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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석의 빅 오지라퍼

여기 앉으세요

by 윤혜경

서울 반포에서 미팅이 끝나고 퇴근 시간의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았다. 염색 후 시간이 지나고 원래의 흰머리 뿌리가 자라나 앞에서 보아도 희끗거리니, 오늘은 나이에 맞게 노약자석에 눈치 보지 않고 앉을 수 있게 된 외모이다. 밝은 밤색으로 염색하고 나서면 노약자석 '더어르신'들의 힐긋거림은


' 나이가 아직 노약자석 해당자는 아닌 것 같은데 자리를 차지하고...'


로 해석된다.


노약자석에 앉을 나이지만 임산부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보호자 그리고 머리 위 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는 초등학생이 흔들거리며 서있으면 건강한 어른인 나는 당연히 자리를 양보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보호자' 이므로.


복잡한 지하철 내에서 건너편의 노약자석과 내쪽 노약자 좌석 모두 2개씩 연이어 비어있는데도 퇴근길의 젊은 청년들은 비어있는 좌석을 외면하고 서 있다.


3개짜리 좌석에 혼자만 앉아 있으니 고단한 퇴근길에 비어있는 노약자석 앞에 서 있는 청년들을 보기가 영 편치 않았다. 팔을 끌어다 앉히고 싶다. 젊은이도 주저앉고 싶게 고단하고 아플 수 있다. 더구나 빈자리를 놓아둔 채 부대끼고 서있어야 하다니...


노인들이 거의 없는 늦은 시간 귀가 길에 나는 고단한 젊은 이들의 팔을 잡아 다녀 노약자석에 앉힌다. 앉아있다가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처럼 양보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던 차에 원피스를 입은 임산부가 핸드폰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이어폰 줄을 늘어뜨린 채 앞에 섰다. 세 개의 역을 지나는 동안 마음속에 여러 생각이 드나들었다.


'노자뿐만 아니라 약자도 앉는 곳인데 임산부가 앉지 못하고...'


지난번 병원 가는 길에 내 옆 일반좌석이 비면서 모처럼 막 앉으려던 환자인 큰 아이를 별안간 일으켜 세운 두 손이 있었다. 건강이 다소 회복되면서부터 큰 딸은 한쪽 어깨가 불편해진 내게 고집스레 자리를 양보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리 양보를 몰라."


딸에게 들으라고 크게 내뱉으며 잽싸게 몸으로 밀고 들어와 기어이 내 옆자리를 차지하던 두 손의 주인인 내 또래의 여성 어르신(?)의 무례가 떠올랐다.


노인들이 좌석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른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에게 지적질을 하거나 줄 서면서 다툼을 벌이는 것을 드물지 않게 목격했던 터라, 덩달아 젊은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마음속에선 벌써 손을 이끌어 좌석에 앉혔지만 상대방의 생각이 어떨지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중 다음 역에서 흰머리가 희끗거린 여성이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여전히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내 앞에 비만과 달리 동그란 배가 육안으로 구별되게 크게 나온 짧은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성을 계속 힐끔거리며 확실히 임산부 모습인지를 몇 번이나 확인 후,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을 걸었다.


"여기 앉으세요..."


"저, 임산부 아닌데요!"


"아니 그래도 피곤하면 앉으세..."


싸한 표정의 응답에 일순 당황했다. 나의 마음속 시뮬레이션에 없던 그녀의 응답으로 애써 꺼낸 나의 용기가 부러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오늘 귀갓길은 머리 희끗한 채 공공장소에서 개망이다. ㅠㅠ


성인인 아픈 딸의 보호자 생활이 9년째인 나는 달리기가 쉽지 않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내가 도와야 할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남에 대한 관심 죽이기, 제발!!!


전생에 노비였는지 남의 불편부터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는 오늘 빅 오지라퍼가 되었다.


집에 도착 후 상황을 복기했다.


'나는 그녀를 '임산부'라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주 겪는 일인가?'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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