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필요한?
나는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경을 써야 하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한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조금씩 시력이 낮아지더니,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은 양쪽 눈 모두 0.3 정도의 시력을 가지게 되었다. 약간의 난시는 덤이고 말이다.
시력에서 0.3이란 수치는 참 애매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력에 안경을 무조건 써야 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더욱이 아직 노안은 아니라 가까운 게 안 보이는 게 아니라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등등 어떤 작업을 할 때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그렇다고 안경이 전혀 필요 없느냐? 하면 그것도 또 아니다.
세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약간 블러처리된 것처럼 보인달까? 움직이면서 보기에, 더욱이 난시도 조금 있어서 더 그래 보일 수 있지만 확실히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도 풍경도 모두 말이다. 눈과 세상사이에 필터라도 낀 기분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라도 안경을 쓰고 밖을 나간다. 최근에도 어디 잠깐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가방에 항시 넣어가지고 다니는 안경을 쓴 뒤 길을 걷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항상 나를 이렇게 선명하게 보고 있는 건가?'
안경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안경이 없는 이전의 흐릿한 세상과 다르게 확실히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나는 평상시에 거의 안경을 쓰고 다니지 않기에 나에게는 어느새 흐릿한 게 기본인 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타인이 나를 볼 때도 내가 흐릿하게 보일 거라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놀라웠다. 나와 타인은 내가 안경을 끼지 않아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타인에게도 내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니 겉모습에 좀 덜 신경을 쓴달까? 그런 것도 좀 있었던 것 같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은 다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꼭 타인의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타인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일이 있었다고 계속 안경을 쓰고 다니거나 혹은 눈 수술을 알아보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깨달음을 얻지 않았는가? 내가 보는 게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당분간은 흐릿하게 볼 생각이다. 아직 선명하게 보고 싶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