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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Jul 02. 2024

비와 함께 온

꿈틀꿈틀

6월 중순이 넘어갈 때부터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기에 지금부터 이러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나에게 7월이 시작되자마자 찾아온 것은 더위가 아닌 비였다. 그것도 하루 오고 마는 그런 비가 아니라 언제 제대로 된 해를 볼 수 있을지 모를 긴 장마,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런 장마, 아니 장마가 아니더라도 비가 오면 보통 함께 찾아오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지렁이이다.


지렁이. 아마 많이들 봤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보는 지렁이의 모습은 대게 무언가에 밟혀 죽었거나 아니면 비 온 뒤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말라죽었거나, 둘 다 아니라면 곧 그럴 예정인 지렁이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비만 오면 기어 나와서 길바닥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그렇게 좋게 보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렁이는 우리나라 축산법상 가축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가축이란 말 그대로 家畜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뜻한다. 집에서 기른 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를 포함한, 지렁이가 가축으로 지정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도 지렁이 자체가 이래저래 도움이 되는 동물이라는 것 정도는 아마 알고 있지 않을까 한다. 대표적으로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요즘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데도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지렁이는 길바닥에서 죽는다.


지렁이는 왜 길바닥에서 죽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깔아 둔 아스팔트, 콘크리트 바닥을 뚫을 수 없어서 그 위에서 꿈틀거리다가 결국에는 죽는다. 지렁이 좀 죽는 게 뭔 대수냐고? 맞는 말이다. 비만 오면 다 기어 나와서 여기저기 꿈틀꿈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거 몇 마리 죽는다고 지렁이가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은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냥 나는 조금 신경 쓰였을 뿐이다. 인간을 위해 깔아놓은 단단한 바닥과 그 단단한 바닥 때문에 죽는 지렁이를 보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것이 어느 순간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단단한 바닥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그 단단한 바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그 위에서 죽는 지렁이들이 조금 신경 쓰인다고 말할 뿐이다. 지렁이가 지렁이처럼 생기지 않았다면 상황이 조금 더 좋았을까? 괜히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글이나 하나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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