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브랜드 네임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책을 출간하기는 쉽지 않다. 전액 자비 부담, 출판사 부담의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어지는 부가계약 조항이 다르다. 또한 책 속에 블로그, 웹페이지 자료나 사진을 공식적으로 소유주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이용하는 일도 지적재산권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내담자들이 등장하는 연구수업 사진의 경우 초상권 문제도 주의해야 한다.
자료가 빈약한 국내에서 처음으로<읽기 도우미견 프로그램>관련 대학교재를 내면서 교정과정과 관련 사진에 대한 해외 기관 단체들의 지원을 얻는 시간이 예상보다 좀 길어졌다. 출판사는 자료제공 협력업체의 웹주소를 보내왔다.
우리 팀은 책 내용에 걸맞은 해당기관의 프로그램 실행 사진이 낯선 학문 안내에 필수적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어쨌건 머리에 무겁게 얹혀있던 원고의 마무리를 우여곡절 끝에 하게 되나 보다. 이제 사진만 점검하면 된다.
혹시 초고에서 인터넷 창을 통해 발견한 사진들을 배치하고 이후 허가받는 과정을 빠뜨리진 않았는지, 허가를 받지 못한 사진을 정확하게 삭제했는지에 대한 재검토가 남아있다.
사진 관리를 저자들이 직접 했으니까 발생 가능한 트러블을 미리 검토하는 일 또한 저자의 몫이다. 저자와 출판사 편집부와의 교정 논의 과정에서 참고사진의 출처가 실수로 뒤바뀐 경우도 생긴다. 따라서 저자는 출판사에서 받은 교정본을 받을 때마다 보낸 원고대로 제대로 교정된 건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의욕을 살리고 죽이고
편안한 분위기로 잘 조성된 국내 도서관의 서가 사진을해외 도서관 사진과 함께 수록했다. 교재출간 의도를 전해 들은 도서관들은 내부회의를 거쳐 요청받은 사진들을 파일로 보내왔다. 일면식도 없는 무명 연구자의 요청에 흔쾌히 도움을 준 기관들의 호의에 가슴이 뛰었다. 사진들은 홈페이지 복사 사진보다 훨씬 깔끔하고 다양했다.
반면 서울 소재의 한 도서관 관계자는 여러 차례의 전화와 그쪽에서 알려준 이메일로 보낸 상세문의, 자료 제공 도서관들 정보까지 요구 후 결국 '게재 불가'로 통보했다. 묵묵부답인 곳도 있었다. 공식적인 관공서 공문을 통한 요청이 아니니 스팸메일로 간주되거나 너무 급박한 일정으로 인한 소통 부족이 원인일 것으로 이해한다. 다행히 해외주요 기관들과 국내 기관들의 지원이풍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노력 끝에 준비한 교재출간의 사진수록 절차에서 일부 도서관들의 서가 사진 사용 허가 과정의 신중함과 게재불가 통보는 국내자료부족과 비경제적인 지난한 연구에 지친 연구자들의 연구의욕을 죽이는데 한 몫했다.
반면 세계 3대 <인간과 동물 유대 연구> 기관장들의 전혀 예상치옷했던 <적극 지원>과 격려의 직접 답신은 고래도 춤추게 할 만큼 강력한 비타민제였다. 새벽 3시 즈음에 지구 반대켠으로부터 도착한 첫 응답을 핸드폰으로 확인 후 넘치게 생성된 엔도르핀에 밀려서 동이 트는 시간까지 머리가 맑게 깨어있었다.차라리 일어나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반복해서 읽으며 기쁨을 누렸다. 남아공과 UAE의 관련기관은 유료계약을 맺고 사용할 수 있는 사진 관리업체 웹주소를 보내주었다. 물론 몇 차례의 이메일 문의에 무대응 기관들도 있다. 각 기관들의 신중함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옆지기의 무한 지원을 받고,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 덕을 보며, 심성이 고운 딸의 암수술 의료사고 후 회복기간이 9년째이다. 그중 두 여자의 비경제적인 학문투자 시간이 6년째로 길어지는 동안 자신감도 조금씩 낮아지는 중이다.
한편으론 혼이 쏙 빠지게 고단했던 학문연구 덕분에 엉겁결에 일으켜 세워진 큰딸의 건강이 긍정적으로 회복되는 중이다. 연구일정에 맞춰서 컴퓨터 자료에 시선을 모으는 동안 수술 후 악화되어 가던 병증의 방향전환이 감지되면서 모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우울도 개선되는 중이다.
300여 페이지에 걸친 반복 교정작업 마무리 중 작은딸로부터 월말 어린이집 휴원 사흘동안 아이 돌봄이 가능한 지 문의전화가 왔다.<하루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처음으로 '농농(No, No.)' 대답을 건네고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흘 중 하루는 친정에서 또 하루는 시댁에서 그리고 남은 하루는 어찌할지 차마 묻지 못했다. 물론 돌봉 시간은 아침 8시 30분부터 돌봄 전문가가 오는 3시 30분까지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급하게 월차를 내어야 했을 터이다. 마지막 회의 교정파일을 출판사로 넘긴 날 오래 긴장했던 마음이 갑자기 허전함으로 바뀌며 미뤄둔 몸살이 두통과 함께 시작되었다.
