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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어 서는 세상

심리치료견과 최고보호자

by 윤혜경

* 럭키 (요키 종류)와 랄프(셀티 종류)가 천문대 근처 반려견 허용 펜션에서




학습부진 아동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조절해주는 반려견


불특정한 기간의 거주를 전제로 한 아빠의 회사 발령에 의한 잦은 이사는 어른에게는 새로운 즐거움도 있지만 아동의 경우에는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는 또래관계에 대한 불안, 두려움 또한 가볍지 않다. 물론 이민의 경우에는 어려움이 훨씬 더 크다. 그곳에서 온 가족 구성원의 뿌리내리기가 무사히 꼭 성공해야 하므로.


와중에 가끔 언론에서 빛을 비추는 경우는 대체로 성공한 다음의 상황이므로 이를 보고 듣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 살기에 대해 호의적이지만, 실제로는 잘 극복하여 눈부신 결과를 들고 온 사람보다는 성장과정에서 조용히 마음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깻잎 모종도 아니고 뿌리를 내릴만하면 번쩍 들어서 옮겨 심는 어린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 어찌 불안을 잘 극복하고 씩씩하게 꽃 피우는 정서안정만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현지의 또래보다 수년씩 늦게 시작한 낯선 언어가 의사소통 수단이 되어야만 한다. 어린아이들은 들을 수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언어가 바람처럼 빠르게 휘젓고 다니는 교실에서의 생존을 위한 불굴의 끈기를 발휘해야 한다. 넉살이 좋은 성격이라면 다행이지만 보통 아이들은 어느 표정이 내게 호의적인지를 빠르게 판단해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또래를 찾아내기 위한 눈치보기로 시작한다.


학습을 위한 문해 능력 수단으로 낯선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아이는 이로 인해 처음부터 낙제 수준의 꼴등으로 극심한 언어장애 수준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자리하는 위축감과 불안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적응해야 할 목표 언어의 문화마저 새롭기 그지없다.


어른들의 결정에 의해 새로운 환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 아이는 부모나 형제자매가 현지 언어에 능통하지 않으니 보호자조차도 어린 아동의 새로운 언어 습득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국에는 흔한 과외학원도 해외에서는 거의 찾기가 어렵다.


이때 먼저 정착한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 방법인 가장 무책임한 표현으로


"얘들은 놔둬도 빨리 배워요."가 있다.


한글이 능숙해도 학교 수업 진도에 뒤처지기 쉬운데 하물며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 습득이 안된 아이가 빠르게 배울 때까지 겪는 속앓이는 "어른들은 몰라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모국어로 정보를 교환하고, 방문 장소도 한국식당부터 교민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 한국식품점에 한국교회까지 모국어로 가득 찬 일주일을 만드는 성인보다는 아이들의 언어 습득이 역시 빠르다.


어린아이들은 전일제 학교에서 종일 귀에 와서 부딪치는 목표 언어의 파편 덕분에 6개월에서 1년 정도에 이르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학부모와 담임과의 면담 시간에 어린 아동이 통역하는 수준의 언어 습득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이때쯤엔


"얘들은 놔둬도 빨리 배워요"


가 조금은 공감되는 표현으로 다가온다. 학령에 맞는 독해 언어 수준의 도달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우리 가족은 1988년부터 국내외 이사가 시작되었고, 세 번째 태평양을 건넌 이사 후 1997년 크리스마스에 만난 탄생 12주의 요크셔테리어 '럭키'는 어린 덩치에 맞지 않게 가족의 심리치료사로 큰 몫을 해내었다.


그렇게 3개국에서 함께 거주하며 온 가족의 든든한 반려견이 되어 우리 가족 모두 '동물매개 심리치료' 제목을 듣기도 전인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매개 심리치료를 체험한 셈이다.


조그만 럭키를 키우는 내내 영어와 한글 지시어를 완벽하게 익힌 개에게 반해서 온 가족은


"우리 럭키는 어쩜 저리 영특하지? 영락없이 사람 같아."


를 입에 달고 살았다. 럭키는 이런저런 악기와 운동 활동으로 바쁜 누나들을 기다리다 짬짬이 쓸쓸하거나 허전할 때면 누나들이 내어준 커다란 하얀 강아지 인형 위에 엎드려 있곤 했다.


럭키는 온통 카펫이 깔린 단독주택에서 소변 신호로 현관에 몸을 부딪치는 댄스를 하며 현관문을 열어주면 앞뜰의 잔디 위에 소변을 보겠노라는 의사전달을 하였다. 하루에 서너 번의 소변 신호였으니, 돌아보면 실내생활로 인해 럭키는 늘 소변을 참고 있었나 보다. 산책길에는 진도를 낼 수 없을 만큼 걸음걸음 소변보기 흉내를 내며 영역표시를 한다. 그렇게 신나게 영역표시를 하고 마무리한 산책 끝에는 아주 배가 홀쭉해져서 돌아오게 된다.


