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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둔다고

부모학교가 있었더라면

by 윤혜경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놔두지~ 금세 커. 나중에 다 알아서 잘하더라고. 엄만 어렸던 너희에게 너무 예의를 앞세우고 평균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거 후회해. “

”자기가 놀고 어지른 거는 스스로 정리하도록 해야죠. “


직장에 다니는 작은딸은 주말이면 2살 반 된 아기와 정리하기를 놀이처럼 즐겁게(?) 교육 중이다.


자기도 초등학교 때까지 책 읽기에 흠뻑 빠져 잠옷 정리를 '하다 안 하다' 해놓고. 참을성 적은 엄마인 내게서 잔소리 깨나 들었었다. 나는 왜 낯선 환경에 적응 중인 어린아이들에게 '잠옷 정돈' 따위로 잔소리를 계속했을까?


*사진설명: 가정교육이라는 사명만 아니라면, 아이가 폭력적이지만 않다면 스스로 터득하도록 놓아두고 지켜보고 싶다.



'겨우 2살 반인 아기에게 어질러진 장난감 정리를 시킨다고?'

맘 같아서는 아이엄마인 작은 딸이 안 볼 때 내가 잽싸게 정리해주고 싶다. 저렇게 어린 아기에게 장난감 정리교육이라니...


”어린이집에서도 놀이처럼 이렇게 해요. “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폐가 되지 않게 집에서도 유아에게 일관성 있는 교육이 필요하대요."


이미 내 맘을 죄다 읽은 작은 딸이 오랜만에 들른 내게 웃음 지으며 덧붙였다. 친정엄마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설 일'이 아니긴 하다. 그래도 매일 자라는 유아를 어쩌다 들러 바라보게 되는 무책임한 할머니 입장에서는 매번 성장해 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신통함 그 자체이다.


아이엄마는 매일 아침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10시쯤 출근을 할 게다. 도우미 이모가 오후 3시 45분에 아이를 픽업 해와서 아이엄마의 퇴근 시간까지 돌볼 테고. 밤 9시 즈음 퇴근 후에는 쉬지도 못하고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두 발처럼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으며 아이의 성장에 기여를 하고 아이를 재우느라 애쓸 것이다. 태평한 친정엄마는 육아도움은 전혀 없으면서 체력이 부치는 딸 앞에서 남의 다리 긁는 시늉이다.


그래도 내 딸은 내 손주를 좀 더 밝게, 좀 더 편안하게 지켜보아주기를. 작은 아이가 아기를 출산했을 때 나는 언어능력이 유난히 빨랐던 작은 아이의 성장과정을 적어둔 육아일기와 사진첩에서 5살 때까지의 사진을 꺼내어 육아일기집으로 다시 정리해서 아이양육에 참고하라고 건넸다. 지나고 보니 학위논문 준비 와중에 들인 황금 같은 시간과 정성 대비 측면에서 35년 전의 육아일기 간추리기는 쓸데없는 일이었다. 내 딸의 성장과정은 엄마인 내게만 매일 신기하고 소중했던 일임을 간과했다. 그때와 전혀 다른 환경과 시대인 요즘 어린아이의 성장과정은 또 달랐다.


엄마가 되어 직장과 가정생활에 이어 새롭게 추가된 육아를 동시에 꾸리기에 정신이 없는 작은 딸은 바쁜 일과 속에서 자신의 과거성장사를 적어둔 영양가 없는 육아일기를 펼쳐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매일 성장하는 아이용품을 요즘 세태인 중고와 로켓배송으로 검색하는 일도 시간소요가 적지 않다. 아이 장난감의 구청 대여와 도서관의 그림책 빌리기도 작은 딸 몫이다. 가끔 소장가치가 있는 새 그림책을 구입하는 일과 도우미와 일정조절도 물론 작은 딸 몫이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재료 검색과 인터넷 구입도 엄마인 작은 딸의 몫으로 밤에 아이가 잠들면 딸은 졸음 가득한 손가락으로 핸드폰 검색을 통해 필요물품들을 정리하고 구매하고 기부한다.


또, 주변의 선후배 경험자에게 경험담을 수시로 얻으며 자신만의 중심을 세운다. 인터넷에는 필요한 최신 육아 정보가 넘쳐난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아이 양육을 위한 전문 돌봄 이가 올인을 해서 유아와 소통하며 놀아주니 요즘 유아들의 언어 습득이 특히 빠르다. 엄마의 옛 육아일기 선물이 기대와 달리 스트레스를 딸에게 얹어주었을지도.




