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월에 만난 두 번째 산타클로스

메이크업 쿠션 하나 주세요.

by 윤혜경

나의 지방일정을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운전은 남편이 맡기로 했다. 밤을 꼬박 새워 컴퓨터 작업을 하는 내게 도움이 되고자 남편은 현관입구에 놓인 내 재킷 커버들과 구두들 그리고 9년 만의 긴 여행에 필요한 간식과 음료들, 포크와 컵, 작은 쟁반들을 챙겨서 승용차 트렁크로 여러 차례에 걸쳐 옮겼다.


나는 그이의 짐 옮김을 의지하고 내 강의 자료들을 빠짐없이 챙겨서 뒷좌석에 놓고 운전석 옆자리에서 두 눈을 붙였다.


화장품 가방과 여행가방을 서울집의 안방 입구에 놓아둔 채 참고교재들과 노트북 2개, 아이패드 1개만 큰 배낭에 챙겨 왔음을 목적지 부근에 도착 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궁여지책으로 화장품 판매처를 떠올린 나는 한적해진 도로에서 관련매장을 발견할 수 없어 참 막막했다.


작은 지방도시의 번화가를 모르는 나는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서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을까?


1999년에 미국의 Intermountain Therapy Animals(ITA)의 R.E.A.D.(reading education assistance dogs)에서 개발하여 미국과 호주 전역뿐 아니라 영국, E.U., UAE, 홍콩, 남아프리카공회국에 이르기까지 30여 개국에서 아동과 학부모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성황 중으로 알려진 인기프로그램인 <초등학교 아동들의 반려견에게 소리 내어 책 읽기를 통한 문해교육> 그리고 <생명윤리>와 <동물복지법>을 연구해 온 나는 핸드폰 길 찾기에는 '어쩌다 성공'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이 없다. 물론 핸드폰으로 '해외 논문 읽기'나 '문서 찾기'엔 익숙하다.


그렇다고 여전히 코로나 19가 남아있는 시기에 초면 교직원의 화장품을 빌리자는 말은 입을 뗄 수도 없다. 내 것을 자발적으로 나누기는 어렵지 않지만 남의 것을 빌리자는 말은 내게는 거의 불가한 임무이다. 긴장하여 오른손에 땀이 배어 들게 핸드폰을 꼭 쥔 채 경우의 수 상상만 세우다 지운다.


자신의 핸드폰 검색능력을 믿지 못하니 오직 길거리를 빠르게 훑어보는 두 눈에 의지할 뿐이었다. 나는 원고작업에 컴퓨터 워드를 사용할 뿐인 아날로그 세대이므로.


창백한 낯빛인 채 프로그램 담당자들에게 어떻게 입을 뗄까를 상상하느라 마음속에서는 가정법이 난무했다. 준비 과정에서 이메일과 전화는 수차례 오고 갔지만 하필 첫 대면에 자동차로 달려 6시간 거리인 지방에서 내가 만든 이 상황이 참... 방송촬영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들은 대책 없는 연구원의 행색에 얼마나 황당할까?


시드니 시절 한국에서 이주하여 아직 언어가 익혀지지 않은 채 초등학교의 유치원에 입학한 어린 두 아이 앞에서 "폐 끼치지 말고 미리미리~"를 강조해 온 엄마는 6살이 아니고 60살을 넘기고도 정작 역대급 민폐 중이다.


두 번째 해외생활 중 시작한 시드니 대학원 시절엔 중학교 옆에 집을 구해서 중학교부터는 아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게 한 대신 내 대학원은 60~80km 속도의 외곽도로를 1시간여 동안 열심히 달려가야 하는 곳에 위치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기 전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용 햄과 토마토, 오이, 당근등을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6학년과 중2의 아이는 식빵이 젖지 않게 야채들을 랩으로 싸고, 사과 1알과 주스 팩 2개를 런치백에 넣어가도록 했었다. 첫해 스쿨버스로 가는 먼 거리의 초등학교를 다니는 초6의 작은딸은 책을 보다가 걸핏하면 스쿨버스를 놓쳐서 내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런 연유로 엄마인 나는 "폐 끼치지 말고 미리미리'를 자주 노래했었다.


