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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의 <노후준비>

영정사진과 삼베옷

by 윤혜경

*출처: S호텔 결혼식 식사 메뉴 중에서


평온한 시간


결혼

으로 시작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생활에 적응하는 삶이 30년쯤 되면 60대가 된다. 부모가 자식양육과 안전에 인생을 바치듯 살아왔듯이, 새 가정을 꾸린 자녀도 자신이 태어난 둥지의 부모 입장을 헤아릴 생각도 못하고 오직 어린 자식들의 미래를 위한 보호자로서 배우자와 함께 시행착오를 통한 길을 찾아내어 책임을 다하는 일로 벅차다.


돌아보면 잘 자고 맞이하는 다음날 아침의 햇살을 당연히 여기며 선물인 새 아침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실감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인생의 노후에 대해 멈춰 서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일과를 마무리하던 시절들이 지나니 어느덧 귀밑머리의 희끄무레한 색상이 눈에 띄는 나이가 되었다. 잘 자고 잘 읽고 잘 쓰고 잘 움직이며 직접 만들어 준비하는 식사까지 문득 참 평화롭다.


직장의 인간사 부대낌과 눈치보기도, 자녀 입시를 위한 양손의 선택 옵션에 대한 막대한 고민들도, 명절마다 행사마다 번지기 쉬운 양가 친지들과의 크고 작은 키재기도 점잖아진 나이 60대의 시간들은 건강문제와 노년의 경제력에 대한 지혜 갈구를 제하면, 대체로 일생일대의 평화로운 시기이다. 아, 부부가 함께 한다면 각자의 생활 리듬이 서로에게 양해가 되어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



영정사진 찍을 때


문득 양가 부모님들이 <영정사진>을 찍어 내게 맡기시던 때를 나는 이미 지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양가 부모님들은 연세가 60에 들어서자마자 자신들의 장례식용 사진을 찍어서 첫째인 내게 보여주셨다. 시부모님은 두 분의 그 사진을 내게 맡기셨다.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서 사용하라고.


양가 아버지는 양복을, 시어머니는 분홍 한복을 친정어머니는 밝은 빛의 치마 정장 차림으로 네 분 모두 고왔다. 커다란 사진 4장을 가족 사진첩 사이에 넣으면서 조금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정 사진을 준비하시는 60세 부모님 마음이 어떠셨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 없이 마음속으로 "60이 되면 이런 사진을 찍어야 되는구나." 했다. 사실 네 분 모두 너무 고우셔서 그냥 명함판 사진의 확대본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당시 30대의 엄마 입장에서 초등학생인 두 딸 양육에 어제 한 일, 오늘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내일 할 일 등을 일주일 단위로 머릿속에 담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고인을 위한 삼베옷


이후 관에 입고 들어갈 옷을 준비하는 게 유행이라는 뉴스가 나온 해에 <돌아가실 때 입으신다>고인용 삼베옷을 준비해서 장롱 가장 아래에 놓아두셨다고 시어머님이 일러주셨다. 두 분이 돌아가신 뒤 입으실 삼베옷은 질이 좀 좋은 것으로 맞추셨다는 시어머님 말씀을 들으며 더 이상 이를 소재로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살아생전에 죽음을 준비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결혼 4년 째부터 해외 생활을 시작하며 한국 고유명절날에도 한국의 양가 부모님께 전화인사 후 해외에서 출근하고 학교에 가는 일상을 살아왔다. 덕분에 제사상의 과일과 생선 위치를 시부모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조정하는 셋째 며느리와 달리 다소 멀건 첫째 며느리이다. 둘째 며느리는 셋 중 가운데답게 자유분방하고, 하고 싶은 말은 대체로 표현하는 낙천적인 편으로 보였다. 내게는 부러운 성격이다.


당신들의 장례에 쓰실 삼베옷을 미리 준비해 두셨다는 말씀에 본디 자식들이 준비하는 것인지, 아님 부모님들이 직접 준비를 해놓는 것인지 조차도 말을 더하거나 빼기가 참 서걱거리던 화제였다. 그리고 30여 년 후에 하늘로 떠나셨다.


장례일정은 돌아가신 당일 친지들께 알리고, 다음날 조문객을 받고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일찍 벽제로 향했으므로 워낙 정신이 없었다.


어머님 집에 들어와 10년여의 의식주를 함께 한 막내 시동생네가 장롱 아래에 30여 년 동안 간직된 삼베옷을 꺼냈을까? 해외로 도는 큰 형 상황과 달리 부모님과 크고 작은 소통을 하며 수발해 온 막내시동생에게 그런 종류의 의견을 내놓는 일조차도 조심스러웠다.


관에 안치하기 전 자녀들에게 공개한 시간에 한껏 작아진 어머님의 정갈한 차림을 뵌 날은 종일 <다리 4개- 다리 2개- 다리 3개>로 사람의 삶을 표현하던 초등학교 시절의 <수수께끼 놀이>가 떠오르며 허무하여 어머님이 준비하신 삼베옷 생각을 잊고 있었다.


세상에, 떠나신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즈음에야 생각이 났다. 내 나이 즈음에 영정사진과 삼베옷을 준비하셨던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탓이다.


*퇴고 중 너무 길어서 나누어 올립니다. 먼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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