*행복하고 우울한 육아
300페이지 분량의 원고 교정을 기한에 맞춰 밤샘작업 끝에 마무리 한 날 오후 <아기가 보고 싶은 엄마의 주말 방문을 환영한다>는 작은 딸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 저울이 팽팽한 끝에 토요일 밤늦게서야 '가벼운 몸살기가 있으니 이미 약속된 다음 주 휴원 돌봄 일에 방문하겠다'라고 답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전화가 와 있다. 전화를 거니 수화기 너머로 손주의 낭랑한 음성이 섞여 들린다.
"엄마, 아기 보고 싶으면 오셔도 되는데..."
애써 맑은 톤으로 얘기하는 작은 딸의 연이틀에 걸친 방문 제안은 드문 일이다. 내게는 '엄마의 작은 딸은 지금 엄마와의 눈 맞춤이 필요하다.'로 해석된다.
"사실 엄마도 우리 훈이가 많이 보고 싶어. 달려가야겠다."
생강차를 진하게 마시고 누워있다가 전화 한 통에 대학 때 외출 준비하듯 부리나케 씻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서 점심 무렵에 작은 딸네에 도착했다. 다양한 배달음식으로 점심 해결 후 식탁 뒤처리, '엄마랑~^^'을 외치는 귀여운 다람쥐 같은 아이 배설 뒤처리, 크고 작은 대거리를 하며 고단함에 지친 아이엄마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이아빠는 들어오자마자 손을 씻고 대강 점심을 채운 뒤, 냉장고 안의 아이 먹는 물 확인 후 냄비에 보리차를 끓였다.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고소한 보리차향이 온 집안에 퍼지는 동안, 아이아빠는 안방으로 가서 빨래를 개켜서 서랍에 옮겨 담는다. 내가 아이와 노는 동안 분담하여 맡은 집안일을 하느라 쉼 없는 부부의 일요일을 보며 친정엄마인 내 주거지를 불끈 들어 옮겨오고 싶었다.
남편 덕분에 해외거주 동안 나의 전공이 뭉개지던 전업주부로의 변신이 가능했고, 귀국 후에는 잠은 늘 부족했지만 일하는 시간 조절이 가능하던 겸업주부로 지낸 나는 운이 좋은 세대일까?
한가할 나이에조차 뒤늦은 호들갑으로 딸에게 도움을 못주는 친정엄마임이 문득 미안해졌다. 빨래를 개키는 사위의 등을 가만히 도닥여주었다. 사돈댁도 국내외에서 직장맘으로 아들을 어렵게 키우셨을게다. 둘째 출산은 엄두도 못내셨을테고.
두어 시간 머물며 하이얀 낯빛의 딸과 짬짬이 눈 맞춤을 하며, 준비해 간 새콤달콤한 딸기를 나눠먹었다. 그리고 돌봄 전문가가 3시부터 근무라 해서 조금 일찍 나왔다.
2대째 장손 집안에서 엄마의 버둥거림을 보고 자란 작은 딸은 결혼 이후
'우리가 얘가 있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였고
3대째 독자인 사위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우리가 애가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 했다.
결혼 8년 만에 작은 딸이 마음을 바꿔 얻은 아기는 고맙게도 건강하고 유순하게 잘 자랐다. 임신을 선택하여 엄마가 된 딸은 큰 폭으로 줄어드는 연봉을 감수하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하였다. 다행히 아기 돌봄 전문가도 아이양육에 도움을 크게 주었다. 두 분 모두 정년을 몇 년 앞둔 상태의 시댁에서는 주 1일 아기 돌봄과 함께 주말 하루는 자주 아이를 맡아주시며 아이 부모에게 자유시간을 제공하고자 애쓰셨다.
전업주부라도 집안일이 끊임없는 터에 직장과 가정 그리고 아기양육을 조금의 빈틈도 없이 해내려는 직장맘은 일단 체력이 달린다. 퇴근 후 아기 돌봄으로 이어지고 아기수면 이후에는 집안 여기저기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아이아빠보다는 더 많이 눈에 잡힐 테고...
계절별 서랍정리, 냉장고 정리에더해 아이 성장에 따른 필요한 의식주 준비물들도 자주 정보를 얻고 검색하고 주문을 넣고 품질 비교도 해야 할 테고, 무럭무럭 크는 아이에게 바깥세상도 자주 보여주어야 하고, 가족관계 등 사회적 관계 유지에도 마음을 써야 할 테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분주한 토끼보다 더 바빠 보이는 부부의 쉼 없는 물밑 발질 덕분에 평온한 환경에서 아이는 행복하고 편안하게 자라는 중이다.