내가 학교를 향해 운전대를 잡기 전에 새벽에 돌려둔 빨래를 1층 뒷마당 한쪽의 빨래대에 펼쳐 널어주는 일도 아이들 몫이었다. 나는 밤에 스트링 앙상블 연습 때만 걸어서 가지고 가기에는 무거운 바이올린 케이스 두 개를 학교까지 차로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물론 바이올린과 피아노 레슨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소련인 음대교수가 사는, 자동차로 40여분 거리의 해변가 집까지 주 2회 데리고 다녔다. 레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자동차 운전석에서 꿀잠을 자며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곤 했다.


그때는 아빠를 따라 이주하느라 전학이 잦은 환경의 아이들의 끈기를 길러주는 데는 독서와 악기연습이 공부보다 더 도움 된다고 생각했었다. 두 아이는 지금 엄마의 끊임없는 민폐에 무슨 생각이 들까?


아, 갑자기 스쳐가는 시야에 <L 마트> 빌딩이 불쑥 솟아났다. 지방의 한적한 도시답게 파아란 하늘이 펼쳐지는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이 이어지다가 갑작스레 오른쪽에 높이 솟은 빌딩에 <L Mart>가 새겨져 보임은 순간 간절한 바람에 나타난 환영일지도. 운전 중인 남편은 못 보았다니 아마도 내가 잘 못 본 건가? 빨간 글씨를 확인하며 광고판이 아니길 소망했다. 내 우울한 두 눈에 갑자기 들어온 L 마트 표시가 준 기쁨을 어떻게 말로 형언할 수 있겠는가?


큰길에서 보였던 그 높은 빌딩은 막상 큰길에 면해있지 않아 짐작으로 찾느라 유턴을 두어 차례 반복하며 내 두눈을 의심하며 건물 입구를 찾는데 좀 헤매었다. 차 속에 앉은 채로는 가까워진 높은 빌딩의 글씨는 볼 수가 없다. 심지어 핸드폰 지도를 이용할 지혜도 나오지 않았다. 어쩜 안내표지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보였던 높은 건물은 큰 길가가 아니라 좀 더 뒤쪽에 있었다. L 마트 건물 쪽을 향해 다가서는 우리 차가 멈추기도 전에 마음이 급했던 나는 문을 열고 내리는 위험을 자초했다. 우선 확실히 내가 본 건물이 L 마트가 맞는지 아님 단순 광고글씨인지 확인해야 했으므로. 위험상황에 놀란 남편을 뒤로하고 L 마트를 향해 핸드폰만 들고 달렸다.


1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백화점처럼 바로 앞에 화장품 가게가 입점해 있었다. 서울 집 앞의 마트는 2층에 화장품코너가 있는데 1층 입구에 화장품점이라니...**


새벽에 출발하여 장시간 자동차 여행으로 초라해진 몰골로 입구의 첫 화장품 코너에 들어가 상황을 설명하고 '멀티쿠션' 제품 추천을 부탁했다. 사실 딸아이 병원 동행과 대학원을 다니면서부터 쇼핑은 남편의 몫이 되어왔다. 오랫동안 공부가 벼슬인양 쇼핑도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 내게 낯이 설은 화장품 브랜드였지만, 시간 절약을 위해 무턱대고 첫 번째 화장품 가게로 들어갔다.


"저기, 영상촬영용 메이크업쿠션 하나 추천해 주세요."


필요한 상황을 물은 그녀는 화장품을 가지러 가다가 멈춰 서서 누런 내 피부와 충혈된 두 눈을 돌아보았다.


'제가 화장을 도와드릴까요?"

"네에?"

"기초화장품 구입이 필요한 게 아니시면 당장 필요한 메이크업 쿠션만 구입하고, 다른 제품들은 매장의 서비스용을 사용하실 수 있어요."


