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가씨. 함께 해서 즐거웠고 언젠가 또 만나요

대를 이어온 노래 인생, 어쩌면 삼대까지

by noname

어머니는 천생 가수였다. 나를 낳으시다가 목소리 다 갔다고 하소연했다. 그로 인한 허스키 보이스와 굵직한 바이브레이션. 가사의 변화에 따른 극적인 감정 표현과 고개 꺾기, 마이크를 돌리는 기술로 트롯을 기깔나게 불렀다.


소싯적 숟가락 잡고 노래 한 소절만 불러도 동네 청년들이 환장했다고 본인은 강력히 주장한다. 방금 표현은 너무 경박스러운가. 좋아했다고 정도로 해두자. 동네 청년이란 생물은 왜 쓸데없이 우리 엄말 연모하는가? 점점 믿을 수 없는 이야기투성이다. 세상이란.


예부터 어머니의 표정이 환해질 때는 아들이 시험을 잘 보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다. 또 하나, 주변 사람들이 노래 잘 부른다고 치켜올려 줄 때다. 속이 다 보인다니까. 나 참.


어머니는 가무를 좋아하셨다. 마치 인터넷에 떠도는 믿기 힘든 고구려 사람들 설화처럼. 다행히 음주는 좋아하지 않아서 집안이 풍비박산(風飛雹散) 나는 것은 면했다. 음주까지 좋아했다면 그의 아들이 이리 반듯하게 크지는 않았겠지. 내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와 그 친구들은 남편들 몰래 가무하러 가는 것을 추진하였더랬다.

“엄마 춤추러 다닌대.”

아버지에게 한 이 무심한 한마디에 새로 장만한 고가의 전축이 부수어졌다던가. 그때의 상황은 상상에 맡긴다. 역시 가정의 평화는 장남(障男)이 지킨다. 장하다. 암요.


나 역시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등굣길, 하굣길, 학원을 오고 갈 때,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걸었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렀고, 가수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성당 다닐 때,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심심하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


그에 비해 데뷔는 조금 늦었다. 군대에서 노래자랑이 첫 무대였다. 윤도현의 ‘잊을게’를 남정네들 앞에서 자신 있게 불렀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감동적인 느낌은 없었다. 군대에서 약속한 보상도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찌 됐든 소망하던 바를 이뤘으니.


대학교 동기 녀석들이 하나씩 결혼을 준비했다. 친하건 조금 덜 친하건 내게 축가를 부탁해 왔다. 부담감이라는 게 생겨 버렸다.

‘혹시 노래하다 음 이탈 나서 결혼식을 망치면 어떡하지.’


이들 중 맨 처음, 가장 친한 동기 동생 녀석이 축가를 부탁해 왔다. 몰래 열심히 연습했다. 하늘 아래 비밀이라는 건 없다고 했던가. 학생들과 몇몇 선생님이 축가 연습을 하는 걸 우연히 보고 관심을 보여 왔다.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습을 안 할 수는 없으니.


결혼식 때, 축가를 불러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일단 결혼식 시작 전 축가 리허설을 한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들 앞에서 축가의 일부분을 부른다. 떨린다. 그다음 결혼식장 맨 앞에 앉는다. 그러다 결혼식이 끝날 즈음에, 마치 옛날 시집온 새신부가 가마에서 나오듯 결혼식장 안의 사람들에게 나를 수줍게 선보인다. 사람들의 흥미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나를 보며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애써 태연한 척 마이크를 매만지며 노래가 나오길 기다린다. 평소보다 얼굴은 상기되고, 심장 박동이 느껴질 만큼 내 가슴은 심하게 요동친다. 그래도 노래 음이 들리면 어떻게든 시작해야 한다.


지겹도록 익숙한 멜로디. 떨리는 가슴과 귀에 들리는 음 모두 붙잡아야 한다. 약하게 부를 곳은 약하게, 세게 치고 나가야 하는 부분은 세게. 애절해야 할 부분은 감정을 담아. 절정 부분은 최선을 다해. 신랑의 모습이 들어온다. 차마 신부는 쳐다볼 수 없다. 청중을 보며 노래하지만, 그들이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클라이막스 부분을 끝내고 과제를 낸 초등학생이 선생님의 평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청중의 반응을 조심히 살핀다.

“우~~~~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께 몇몇은 일어서서 환호해 준다. 이 느낌은 나른하면서 잊을 수 없다. 벅찬 감동이 이어져 점심조차 제대로 들 수 없었다.


마지막 축가는 동생의 결혼식.


유일하게 먼저 동생에게 자청한 축가다. 그 결과 부모님, 친척 어른, 사촌 동생, 그리고 그 지인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한 번은 결혼식장 뷔페를 맘 편히 먹고 싶다.’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지친 하루가 가고. 달빛 아래 두 사람. 하나의 그림자.’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다. 그래. 내게는 이제 지칠 하루의 시작이지. 그래도 이를 위해 연습한 많은 시간이 있다. 그보다도 동생의 결혼식이다. 무엇보다 노래는 내 일상이다. 흥얼흥얼. 거리에서 수많은 시간 노래 부르며 목으로 웃고, 울고, 꺾고, 떨었었지. 도대체가 왜.


신랑의 모습이 보인다. 감량이 되지 않은 푸짐한 실루엣이 보인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걱정하고 있으려나. 신부의 모습도 보인다. 동생과는 반대로 완벽하다. 요번에도 신부의 표정은 차마 볼 수 없다. 아차. 상념이 길었다. 다행히 노래는 안정적이다. 가사도 틀리지 않는다. 음 이탈도 없다. 다소 긴장한 까닭에 목은 조금 잠겨 있지만. 괜찮다. 나는 이 노래를 다소 이해하고 있다.


‘먼 훗날 무지개 저 너머에~’

어쩌다 보니 절정부에 도달했다. 여기만 잘 넘기면 끝이다. 왠지 모르게 아쉬운 느낌이 든다. 잘 못 불러서 아쉬운 건 아니다. 이 긴장감, 약간의 황홀함. 싱어스 하이(Singer’s High). 조금 더 느껴보고 싶다. 내 마음과 달리, 노래의 끝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우리 두 사람 저 거친 세월을 지나~~~~~~’ , ‘가~~리~~~~’

‘지나’를 길게 끌고 몇 박자를 쉰 다음 ‘가리’를 자연스럽게 잇는다. 그리고 ‘리’에 바이브레이션을 가능한 길게 넣어 여운을 살린다. 끝났다. 마치 겪어보지 못한 죽음과 같은 안도감과 편안함이 온몸에 나른하게 스며온다. 노래를 멈추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마치 그 분야의 뭐라도 되는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조용히 청중의 반응을 기다린다.


‘잘 해낸 걸까.’

열심히 했고, 과정은 즐거웠다. 그러면 되었다. 첫 축가와 동생 축가 사이에 너 댓의 축가가 있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자책도 해보았다. 그렇다. 이미 다 해봤다.


결혼식이 끝난 후, 넌지시 동생은 내게 말했다.

“왜 니가 노래하니깐 눈물이 살짝 나오냐.”

이유는 묻지 않았다. 원래 형제들은 그런 걸 묻지 않는다. 단지 이렇게 갈했다.


“졸라 잘 불러서 그래.”


어떤 만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감독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요. 저는 지금입니다.”

이제까지 내 노래 인생 중 영광의 시대는 축가를 불렀던 순간들이다. 그 벅찬 감동과 황홀감을 앞으로 느껴볼 수가 있을는지.


“축가씨.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이 아니라,

즐거웠고 할 수 있다면, 다시 만나자.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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