아기를 기르는 직장맘 최고의 조력자는 돌봄 전문가 플러스 친정가족의 협업 이라는데 작은 딸에게 나는 비상식량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내 어머니는 평생 종종 달려 다니시며 잠이 부족하여 늘 충혈된 눈빛으로 기억된다. 제사도 잦은 집의 큰며느리와 직장맘의 고단함을 겪은 뒤 정년퇴직을 하셨지만 여름과 겨울에 방학이 있는 교사여서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으셨을까? 옥상에 텃밭도 가꾸시고 주말이면 특식도 잘 만들어주시고, 자녀들의 스웨터도 짜서 입혀주셨으니. 우리 집엔 당시의 도우미 제도인 입주가정부가 있었고, 어머니의 시어머님인 우리 할머니께서 함께 지내시며 도움을 주셨다.
그렇다 해도 직장맘의 큰딸인 나는 자주 섭섭했다. 비 오는 날이면 고소한 부침개 냄새를 솔솔 피우는 엄마가 집에 계시는 친구네가 부러웠다. 중학교 때의 전학 수속도 먼 친지와 함께 했고, 명문고 입학합격 축하를 받으며 중학교 졸업식은 혼자 마치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텅 빈 집으로 속이 메슥거리며 돌아왔다. 엄마네 학교가 같은 날 졸업식을 해서 여고 졸업식에는 작은 이모가 참석하셨다. 아버지의 육아 분담이나 자녀행사 참여는 거의 생각지 못했던 시절이다.
정신연령이 어렸던 여고시절엔 부모의 도움은커녕 시험기간에도 짬짬이 학교 매점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어려움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님께 감사한 줄 모르고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공립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도 박사과정을 선택한 친구가 부럽지 않았다.
교육에 투자한 부모님께 보람을 안겨드리기는 커녕 자신의 안온한 미래만 꿈꾸었다. 그동안 공부를 해보았으니까 훗날엔 귀가하는 자녀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엄마를 상상했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교문 앞으로 아이를 마중 나갈 것이고, 눈 내리는 겨울날엔 따뜻한 보온 도시락 옆에 예쁜 간식통을 담아 학교 수위실에 맡기던 친구네 엄마처럼 해야지 상상했었다. 그때와는 시대조류가 많이 바뀌어서 이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평가는 불가하다.
육아는 어머니 세대에도 내 시대에도 딸의 시대에도 여성들에게는 행복하고도 우울한 과제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받아주셔요
오늘 옆지기가 밖에서 들어오며 초콜릿이 코팅된 빼빼로 3통을 건넸다. 세 사람이 한 통씩 먹자며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고 했다. 나는 밸런타인데이에 대한 생각을 따로 마음에 놓아본 적이 한 번도 없나 보다. 늘 딸들이나 옆지기가 초콜릿을 준비했었다. 사실 11자를 닮은 과자 빼빼로를 사 온 줄로 이해하고 오늘이 2월 11일인가 했다. 2월 14일이란다. 정작 호주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대한 뉴스들이 그다지 없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과업체와 꽃집에서 수일 전부터 "Balentine Day가 오는 중"이라고 알리며 젊은 발걸음을 세운다. 즐겁게 눈 맞춤을 하며 선물을 건넬 핑계이니 수입 명절이건 토종 명절이건 빠듯한 일상 중간중간 윤활유 노릇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빼빼로를 꺼내는 중에 갑자기 가족카톡 창에
'오늘 오후 4시~4시 반쯤 장모님 연락처로 퀵배달이 있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받아주셔요~^^'
메시지가 떴다.
"엥? 뭔? 예전에 시댁과 친정에 남편이 혼자 예고 없이 갈 때 내가 전화로 고했던 문장이랑 넘 똑같아서 깜짝 놀랐네~"
"밸런타인데이라 쑥스럽지만 작게 하나 보내드렸습니다."
사위의 메시지에 남편이 답을 보냈다.
"고맙네. 나도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서 우리 집 두 여자분들에게 초콜릿 바른 빼빼로를 선물했다네."
그리고 모르는 전화로부터 배달 메시지가 왔다. 이어서 연한 분홍의 장미꽃다발이 퀵서비스로 도착했다. 꽃은 <받는 순간의 기쁨>으로 그 값을 충분히 한다던 꽃집 경영 선배의 설명에 공감하는 순간이었다. 현관에서 꽃다발을 받아 들 때 번지는 그윽한 행복함이라니...
'물 빛 한지에 감아진 꽃다발을 그대로 화병에 꽂을까?'
'한지를 벗기고 장미의 튼튼한 초록 줄기가 투명하게 꽂을까? '
'꽂아놓고 하루만 볼까?'
'시들기 전에 장미잎은 떼어 말려서 책갈피를 만들까?'
'이틀을 볼까?
'아니다. 이번엔 끝까지 생화를 보는 즐거움을 가져볼까?'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은 날 나는 그윽한 행복을 음미하며 식탁 위에 꽃을 놓고 화병에 얼음조각들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사위가 나누어준 아기용 보리차를 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