성견으로 3kg의 체중인 럭키와 달리, 셀티는 강아지일 때 이미 성견 럭키보다 커 보였다. 2005년 8월에 대학 신입생인 작은 아이의 결정에 의해 셀티가 추가로 입양되었다. 12주 나이의 새끼로 들어와 매일 성장한 끝에 체중이 9kg가 된 목양견 혈통의 셀티 '랄프'는 아주 영특해서 온 가족이 랄프의 명민함에 자주 감탄하곤 했다. 이번엔 온 가족이 마치 강아지의 영특한 재롱을 처음 보는 양 랄프에게도 푹 빠져들었다.


Shetland Sheep Dog인 랄프는 워낙 선한 눈빛에 수줍음이 많고 달리기를 아주 좋아했다. 산책을 다녀오면 발바닥을 샤워기로 비누칠을 해서 헹궈주지 않으면 욕실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가끔 번거로워서 물티슈로 닦아주고 부엌으로 가서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를 쫓아와서 '아직 발을 닦아주지 않았다'라고 낮은 짖음으로 항의하거나 긴 입으로 엄마 정강이를 살짝 밀어서 서있던 엄마의 다리를 학다리로 만들고선 다시 샤워실로 잽싸게 돌아가서 조용히 기다린다. 랄프의 원칙은 바깥 산책 후에는 흙이 묻은 발은 물과 비누로 깨끗이 닦는 것이다. 엄마의 변덕과 상관없이 반려견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습관 들이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습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러나 아파트 실내에서 키우는 반려견으로 선택한 털이 많은 중. 대형견들의 털 빠짐은 심각한 어려움이다. 모든 타월과 양말에 랄프 털이 붙었다. 매일 접착력이 강한 테이프로 세탁물에서 랄프 털 떼는 일이 필수적인 집안일이 되었다. 방광암으로 고생한 랄프를 하늘로 떠나보낸 후 럭키 혼자 남으니 다시 집에 강아지 털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서 청소기는 하루 한 번 돌리기로 줄어들었다.


세 번째 강아지 입양을 두고 생각이 많았다. 체중이 45킬로 내외의 아직 건강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30대 여자와 내리막 길에 선 나이로 비슷한 체력의 여자가 동물매개치료의 인기 주인공인 레트리버나 콜리를 하루 1시간 이상 산책시키는 일 또한 몹시 어려운 일이다.


설령 운동이나 털 빠짐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하더라도 반려견의 견종 선택에서 우리 가족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함께 살 수 있는 기간이다. 물론 타고난 체질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소형견은 수명이 15살까지 제법 긴 반면에 대형견은 질병에 더 약해서 병원 다니는 일이 잦고 평균수명이 훨씬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각종 동물매개치료의 주인공으로 화보를 장식하는 몸무게가 40킬로에 달하는 매력 넘치는 골든 레트리버나 래브라도 레트리버는 많은 생각을 반복한 끝에 제외하였다. 건강한 여성이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안아줄 수 있는 크기의 소형견 중 유순하고 사람과의 친화력이 좋으며 털 관리가 쉬운 반려견으로 말티스 '수리'를 입양한 이유이다.


이후 큰 딸은 강아지 훈련과 관련된 책을 구매하여 시간을 내어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개의 신체언어 읽기, 개와 행복하기 지내기..... 럭키와 랄프와 함께 지낸 20여 년 경력의 반려 가족임에도 개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20여 년 전과 달리 반려견 케어에 대한 기준 규범도 끊임없이 변화 중이다. 시드니의 강아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에는 사람들이 먹는 햄과 소시지, 치즈 등을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큐브 형태로 잘라서 칭찬할 때 상으로 주도록 배웠다.


요즘은 소금기가 많은 '사람 음식'은 개의 신장 건강에 해로우므로 소금을 제거한 강아지 전용 음식재료를 사용하도록 교육한다. 두부도 하루쯤 물을 갈아주며 담가서 염분을 제거 후 건조기에 넣어 강아지 간식을 만들어주도록 한다. 또한 개에게 견과류, 포도처럼 해로운 과일이나 음식들도 있어서 잘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개를 키우려면 독일처럼 철저하진 않더라도 이웃에 폐를 줄일 수 있도록 당연히 수고해야 하고, 반려견은 사람보다 훨씬 나약한 동물이라는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반려인은 반려견의 최고의 보호자'

(YAYABA: You are your animal's best advocate)(Pet Partners, 2022)

임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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