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 과거의 흔적

마음을 환기하는 일상에 대하여

by 임경미


창을 활짝 열었다. 옷과 이런저런 마음의 짐 같은 짐들이 한데 모여있는 방의 문도 활짝 열었다. 밤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바람을 만들어내느라 수고로웠을 선풍기를 당겨 가장 세게 틀어놓고 바람이 들어가도록 한다. 살랑거리는 옷자락에 바람이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평소와 같은 일상의 루틴으로 돌아온다.


커피를 내리고 요란한 소음과 함께 방안으로 퍼지는 커피 향을 맡기 위해 숨을 훅 들이마신다. 숨을 쉬기 위해 마시는 숨이 아닌, 냄새를 맡기 위해 들이마시는 숨. 그 숨에는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의 영혼이 담겨 있다. 한 계절 바람을 맞으며, 비를 맞으며, 햇빛을 맞으며, 열기를 맞으며 더 성숙해졌을 커피의 기억.

때론 유쾌하고 때론 슬프고 때론 활발하고 때론 고요한 기억들이 향에 실려 전달된다. 기꺼이 진갈색 눈물을 흘려준 커피 원두의 기억을 다독인다.


‘그랬구나. 그렇구나. 그러겠구나.’


이건 기만이자 왜곡이다. 제멋대로 만들어낸 이야기, 남 이야기인 듯 써내려간 자전적인 이야기. 원두의 기억은 지난밤 미처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흔적이고, 외면하고 감췄던 감정의 찌꺼기임을 이미 알고 있다.


원두 찌꺼기에서 풍겨 나오는 잔향을 들이마시며 오늘을 점친다. 어쩌면 오늘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 새로울 것이다.

터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잔 바닥에 남은 찌꺼기의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친다는데, 찌꺼기 모양이야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는 나는 그 향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느끼며 오늘을 유추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익숙한 커피 향 속에 이미 익숙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섞여 있다. 커피의 기억이 아니고, 내 감정이 불러일으킨 기억도 아닌 또 다른 무언가. 그것도 마찬가지로 향이다. 그러나 향이 아니다. 그래, 이것은 향이라고 할 수 없는, 냄새다.

맡자마자 저절로 인상이 써지는 것에는 향이라는 단어보다 냄새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장미 향, 커피 향이라고는 하지만 곰팡이 향, 똥 향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나만의 기준에 따라 향과 냄새를 구분해서 쓰고는 했다. 이런 점에서는 된장찌개 향, 포근하고 따뜻한 네게서 느껴지는 살 향이라고 할 수 없는 게 비통하다. 찌개 냄새가 더 익숙하고 살냄새가 더 보편적이니까. 그렇게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로, 더 익숙하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 늘어난다.


여하튼 커피 향 속에서 도저히 향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리고 부르기도 싫은 것이 느껴진다.

아침부터 열어둔 옷방이자 짐 방에서 퍼져나오는 냄새. 건조하고 간질간질하며 콧속을 찌르르 하게 찌르는 냄새.

지난주 외식을 하면서 얻은 식당의 음식 냄새, 더운 날씨에 흘린 땀의 냄새, 켜켜이 쌓인 먼지의 냄새, 유난히 비가 잦은 계절이 남긴 습기의 냄새. 온갖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바람을 타고 일렁거리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렇게 냄새를 타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과거의 흔적이 급습한다.


언젠가 이런저런 이유로 대강 묻어놓은 것들이 있었다. 조금 괜찮아지면 해야지,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정리해야지 하며 묻어놓은 기억들, 느낌들, 그리고 생각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뱀이 허물 벗듯 옷을 벗어 걸어두고 오랫동안 깜박하고 방치해 둔 옷가지들처럼 내 마음에도 미처 돌보지 못한 기억이 쌓여있었다. 그런 기억들은 이런 냄새, 저런 냄새와 뒤섞여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옷방처럼 꾸질꾸질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미 곪아버렸거나 썩어버렸거나 삭아버린 기억들. 그 속에 함께 했던 향긋한 기억들도 강력한 냄새와 어우러져 미묘한 냄새로 변질됐다.


오래된 것들에서는 항상 냄새가 났다. 냉동실에 오래 넣어둔 아이스크림에는 냉동고 냄새가 뱄고, 일찍 비우지 않은 수채에서는 썩은 내가 났고, 깜박하고 세탁하지 않은 티셔츠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일주일 여행을 떠났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도 평소에는 나지 않았던 냄새가 났다.

저 방의 문을 넘어 풍기는 냄새도, 내 마음속에서 내뿜는 냄새로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어딘가 낡아서 전과 다른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내 게으름 탓이 아니야, 내 안일함의 탓도 아니야, 다만 오래 묵어서 변해버린 거야.’


이건 탓할 것도, 잘못했다고 뉘우칠 것도 아니다.

아니, 하지만 그게 마냥 참은 아닌 것 같다. 오래된 것에서는 항상 냄새가 난다면, 그렇다면 지난 시절 애인과의 기억은 왜 보드랍고, 가족과의 기억은 왜 따뜻하고,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은 왜 아름다울까. 이런 것들에게 냄새가 있다면 그것은 악취가 아니라 꽃향기 같고, 바람 향기 같고, 빛이 있다면 무지개 빛 같다고 느낄 게 분명한데 말이다.


그렇다면 오래된 것에서는 냄새가 난다는 명제는 어떤 면에서는 참이고, 어떤 면에서는 거짓일 것이다.

오래도록 손길이 닿지 않아서 향이 아닌 냄새를 풍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 알고 있었다. 이럴 것을 예상해서 옷방에 꽃향기가 강하게 풍기는 섬유 유연제의 향과 비슷한 디퓨저에 스틱을 두세 개 꽂아 놓아뒀던 참이었다. 조금씩 풍기는 악취도, 쿰쿰한 냄새도 디퓨저의 향에 중화되고 사라지길 바라면서. 디퓨저 용액을 빨아올리고 분산시키는 스틱의 개수가 늘어가도 ‘괜찮아지겠지’ 하고 몸만 빠져나왔던 옷방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열어젖힌 옷방에서는 미처 돌보지 않았던 시간을 배양분 삼아 어느덧 냄새를 풍기고 있다. 변질의 냄새, 하락의 냄새 같은 것들이.


저 냄새를 빼내려면 수시로 문을 열어 환기하고 바람을 들여보내 주고, 쾨쾨한 냄새를 풍기는 옷가지들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그래야 더는 냄새를 풍기는 옷방이 아닌, 향을 풍기는 옷방이 된다.

결국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묵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남는다. 오늘 유난히 슬펐던 커피의 향도 같은 말을 한다.

묵은 것들을 비워내라고, 안녕하지 못한 것들을 돌봐달라고,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들여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면 커피의 향이 다시 향긋해질 거라고.


마음이 냄새가 아닌 향을 내뿜을 수 있도록 잠시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악취를 풍기는 기억을 끄집어낸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독한 냄새에 향기로운 기억마저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내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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