서툰 보호자 노릇


귀국 후 우연히 캐스팅되어 방송에 출연하며 초등학교를 다니던 작은 아이의 4학년 시절의 일이다. 물론 방송녹화 일정은 방학 때 집중되지만 학기 중 평일에도 녹음이나 녹화가 있었다. 하여 가끔 평일엔 오전수업이 끝나면 양재동이나 청담동 등 스튜디오로 가야 했다.


그런 중 학교에서 내 아이가 자신의 아이와 함께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다른 학부모의 뜻밖의 전언이 있었다. 참으로 독립적이던 작은 아이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충격이 컸다. 그때


"저는 제 아이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기다릴 겁니다."


했던 허세가 부끄럽다. 담임교사를 찾아가서


"제 아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면 할 수 없죠. 선생님이 잘 지켜봐 주세요."


했다.


이미 다른 피해 아이는 학교 가는 일을 두려워하며 벽에 머리를 부딪는 자해행위를 한다고 했다. 1학기때 부반장이었던 그 아이의 엄마는 학교에 아예 출근하듯 밀착 경호 중으로 담임교사가 곤란할 지경이 되었다. 정작 내 아이는 초보 엄마가 떠는 허세로 인해 보호자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한숨 돌린 담임 선생님께서 위로차 보내주신 '지도교사 가족 티켓'으로 용인 에버랜드의 해양소년단 1박 2일 캠프에 열외로 두 딸과 함께 참석하였다. 선생님 덕분에 국내에서의 신기한 첫 체험에 영락없는 시골쥐처럼 우리는 두리번거렸었다.


사실 엄마 입장에서 둘째 아이는 3세 이후부터는 신통하게 잘 자라서 워낙 믿는 바가 있었다. 공부도 친구도 어려움이 없는 듯 다른 문화권 진입 후에도 곧잘 적응했던 까닭에 그쯤이야 스스로 극복하여 강해지도록 기다려보자는 마음이었다.


돌아보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갑자기 제공된 낯선 환경에서 어린아이가 얼마나 노력하였을지, 결과보다는 원인을 찾고자 하는 엄마의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 헤아리지 못한 교사출신 젊은 엄마의 치기였다. 3대째 남 배려가 우선인 양가의 유전자가 갑자기 쌈닭으로 바뀔 리도 없는데. 성의를 부려서 싸준 색깔별 과일과 경단 떡 간식 사이에 넣어준 '메모지 도시락 편지' 정도가 내 방식의 <자식 격려방법>이었다.


그 후식들과 한여름의 시원한 물이 들어있는 보온병을 4학년 2학기 부반장이던 여자 아이 팀에게 양보하고 집에 와서는


"엄마, 간식 그만 싸주세요. 점심시간에 함께 놀아야 해서 먹을 시간이 없어요."


했다. 어린 딸의 이런 표현을 눈치 둔한 나는 '바쁜 엄마를 배려한 아이의 성숙함'으로 이해했었다. 늘 그랬듯이. 심지어 점심시간에 함께 노느라 후식 먹을 시간이 없다는 말에 "학교에서도 역시 내 딸은 잘 지내는구나." 했었다.


한글도 변변치 않은 2살 반부터 해외생활을 시작했던 이 아이는 귀국 직후 아이들의 추천을 받아 초등학교 2학년 부반장이 되었다. 해외에서도 2살 터울의 언니 덕분에 언니가 영어를 배우는 옆에서 책 읽기를 덤으로? 빠르게 익혔었다. 덕분에 호주의 학교유치원(school kinder) 때부터 수업시작 전과 수업이 끝나고 보호자의 픽업을 기다리는 시간이면 아이들에게 영어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역할을 했던 터이다. 2학년 아이가 국내초등학교 임원 엄마들의 학급일 자원봉사 일정에 엄마대신 자기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며 담임선생님이 내게 전화로 얘기했었다. 일에 바쁜 엄마대신 자신이 책상을 정리하고 교실청소를 하는 엄마들 틈에서 노력 봉사를 하겠다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도 4학년 시기에 힘센 아이의 위세에 눌려 눈치를 보는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은 어려운 일이었다.


귀국 후 나는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인 내 아이 둘에게 의사를 물은 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운동을 고르게 했다. <태권도>권하고 싶었지만 방문한 도장에서 발차기 대련 모습을 본 두 아이는 거친 동작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각자 운동하는 모습을 견학한 <검도>를 선택했다.


작은 아이는 양재동이나 청담동, 홍대입구 그리고 용산 등의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끝나고 밤 9시 전에 귀가한 날이면 가장 늦은 21:00시의 훈련시간에 참석하곤 했다. 한번 시작하면 빠지지 않음이 엄마의 원칙을 지키려는 아이의 노력이었을 게다.


