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좋은 것의 차이를 깨닫는 일상에 대하여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한 달 넘게 허리 통증이 이어졌다. 머리를 감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것도, 바닥을 닦기 위해 몸을 구부리는 것도, 떨어진 물건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워진 게 자연스러워진 일상.
오래 묵힌 병이 괜찮을 리 없는데, 디스크쯤은 감내할 수 있다, 수술만 안 하면 돼, 하고 묵히고 묵혔다.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이다 보니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자려고 누울 때조차 통증이 밀려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아픈 허리를 매일 걷는 것으로 이겨냈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글 쓰는 사람에게 디스크란 뭐 당연한 것이라는 어설픈 연대의식은, 할 수 있다면 늙어서까지 디스크 건강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신생 바람 앞에 산산조각이 나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찾아오는 통증에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찾은 병원이었다.
이 정도의 통증은 경험해본 적 없고, 이 정도의 불편함은 느껴본 적이 없고, 이렇게 오랫동안 아팠던 것도 처음이라 어디가 문제가 생겼어도 단단히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결과는 뭐 불 보듯 뻔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속뼈를 드러낸 것이 민망할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해져서는, 저 뼈가 내 뼈구나 하면서 한참을 쳐다봤다. 유연하게 C자로 휜 허리와 마치 징검다리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띄어 있는 척추뼈가 보인다.
의사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화면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흠, 이라는 말과 함께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데, 마음의 준비를 미처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들은 첫 말은, “허리가, 완벽한데요?”
예상 밖의 결과에 놀랄 틈도 없이 의사의 말이 이어진다.
“음, 이런 허리는 아프면 말이 안 되는 허리에요. 99.5% 완벽한 허리! 요즘 이러기 쉽지 않은데! 앞으로도 잘 관리하세요.”
의사의 폭풍 칭찬에 “아, 정말요?” 하면서 기쁜 마음에 소리 없는 박수를 몇 번 치고 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한때 극심한 편두통에 진통제를 달고 살다가, 그때도 역시 묵은 통증에 패배를 선언하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혈관도 깨끗하고 좌우가 아주 대칭인 게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가 없네요!”
이럴 수가. 그렇다면 나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두통의 원인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픈 원인을 시원하게 찾지 못해 서운했지만, 그래도 머릿속이 깨끗하다고 하니 그건 또 반가운 소식이어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더랬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심장이 자꾸 두근거리고 통증이 찾아와서 찍은 심장 MRI 결과 역시 정상. 아무 문제 없음.
문제가 없어도 문제는 있을 수 있는 몸의 신비를 경험하며, 그렇다면 원인이 뭘까, 결국은 또 스트레스? 하면서 한숨을 푹. 스트레스 없이 사는 삶이란 아직 유토피아에 가까운 나이니까.
그러다 문득 내면이 아름다운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나 입버릇처럼 했던 말 중 하나는, 외면보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 ‘마음이 고와야지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하는, 지금 들으면 뜨악할 만한 가사의 노래가 있었음을 떠올리며, 성별을 불문하고 외면보다는 내면이 더욱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랐다.
‘얼굴 예쁘고, 공부 잘하고, 좋은 직업 가지면 뭐 해, 인성이 그 모양인데’ 하는 류의 평가는, 그럼에도 외면마저 아름답길 바랐던 마음의 투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 한번, 저기 한번, 그리고 또 거기 한번 찍고 나니, ‘새로운 형태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3단 콤보로 달성한 것만 같아 내심 뿌듯하기 그지없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나의 아름다움은 거울을 볼 때나 사진에 찍힐 때가 아니라 X-RAY나 MRI 혹은 CT 같은 것들을 찍어야 볼 수 있는 것이구나. 이것은 또 무슨 신종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그거 알아요? 저는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뇌가, 심장이, 척추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의사 선생님도 연신 감탄하고 놀라더라니까요!)
그렇게 머리에 이어 심장, 심장에 이어 허리뼈까지. 내면의 아름다움 3단 콤보를 달성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서는 길. 그럼에도 마음 구석이 묵직한 것은 여전히 허리가 욱신거리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아름다운 내면들은 왜 여전히 고통을 선사하는 것일까. 그 무심한 통증들의 원인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진료실을 나오기 전, 의사는 바닥에 앉지 말고 의자에 앉아라, 의자에 앉을 때는 양반다리를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엎드려서 팔로 상체를 받친 채 있는 자세도 척추에는 좋지 않다고 했다.
바닥에 철푸덕 앉는 것, 의자에 앉을 때도 양반다리를 하는 것, 다리를 꼬는 것, 불 꺼 놓고 핸드폰 하기, 먹고 바로 눕기. 이런 자세들을 습관처럼 했던 것은 편하고 익숙했기 때문인데, 그런 습관이 몸에는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식후에 먹는 물처럼 맛있는 게 없고, 고기를 먹고 난 후 먹는 냉면처럼 찰떡인 게 없는데 맛있고, 좋고, 편하고, 익숙한 것들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을 축내고 고장나게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육체와 마음은 또 이렇게 다름을 증명한다. 마음이 좋아하는 건 몸이 싫어하고, 몸이 좋아하는 건 마음이 싫어하는. 본디 서로 하나가 되어 존재를 잘 살게끔 도와줘야 할 두 녀석은 오히려 취향이 정반대로 다르다.
(도대체 편하고 익숙한 것들은 왜 죄다 몸에 안 좋은 것이란 말인가!)
배신감. 내 몸에 좋은 것 하나 알지 못해서 오랫동안 몸을 망쳐왔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 좋고 편하게 느끼게 만들었으면서 이제 와 딴소리 하는 모든 습관에 대한 배신감, 변하고 발전해야 하는 게 삶이라고 기본값을 세팅해놓고 막상 변화하려고 하면 불편하고 힘들어서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한 배신감. 물밀듯이 밀려오는 배신감에 허탈해하다 지금 당장 직면해 있는 문제를 바라본다.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몸을 따를 것인가, 마음을 따를 것인가. 어떤 종류의 배신감을 감내할 것인가. 그러나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의 갈등은 잠시. 배신감에 푹 빠져버렸다는 핑계로 예전대로 살고, 예전대로 먹고, 하던 대로 할 수만은 없기에 의사의 말을 상기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본다.
‘좋고 편한 모든 것들이 내 몸에는 안좋은 습관들이다.’
이렇게 섣부르게 일반화해 놓고, 아름다운 내면 3총사를 계속 유지해보자고 다짐한다.
이토록 좋았던 몸이, 나중에 안 좋아졌다고 하면 그때는 더 큰 배신감이 들 것만 같아서 말이다. 결국 감내하기로 결정한 배신감은 내 약한 의지에 대한 배신감이 되어버릴 것 같다.
(이미지 by Arpit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