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비명을 내지를 시간도 없이 한국을 덮친 대형 재난이다. 달러 환율이 2,000원을 훌쩍 넘긴 한국에서는 이때의 금융위기를 '아이 엠 에프' (IMF)라고 불렀다. 신문지면에 수개월 동안 거의 매일 1면 머리기사로 한국에 대한 IMF 통화정책과 국제금융지원 입장이 상세하게 보도된 탓이다.
IMF 시대... 국제통화기금 IMF가 점령군처럼 가혹하게 한국 금융시장을 흔들어댄 시기로 한국민의 뇌리에 박힌 시대. 일반인의 많은 대화에서 한동안 주어로 등장한 IMF...
800원대에서 1500원을 넘나드는 미 달러 환율과 함께 호주 달러도 600원대에서 1200원대까지 치솟아 유학생들과 그들의 경제생활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의 부모들을 아연하게 했다. 한때 백화점의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를 아시아계 유학생들이 배낭에 담아 나가다 들켜서 곤욕을 치렀다는 뉴스 마처 퍼졌다. 아시아계 유학생들의 휴학이나 자퇴와 함께 귀국행렬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었다. 일부 유학생들은 비자 연장을 위해 학적은 남겨둔 채, 한인 청소업체에 취업하여 새벽까지 빌딩 카펫 청소를 맡거나, 현지의 아시아 식당의 부엌일 일자리로 향하고 있다는 교민신문의 보도들도 이어졌다.
자조적으로
"나는 F학점짜리야"
로 풀이되기도 했던 국제통화기금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는 그렇게 1997년 한국 금융위기의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2019년 11월에 중국에서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전염성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COVID 19'은 국내에서 '코로나'로 불렸다.
이번엔 코로나 시대가 되었다. 모든 뉴스가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났다.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진 코로나는 국경을 폐쇄했다. 이어서 학교가 자주 폐쇄되고 원격수업으로 대체되며, 초등학교 새내기들은 사회성 향상에 필요한 사회적 기술 습득 시기를 놓치면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대학의 새내기들도 마지막 공동사회에서 이익 사회인 사회생활 전에 배워야 할 성인으로서의 대인관계 학습 시기를 놓치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갑자기 극성스러워진 도깨비불처럼 들쑤시고 다니는 코로나 19로 인한 증세들로 어이없게 생명을 잃거나 위독한 중증환자가 된 사연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당황스럽고 슬프기 그지없어서 영락없는 좀비 영화 시대가 도래한 듯 공포스러웠다.
요양원에 모신 어르신들을 면회하지 못한 채 출입이 봉쇄된 요양원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가족들, 와중에 코로나에 전염되어 장례식도 없이 이승의 마지막 날조차 만나지 못한 부모님을 저승으로 떠나보낸 사람들 이야기가 매일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TV 앞에서 매일 비상상황을 보고받는 국민들의 가슴은 답답해졌다.
뉴욕의 도로에 시체를 실은 트럭들의 장사 행렬 뉴스나 유럽의 외출금지 내지는 이동제한 소식들, 영화처럼 프랑스와 이탈리아 길거리에 경찰과 군인들이 배치되어 일일이 이동 목적을 설명하고 허가받는 모습의 뉴스들은 앞만 보고 달리던 21세기 지구촌의 눈부신 발전이 멎는 듯한 충격이었다.
어려울 때 기대고 싶은 문구인
'그 또한 지나가리라.'
는 이번 코로나 고난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사뭇 빠져나갈 기미가 안 보여서 느리게 흐르는 듯 보이던 코로나 치하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엷어지며 다시 한강변 야경 불빛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슬프게 느끼거나 아름답게 느끼거나 개인 사정들은 아랑곳없이 여전히 시간은 흘러가고...
세계적인 마스크 대란 속에서 갑자기 한국의 위상이 재조명되었다. 부지런하고 끈기 있고 영리하고 손재주가 뛰어나고 애국심으로 잘 뭉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품게 된 점은 세계적인 전염병 재난 와중에 얻은 귀한 선물일 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귀해진 마스크 세트를 지자체에서 무료 배급받는 경험을 한 한국의 보통사람들에게도 정부의 위로금이 전달되고, 6.25 참전국가들의 참전군인 가족들에게 한국산 마스크가 전달되는 뿌듯한 뉴스들과 코로나 백신 접종 관련 뉴스가 끝없이 이어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에 대한 두려움, 국민과 국가의 재난 대처에 대한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었다.
그렇게 2020년과 2021년이 코로나에 잠겨서 지나가고 2022년 여름이 되었다. 가장 끔찍한 재앙인 전쟁으로 멍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뉴스는 코로나로 지친 지구촌을 강타하며 경제적으로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중이다.
2022년은 여름 내내 그동안의 코로나는 강도만 약해졌을 뿐 여전히 냉탕 온탕 전략 중인데 지구촌의 가뭄과 폭우 등 기상재해, 그리고 대형산불 피해, 전쟁으로 지구의 악화된 온난화 소식이 뒤숭숭하게 전달되고 있다.
그 와중에 지리적 위치가 환상적인 대한민국의 땅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자연재해를 잘 견디어내는 편인데, 이번 여름의 물난리가 서울 한복판에서 사망자를 내며 반지하 주거지에 대한 정책 논쟁이 시작되었다.
2022년 8월은 세계적 추세인 '코로나와 함께 생활하기'를 선택한 정부지침으로 일반인의 일상적 외출이 자유롭게 되었다. 그동안 이동 제한이나 개점시간제한으로 피해를 본 업종들과 당사자들에게는 2년이 넘도록 예상치 못한 큰 충격과 경제적 피해를 남기고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흐르는 강물처럼 서울은 24시간 가동되는 부지런한 도시로 돌아왔다.
코로나로 인해서 연구수업이나 현장연구자료를 구하기 어려워진 연구자들은 연구논문을 미루어야 했고, 그동안 자료 준비를 마친 연구자들조차도 부분 폐쇄된 건물 입구에서 알코올로 손 소독을 하고, 체온 감지기를 통과하고 인적사항 기록을 한 후에야 지도교수의 연구실로 향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끊임없이 전면 통제 실행과 해제가 반복되어 극히 제한된 날의 제한된 시간에만. 자연스레 학위논문 완성 과정이 삭막하게 미뤄지는 풍경들이 이어지고...
음식점이 아닌 건물 내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학교 건물 내의 간이식당들은 폐점을 하여, 일일이 식당을 찾아 캠퍼스 밖까지 나가야 하는 등 아까운 시간 낭비로 인한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나중엔 물만 마시며 점심을 자주 걸렀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대한민국 세대로 평온하게 이어지던 일상은 코로나 19 호흡기 전염병으로 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