통금이 있던 시대라 밤 11시에 촬영이 끝나면 모범택시를 불러 귀가했다. 엄마가 시간조절이 안되면 4계절 옷과 신발 등을 준비해서 아이 혼자 모범택시 편에 보내기도 했었다. 그때도 아이는 주연으로 가장 많은 양의 대본 암기를 금세 끝내고 준비해 간 책을 읽곤 했다. 세트장 변경 등 촬영 휴식 시간에 조용히 책을 읽는 아이는 혼자뿐이어서 책벌레라는 별명도 얻었다. 다른 출연진들은 매니저나 엄마들이 화장을 고치고 매무새를 가다듬는 동안에.


다시 해외발령이 난 아빠를 따라 이동하느라 2년여의 경험으로 검도는 검은 띠를 매고 끝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여아가 100번씩 목검 훈련을 하느라 어깨만 단단하게 넓어진 셈이 되었다. 두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어려움을 엄마와 나눔 없이 혼자 감당했다. 그게 큰 아이에게 병으로 쌓였을까? 작은 아이의 마음에도 출산 후에 우울이 어른거려서 부족했던 엄마로서 많이 긴장했었다. 해외출장이 잦은 젊은 부부는 다행히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아이양육을 돌봄 이모, 그리고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듯싶다.


*일산 '동물교감치유 문화제'와 '한국동물매개심리치료학회' 참석 중 한 컷.

반려견이 참여하는 생명존중교육도 <공감과 소통> 훈련에 도움이 된다.




부모학교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던가? 부디 아이가 소심해지지 않게 매일 용기를 북돋우며 키워가길.

나는 작은딸이 80년대의 나처럼 엄격한 부모가 아니기를 기대하며

'부모학교가 있었더라면 나도 좀 지혜로운 부모노릇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고교졸업 이후에는 두 딸에게 친구처럼 편안한 엄마가 돼 보고자 노력했지만, 평생 스며든 엄격한 부모님으로부터의 가정교육을 바탕으로 한 나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어쭙잖은 고교교사 시절을 기반으로 두 아이에게 어린 시절부터 '예의'를 강조했던 엄마의 그림자까지 벗겨내기는 어렵다. 스스로 알아서 필터링을 하고, 거절을 못하고 절제하는 온순한 두 딸을 보며 미안함이 앞선다. 손바닥만 한 체면이 뭐 중요할 거라고 나는ㅠㅠ


사실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의 기준에 맞춰 아이의 움직임을 잘 기다려주는 젊은 부부의 교육방식을 지켜보노라면 대견하다. 전업주부가 대세였던 시기에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하고 1년 후면 출산하였었다. 집안일도 서툴고 육아도 서툴기 짝이 없는 엄마 위주의 육아였었다. 이젠 맞벌이 분위기에 맞춰 전문돌봄이와 아이 아빠도 함께 육아에 참여하니 매일 성장하는 아이의 다양한 경험에 도움이 될 게다.


맞벌이인 딸 내외는 육아에 지쳐 자주 힘들어 보이지만, 나보단 훨씬 지혜롭게 그리고 외롭지 않게

<부부가 함께 육아 중>이다. 다만 친정엄마로서 육아에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아이부모의 수면 부족과 과로가 늘 마음에 걸린다. 여기에 조기교육 과열 시대에, 또 교육조차도 부익부 빈익빈 시대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요즘 가정마다 자녀가 한 명으로 평균출산율이 0.7명꼴이니 너무 귀해서 부모들의 과보호로 인한 문제도 이미 적지 않다고 한다. 경쟁할 형제자매가 없는 귀한 아이 한 명의 성장에 양가와 부모의 관심이 집중되니 그럴 수밖에. 유아유치과정부터 부모의 과잉관심으로 아동의 사회성 결여나 타인에 대한 배려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소식도 자주 들린다.


심지어 학교에서 다른 아동을 괴롭힌 자녀조차도 일방적으로 싸고돌고, 작은 권력 꼬투리로 심지어 담임교사에게 압력을 가해서 비극을 초래한, 권력을 지닌 가정의 학교폭력 문제가 심심치 않게 회자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유치원의 아동 학대문제는 여전히 발생하여 뉴스를 달군다. 설령 드문 케이스일지라도 학대 피해아동과 가정엔 치명적이어서 제대로 치료와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장기간 내내, 때로는 피해자의 전생애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못난 부모의 갑질 뉴스와 아이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을 소재로 한 금쪽이 방송들을 접하면서 고등학교와 대학의 기초과목으로 그리고 결혼신고의 필수과정으로 '부모학교 프로그램 이수'를 꿈꾼다. 아마도 부모학교를 통해서 아동교육에 대한 <소통공감>의 필요성을 배웠더라면 교육학과 교육심리를 배운 터임에도 시행착오를 일삼은 교사였던 나도 더 지혜로운 소통의 교사와 부모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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