기초 화장품은 여벌 1세트까지 있는 터라 또 새로 1 세트를 사면 정말 유통 기한이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딸의 병원 출입이 잦아지면서 메이크업 화장을 클렌징 오일이나 크림으로 닦고 또 비누폼으로 닦아내는 일이 번거로웠다. 환자 맞춤형 병실 보호자에게 더욱이 "COVID 19"이 덮친 3년여는 마스크 덕분에 화장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마스크 접촉 부작용으로 얼굴 피부 알레르기가 생겨서 가렵고 쓰라리고 두꺼워지기를 반복하며 피부과 치료를 받아야 해결되곤 한다.


그런 연유로 새 마스크를 여럿 꺼내서 깨끗이 세탁 후 말려두고 사용한다. 얼굴엔 기초 화장품은 고사하고 알로에 수딩젤만 가끔 바른다. 대신 물세안을 자주 해서 피부를 청결하게 하니 불편증상들이 근래에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여 옆지기가 오래전 해외 출장 중에 구입한 메이크업 화장품류들은 내가 완전히 잊고 있는 상태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유통기한이 진작에 지나갔음을 최근에야 인지했다.


화장품 코너 그녀의 스마트한 제안에 나도 모르게 유리창 너머 하늘을 쳐다보았다. 불량 신자인 나는 내 힘을 벗어나버린 상황에서 이렇게 아쉬울 때만 어린아이처럼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동안 폐 끼치지 않고 손을 내밀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내게 '감당할 수 있는 고단함을 주실 일이지' 하고 하늘을 향한 눈흘김이 쌓였다. 적어도 오늘은 '감사'이다.


그녀는 열흘이 넘게 이어진 과로에 푸석거리는 내 얼굴을 도닥거려서 촉촉하게 만들었다.


"되게 피곤하셨나 봐요. "

"네, 잠을 좀 못 잤어요."

"조금 더 얼굴피부를 촉촉하게 해야겠어요. 잠깐 기다리세요."

" 고맙습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손길에 얼굴을 맡겼다. 조금 전의 불안이 가라앉고 촬영 시간에 늦고 있음에도 강물 같은 평화가 스미는 중이다. 나를 위해 촬영실은 오늘 오전과 오후 시간은 몽땅 비어두겠다 했으므로 그냥 마음을 편안히 다스려서 피부가 안정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기로. 그리고 그녀는 뭔가를 더 바르고 나서 잠시 기다린 뒤에 화면발에 도움 된다는 광택 나는 메이크업 쿠션을 선택해 주었다. 눈 주변의 아이라인까지 발라준 그녀.


'아차, 눈이 커서 아이라인은 안 해도 된다고... 눈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이라인이나 마스카라를 못 바른다는 말을 먼저 할걸... 아니다. 며칠 손끝으로 살살 긁어주며 눈 가려움증을 견디면 될 테니 이왕이면 예쁘게 만들어준 그녀에게 고개 숙여 감사할 일이다.


*내게 기적을 선물한 산타 매장에서 구입한 화장품



마침 1회용 알레르기 안약 한 개가 호주머니에 상비로 들어있다. 화장이 끝난 뒤 거울을 보니 조금 전까지 우중충했던 얼굴이 밝고 곱게 변신해 있다. 딸 결혼식 이후로 다른 사람의 손길에 얼굴 화장을 맡긴 일은 처음이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비용을 물었다.


"손님이 없어 가능했던 서비스인데요.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7월의 두 번째 산타클로스


그녀의 배려에 어떻게 인사할까 생각하다가 이번 일정은 자료수정과 뒤처리 등 너무 빠듯해서 9월 일정 때 들르기로 했다. 그녀는 겨우 <메이크업 쿠션> 하나 구입한 외지인의 주차 상황을 돕기 위해 출입구 밖까지 따라 나와 무료주차를 확인해 주었다. 나는 이 화장품 브랜드 이미지를 <산타>로 품게 되었다.


처음 방문한 양산에서 만난 양산 시민은 내 화장품과 옷 가방을 가지고 서울에서 내려온 큰 아이에 이어서 7월의 두 번째 산타클로스기 되었다. 나도 12월이 오기 전에 누군가에게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7월에 만난 첫 산타클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