이 괜찮아졌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친구는 전혀 담담하지 못했다.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울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휴지를 가져와 달래 보고, 사람들이 너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고, 실연당한 여주인공 같다고, ‘내가 널 찬 거야?’라는 말로 웃겨봐도 친구는 얼굴이 점점 붏어지며 한참을 울었다.


“너나 나나, 참, 속마음을 꽁꽁 숨기고 살아. 나는 네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들어줄 수 있는데, 왜 그런 걸 혼자 삭이고 있었어?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까 너무 속상해.”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친구에게 어떤 마음도 드러내지 못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친구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 고통을 말하는 순간 친구가 지금처럼 속상해할 테니까. 고통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통을 나눠서 배가시키고 싶지 않아서 좋은 소식만 들려주고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마음 한구석에는 나의 삐뚤어진 자존심이 있었다.

친구는 잘살고 있는데 내가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내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너만큼 나도 잘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연극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나의 습관이 원인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꽃처럼 활짝 피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이 무의식중에 나를 좋은 것만 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나 보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내 진심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이유였든 그렇게 숨겼던 내 마음이 친구에게는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네 친구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다 받아줄 수 있는 거야. 네가 잘사는 것은 축하해주고, 네가 힘들어할 때는 위로해주면서. 나는 네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친구의 눈물을 통해, 말을 통해 알겠다.

친구라는 존재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내게 손을 내밀어 줄 존재라는 것을. 흙투성이 손이든, 향내 묻은 고운 손이든 주저하지 않고 잡아주는 존재라는 것을.

친구이기 때문에 좋은 것만 보여줄 필요가 없고, 친구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모습도 다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어리석은 자존심이, 잘못된 생각이 친구를 더 외롭고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는 힘들면 힘들다고 응석도 부리고, 좋으면 좋다고 자랑도 하면서 서로에게 더 편하고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겠다.


“고맙다, 친구야. 나를 괴롭혔던 생각 하나를 비우고 더 가벼운 나로 살 수 있게 해줘서.”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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