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장난 두 번은 진실에 다가가는 열쇠
“선생님 개 같다.”
놀랍게도 복도에서 처음 본 아이가 내게 한 말이다. 마음속엔 격정의 폭풍이 휘몰아쳤지만, 괜찮다. 난 프로니까.
“선생님한테 개라고 하면 어떡해.”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얘기한다. 인내심 레벨업.
‘이쯤 하면 아이도 알아먹었겠지.’ 하는데.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운을 띄우려 한다. 그 찰나에.
‘그래. 미안하다거나, 상응하는 말을 하렴. 선생님은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단다.’
“그럼 강아지.”
‘이건 그냥 욕이 아닌가?’
오늘부로 난 프로 반납이다.
‘강아지는 네가 더 닮았거든?’
마음의 소리가 현실 세계(Real World)로 마구 쏟아져 나오려고 하지만, ‘업(業)’에 알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적어도 행동강령 뭐 시기에 그렇게 쓰여 있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가던 길을 간다. 무소의 뿔처럼. 뿔은 단단히 났지만.
화도 나고. 다소 웃기기도 한 상황. 이럴 땐 형제가 최고다. 불철주야 공무가 다망(多忙)하실 대한민국 지킴이께 전화를 때린다. 아차. 전화는 거는 거지. 동생은 평소와 같이 귀찮은 듯 전화를 받는다.
“왜.”
“애가 나보고 개 같대.”
“ㅋㅋㅋㅋㅋㅋ 왜?”
“몰라.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개 충격이네.”
이후 시시껄렁한 대화. 기억나질 않는 거 보니, 간단히 안부 묻고 끝냈나 보다.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다짜고짜.
“너 애한테 못생겼다는 말 들었다며. 저번에 코 울퉁불퉁한 거 그거 한 번 더 해야겠더라. 어쩌고 저쩌고…”
난 곰보 코 돌하르방이 되었다. 입이 있어도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有口無言). 동생이 말을 잘못 전한 건지, 엄마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하는 말인 건지. 하.
“엄마 그게 아니고, 어린 애가 내 모습이 개를 닮았다고 한 거야. 개같이 못생겼다는 뜻이 아니고. 진짜 왜 그래.”
“그래. 내가 이상하다 했다. !@#$”
엄마는 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언제나처럼. 이쯤에서 이 해프닝은 매듭이 지어지는 듯했다. 그러길 바랐다.
“강아지야!”
교실에 앉아있는 아무 죄도 없는 내게 눈먼 돌이 날아왔다. 난 개구리가 아니다. 조용히 있는 내게 누가 짱돌을 던진단 말인가. 말의 주인을 쫓으니, 바로 저번에 그 녀석이다. 들끓는 혈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돼.”
선생님의 스킬. 엄중경고(嚴重警告) 발동. 물론 개구쟁이에겐 이 기술에 대해 면역이 있다. 내가 뭐라 하건 말건, 아이는 제 갈 길을 갔다. 어른이자 선생님으로서 권위를 지켰다는 작은 안도감. 그 후에 몰려온 훨씬 큰 패배감, 마음의 상처.
감성 영역의 일을 논리의 영역으로 끌어와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왜 나보고 개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느 때처럼, 교실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하나, 둘 여아들이 몰리더니, 하는 말.
“선생님 기타 치면서 멋있는 척 좀 하지 마세요.”
머리를 흔들어 눈앞에 거슬리는 앞머리를 정리했던 때일까. 심심하면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다. 그렇다. 내 주위는 이런 녀석투성이다. 내 잘못일까. 이 녀석들 잘못일까.
“멋있는 척이라고 생각하는 건 네가 진짜 멋있다고 생각해서 아니겠니.”
아이들은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답한다.
“어휴. 선생님 T에요?”
쟤들은 불리할 때마다 날 MBTI의 대문자 T로 만들고 만다. 입씨름하다 보면 피곤할 것 같아 기타를 잠자코 쳤다.
“근데 선생님 강아지 같지 않아?”
“그 개 중에서 있잖아...”
지들끼리 아주 신났다.
‘속닥거려도 다 들린다고. 그런데 개?’
그렇구나! 갑자기 개 중에 앞머리가 길어 얼굴을 가리는 개의 모습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코는 둥글고, 앞머리가 긴 그 개. 아르키메데스도 나만한 깨우침을 얻지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깨 벗은 그처럼 즐거워졌다. 세상의 모든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 그건 가까이에 있었는데.
좋아하는 드라마 OST 일부이다.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내 모습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만인 것이었다. 여러 의미를 더하고 보태고 의도를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아이가 뭐라 하건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 남이 정의한 내 모습보다 나 자신만의 길을 그려가려고 한다. 설사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할지라도. 다른 그림을 그린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뭇매를 맞더라도.
그래도 괜찮아.
우린 모두 자신에 있어선 프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